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현 Nov 21. 2022

운수 좋은 삶

당신의 운은 좋은 편입니까?

 누군가 치과 다녀온 이야기나 요즘 치아가 좋지 않다는 소재를 꺼내 들면 임플란트, 스케일링, 치과 보험 등 치료부터 관리까지 컨설팅 각축전이 펼쳐진다. 한참 과열된 논쟁을 잠재우는 레퍼토리는 오복(五福)의 등장이다. “그래서 오복 중에 치아 건강이 있지 않겠어요?” 나머지 네 개의 복이 뭔지 몰라도 치아 건강이 오복 중 하나라는 내용에 모두의 공감을 이끈다. 네이버지식백과에서 오복(五福)은 <서경(書經)>에서 인생의 바람직한 다섯 가지 복으로 장수(長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고 하니, 민간에서 어떤 식으로 카테고라이징 하느냐에 따라 변형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상가마다 치과가 하나씩 있는 시대에도 치료가 망설여지는데 마땅한 치료 기법이 없던 시절에 치아가 좋지 않다면 적어도 장수와 강녕과는 거리가 멀 테니 복이라면 복이다. 네이버지식인이나 블로그 등의 비공식 문서에 따르면 치아는 ‘신체오복’ 중 하나로 나머지 넷은 눈, 귀, 소화, 용변 기능이라고 한다. 여러 페이지에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최초로 작성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다섯 가지 기능 모두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직 큰 틀에서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으니 ‘(신체)오복’이 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한 번은 퇴사를 앞둔 직원과 송별회로 곱창에 소맥을 말아먹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그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성공했냐고 물었다. 별안간 무슨 소리인지. 성공이라니? 나와 전혀 연결 지을 수도 없고 앞으로도 활용하기 어려울 어휘를 나를 향해 사용한 상황 자체가 무척 낯부끄럽기 시작했다. 퇴사를 앞둔 사람이 잘 보이고자 할 이유도 없고 이미 내가 사기로 공언한 저녁식사에서 계산 걱정도 없는데 굳이 띄워줄 필요도 없었다. 그와 나이나 경력도 비슷한데 두 개의 팀을 팀장 직책으로 겸직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 그렇게 비쳤을 것으로 짐작해도 민망함은 가시지 않는다. 잠시 뜸을 들이며,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지난 경력을 되돌아보니 운이 좋았다는 이유뿐이다. 운이 좋았어,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잘 흘러갔어. 치열한 경쟁 시대에 그다지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은 입장에서 내가 타인에게 이러쿵저러쿵 자랑할 치적이 떠오르질 않는다. 내가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순간 모두 어느 정도 행운이 작동했다. 좋은 기회가 제 때 왔고 운 좋게도 내 성과를 좋게 평가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선순환이 돌았다. 좋게 봐주다 보니 좋은 기회를 부여받기 좋았다. 다행히 아직까진 무사히 굴러가고 있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에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있지만, 나름 직장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광풍 하에 많은 이들이 울고 웃었는데 우리 가족도 그 한가운데 서있었다. 누군가는 제 때 주택을 구입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매수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아 어깨에 힘이 실린 자가 보유자를 보기 두려워진다. 순식간에 몇 배로 벌어진 자산 규모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자가 속출했다. 반대로 올해 집값이 급락하는 양상을 보이며 고점에 매수한 영끌러의 피눈물과 올 것이 왔다며 부동산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무주택자도 뒤섞여 있기도 하다. 우린 부동산에 아무 관심 없이 결혼하고 별생각 없이 신청한 첫 청약에서 꽤나 높은 순위로 예비 당첨된 신혼부부 특공을 당당히 포기하기도 했다. 당시 분양권을 거래하자고 연락 온 부동산 사무실에서 상당히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하필 생애 첫 청약에서 당첨권에 들어가자 난이도를 낮게 잡았는데, 첫 끗발이 개끗발이었다. 그 뒤로 귀신같이 부동산 값이 상승하며 규제 강화와 공급 절벽을 만나 수년간 수 없이 많은 청약 탈락을 겪으며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시간이 좀 지나며 스스로에 대한 비관을 살펴보니 이를 나의 불운으로 보긴 어려웠다. 시장에 대한 무지가 바탕이 된 아둔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물론 이 무지와 아둔함도 현재의 시각에서 보일 뿐, 당시의 주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도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참고로 포기했던 분양권의 주택가격은 현재 깔끔하게 두배 올랐다.


 주택 청약처럼 내가 갖지 못한 것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불운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매주 생기는 열명 내외의 로또 당첨은 왜 내게 안 오는지, 행사나 이벤트 추첨으로 주는 선물은 왜 평생 손에 한번 쥐질 못하는지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인생이 불행하다까진 아니지만 최소한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행운은 없을지언정 운, 혹은 복은 대체로 좋거나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작은 선택지가 생길 때마다 인생의 방향이 계속 틀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유치원에서 어떤 이와 대화를 시작했을지, 고등학교 추첨이 어디로 될지, 대학교 입학 후 친해진 무리가 누구인지, 군대는 어디로 배치받을지, 나를 선택한 회사가 어디일지, 퇴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될지, 나와 아내가 제 때 만날 수 있었을지 등 연속되는 갈림길의 순간에 꽤 좋은 수준의 선택 덕에 운의 흐름이 제법 괜찮은 삶을 꾸려가고 있다.


 가만 보면 먹을 복도 꽤 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와서 사탕 같은 먹을거리를 주고 간다. 저녁에 술 한잔 할 때도 남에게 계산한 것보다 남이 사줘서 얻어먹은 양이 많다. 대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받고 살고 있다. 나름 베푼다고 하지만 밸런스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나는 치아복, 일복, 먹을 복 등으로 복이 넘친다. 복이 넘친다는 것을 자각한 지금 이 좋은 운수의 흐름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행운을 안겨줄 수 있는 운수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고레에다 히로카즈 따라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