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살까지만 살면 된다. 할 수 있다! 아직 꿈 찾아도 되겠죠?
"서울 88 올림픽 굴렁쇠 굴릴 때 태어났네?"라는 유희를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란 88 키즈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 어린이 날을 만드신 방정환 형님은 '수명의 3분의 1까지는 어린이로 정의'하셨다.(갑분?) 고로 나는 105살까지 살면 올해까지는 어린이로 분류될 수... (의료기술의 급진적 발전을 기다리는 바이다)
금융강사로도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기에 퇴사 후 바로 다시 무언가 해야겠다는 이성적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5년 간 총괄했던 공유 오피스를 정리하는 동시에 바로 이직 준비를 하는 것은 여러 심리적 무게감으로 불가했다. 그렇게 늘 슈퍼 J인척 하는 나는 결국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대책 없이 퇴사했고,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는 이미 충분히 큰돈을 모아뒀고, 대안이 뒤에 쌓여있는 능력자 백수 인척 연기를 했다.
"엄마, 나는 이제 시간이 더 귀한 사람이디. 시간 있을 때 놀다가 다시 일할께" (센 허세.. 하지만 진짜 나의 시간이 더 비싼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
회사를 나오기 전부터 감사하게도 여러 오퍼가 있었다. 대표님의 새로운 업무 조인 제안, 친한 형님의 이력서 요청, 가장 신뢰하는 동료의 현재 회사 면접 오퍼, 브런치에 적힌 글을 통한 입사 제안
상황의 이유로, 능력의 이유로, 조건의 이유로 다 성사되지는 않았다. 각자의 복잡한 상황과 나의 욕심 혹은 기준이 만나 일그러진 일이다. 다 인바운드로 들어왔던 제안이지만, 결과적으로 다 맺어지지 않았으니 괜히 4번 탈락한 사람 같다. (솔직히 신뢰하는 동료의 제안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 탈락한 것이 맞다.)
찌질하게 다시 말하지만 난 바로 일할 생각이 없었고 어디도 구직의 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하지만 4번 얻어맞은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하튼 그렇다. 괜히 아프고 찝찝한 기분. 이런 기분에 휩싸여 무기력함이 짓누르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 계획이 아닌 타인의 계획에 계속 내 기분이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챌 즈음 나는 이를 끊어 내야겠다고 다짐했다.(싹둑컷_)
꿈, 뭐 그런 뜨뜻미지근한 것을 아직도 갖고 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까지의 배움, 성장, 변화 이 모든 긍정요인들은 꿈이 있을 때 생겨났었다. 고개를 위로 치켜들면 현실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늘 나아감을 느낀다.
깊은 호흡으로 이 상황을 봤을 때, 이 나이 35살에도 나의 경로를 스스로 정하지 않으면, 타인의 생각과 선택에 의해 불혹(40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40은 내 지난 삶의 태도가 얼굴에, 하고 있는 일이 지난 날의 합치라는 무게감이 있다..
오랜만에 나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당분간은 눈앞의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있을 금융강의에 집중하고, 3월에 오픈할 현대무용 센터 세팅에 집중하고 시선을 가로지르는 눈앞의 일이 끝나면 깊은 호흡으로 나의 스텝을 찾아야겠다.
아참, 어제와 오늘이 같아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단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무의식에 유튭을 보는 시간을 남산타워 등산으로 바꾸기로 했다. 맨날 보니깐 맨날 올라야겠네.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힘들 때마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슈퍼 J라 판단을 오지게 하지만, 결국 중요한 판단은 놓치고 마는 허당입니다. 35살이 된 기념으로 그리고 백수가 된 기념으로 새로운 도전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글로 남겨봅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억만금을 줘도 안될 것 같은 때가 사람 마음인데, 좋아요와 댓글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능력이 필요하신 가요? hazzong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