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아장아장 하던 꼬마 갑순이가
코로나19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고,
결국 락다운이 시행되었다.
감염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뉴스에서는 자영업자들의 반발 기사들이
연일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건 생명이 달린
문제였기에, 누구도 쉽게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지인들 중에도 감염자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강아지도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병원에서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안심하고 산책해도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쓴 위에 스카프까지 감고,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꽁꽁 가렸다.
그리고 갑순이와 산책을 나갔다.
낮이었는데도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는 폐렴인데…”
혹시라도 내가 감염된다면, 폐가 나빠질 게 걱정됐다.
나는 안 유명해도, 그래도 음악이 본업인데.
폐렴이라도 오면 노래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렴 어때. 일단 레게 가수로 성공이나
하고 나서 걱정하자.’
락다운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마찬가지였다.
넷플릭스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을 열어봤다.
역시나 락다운 때문인지, 사람들 피드엔
죄다 집 사진뿐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딱 한 명의 승리자가 보였다.
“엥? 이 형은, 겁나 행복하네?”
자손이형.
아주 오래전, 내가 막 서울에 상경했을 때 알게 된
형이다.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올라왔을 당시,
인라인 동호회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곳의 회장이 바로 자손이형이었다.
형은 그때도 나같은 초보에게 인라인 타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던 사람이었다.
“오… 세상이 이런데도 저렇게 사네…”
자손이형의 인스타에는 인라인 타는 영상,
자전거 타고 산에서 찍은 셀카,
그리고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우울해하던 그 시대에,
혼자서 유유히 즐기고 있는 진정한
챔피언의 모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해봤다.
띠~~
“여보세요?”
“형, 안녕하세요~”
“어휴, 이게 누구야? 아주 그냥 쉰내가 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오인용 성대모사가 튀어나와 빵 터져버렸다.
“하하하, 형 여전히 밝게 사시네요?”
“울면 뭐하냐? 그 시간에 웃는 게 더 낫지.”
“오~ 형. 다들 죽겠다 난린데, 형만 행복해 보이네요~”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이 녀석아, 넌 뭐 하며 살았냐?”
“하하하, 저는 뭐 그럭저럭요. 와…
형, 몇 년 전 정건이 형이랑 미애 누나 결혼식 이후로 한 번도 못 뵀네요?”
“음… 시간이 유수 같구나. 넌 지금도 타이거 JK 좋다고 따라다니냐?”
“크크크, 힙합 전사에서 레게 전도사로 이직했죠.”
“레게? 룰라의 가시밭길을 택했구나!”
“뭔 룰라예요? 크크크, 전 요즘 스컬님 보면서 라스타 수행 중입니다.”
“랍스타는 레스토랑에서 찾고, 너는 괜찮아?”
자손이 형과의 오랜만의 통화는 참 유쾌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각박한 서울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의 이 이상한 코로나19 시대가 유일하게 준 선물이라면,
바로 이렇게 잊고 지낸 사람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자손이 형과 긴 통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원 입원과 정신과 치료 이야기도 꺼내게 됐다.
이런 이야기는 나에게 일종의 ‘약점’처럼 느껴졌기에,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뉴스에서 강력범죄자들이 형량을 줄이려는 수법처럼 ‘정신병 치료 이력’을 활용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두려웠다.
하지만 자손이 형은 달랐다.
편견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참, 가지가지 한다~ 언제 시간 되면 의정부로 와. 밥이나 한 끼 먹자.”
“엥? 형 의정부 살아요?”
“응. 여기만큼 살기 좋은 데가 없더라.”
“오~ 부대찌개 먹으러 가야겠네요~”
한편, 락다운 조치가 길어지자 자영업자들의
폐업 소식이 잇따랐다. 정부에서는 규제를 다소
완화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로 낮췄고,
밤 10시까지 영업이 가능해졌다.
거리엔 다시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락다운’은 아니지만, 유신시대 통금시간 같은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치 다큐 “그땐 그랬지”를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메마른 시대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엔 뜻밖의 ‘사랑’이 스며들곤 한다.
다신 없을거 같았던, 핑크빛이 스며들 듯
내게 다가왔고,
“케미가 잘 맞는거 같다” “잘됐으면 한다.” 같은
말을 들을 땐, ‘케미’가 무슨 뜻인지 네이버에
검색해봤을 정도로 나도 설렜다.
“케미… 이런 말도 있었구나…”
하지만…
코로나였기에 가능했던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코로나였기에 너무 쉽게 흩어진 걸까.
약점 많고 상처 많은 내가, 스스로 밀어내 버린 걸까.
