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는 조금 우습게 접하였습니다. 어느 날처럼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송강호와 강동원 그리고 아이유가 함께 나온다는 영화 <브로커>의 예고편에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이라는 문구로 소개되는 일본인 감독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 이라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로 칸느에서 수상한 감독의 작품으로 홍보했던 게 기억났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면서 황금종려상,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통해 접했던 이름값만 기억에 남았던 거죠. 이제 남우주연상도 추가가 되었네요. 퇴근길에 홀린 듯이 교보문고에 들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검색을 했습니다. 이런 화려한 이력의 감독 생각이 궁금했고, 그 생각을 먼저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도 본 적 없는, 수상 경력은 알고 있는, 영화감독이 쓴 에세이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영화제 수상 영화들에 대한 편견처럼 수상 경력만큼 화려한 재미가 가득한 에세이는 아니어도 심오하고 깊은 이야기를 마주할 것이라는 작은 두려움으로 책장을 펼쳤습니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일터, 사람, 가족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으며 단락이 끝날 때마다 말하듯 써둔 문체와 길지 않은 내용을 보며 명성에 누가 끼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감독이 본인의 생각과 시각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글로 남겨뒀더니 경기도 변두리에서 배나 긁적거리는 남성에게 동정을 얻게 된 셈이죠.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있던 배긁남은 가슴속에서 작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짧게나마 글 한번 써보겠다고 브런치도 열고 이런저런 글짓기 책을 읽고 있지만 어떤 글을 어떻게 왜 써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주제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띄워준 부표 하나에 희미하게나마 방향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가 남길 공해성 글귀들은 누군가의 킬링타임 역할만 해내 주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의미를 함의한 체 수려하게 그려진 문장을 만날 준비를 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썰을 푸는 아저씨 느낌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열렸다고 할까요? 전문적인 지식을 알리거나 깊은 철학을 논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생각들에 약간의 허영심을 곁들여 내보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