그렇게 좋았던 시간은 휘발성 강한 알코올램프의 심지처럼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처럼,
사탕이 다 녹고 사라졌는데 단맛은
혀끝에 남아 있는 듯한 미련.
나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날,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나는 방 안에서 갑순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무 의지도 없었고, 그저 내 자신이
병신 같았다.
십대의 사춘기처럼,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다니던 병원의 원장님은
“심각하니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세요”라고 당부했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뺨에 따뜻한 젤리가 느껴졌다.
갑순이가 내 얼굴을 핥고 있었다.
“뭐야… 까까 줄까?”
평소 같으면 ‘까까’란 말에 펄쩍펄쩍 뛸 녀석이
오늘은 낑낑대며 내 팔을 베고 조용히 몸을 기댔다.
아마도…
내가 깊은 속앓이를 하는 걸
갑순이는 이미 눈치 챘던 모양이다.
“갑순아… 미안… 아빠가 좀 미쳤었나보다…”
작은 몸의 꼬마 갑순이가 어느덧 다큰 성견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띠리리리
자손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형.”
“뭐 해?”
“그냥… 허공 보고 있었어요.”
“의정부로 와. 부대찌개나 먹자.”
이젠 뭔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의정부로 향했다.
2003년 5월 6일, 306보충대로 입대하던 이후로
처음 가보는 의정부였다.
미리 나와 있던 자손이 형과 인사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셨다.
“지금까지는 알바만 하고 그랬던 거야?”
“네. 뭐…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잖아요.”
“이제는 현실 쪽으로 무게를 좀 두는 게 어때? 꿈을 포기하란 얘기는 아니고.”
“… 알죠. 사실… 이젠 그만할 때도 된 거 같기도 하고요.”
“그만하란 말은 안 했다. 그냥 중심을 옮겨보자는 거야.”
이야기를 마친 자손이 형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수십 수백 대의 자전거가 진열된 가게였다.
“자이언트…?”
“어, 이거 내 가게야.”
“네? 이거 형 거예요?”
“응.”
“형은 인라인 가게 차렸을 줄 알았는데… 자전거 가게를?”
“어쩌다 MTB 타다가 산뽕 맞고 빠져서 가게까지 냈다. 흐흐.”
“그래서 인스타에 자전거 사진 많았던 거구나…”
“요즘 같은 시기엔 자전거만큼 좋은 게 없어.
혼자 타니까, 거리두기 하면서도 운동도 되고.”
“저도 어릴 땐 삼천리 자전거 타고 다녔는데…”
“그건 철덩이 자전거지. 등하교용.”
“맞아요, 학원 갈 때도 그걸로 다녔죠. 크크.”
“…준혁아. 너 약 먹는다고 해서 놀랐었어.”
“…네.”
“운동부터 다시 시작해봐. 일단 형 말 믿고 한 번만 타봐.”
가게 안을 둘러보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자전거 하나를 바라봤다.
“형, 이건 뭐예요?”
“그건 하이브리드 자전거야. 로드바이크와 MTB의 특징을 다 가진 거지. 도심용으로 괜찮아.”
타론 3.
자이언트 타론 3.
‘좋게 말하면’ 로드와 MTB의 장점을 갖췄다고 하고,
‘솔직히 말하면’ 둘 사이에 낀 애매한 포지션의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는
음악을 한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실을 보겠다고 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하는…
바로 나와 꼭 닮아 있었다.
“형, 저 이 타론으로 할게요.”
“그래? 그게 가격이 72만 원인데, 40만 원에 가져가.”
“아, 너무 깎지 않으셔도 돼요. 마진도 안 남겠네요…”
“그래? 그럼 72만 원 그대로 줘.”
“아, 형… 예의상 거절한 거잖아요. 이게 아니잖아요.”
“싫다며?”
“아니, 그러니까… 제가 ‘아니에요~’ 하면, 형은 다시 깎아주신다고 하고…”
“아, 싫다며?”
“싫은 게 아니라 좋은데, 보통 예의상 제가 한 번 거절하면…”
“형이 깎아줄 때 가져가, 자식아. 형 앞에서 센 척하냐?”
“아니요, 저는 무척 연약하고… 귀엽죠.”
“말이나 못 하면… 쯧.”
자손이 형이 여기저기 자전거 정비를 해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천리 자전거 21단짜리를 샀을 때 이후,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이후, 가후 잡는다고 자전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자이언트 매장을 나와 휴대폰에 카카오맵 앱을 깔았다.
목적지를 설정한 후, 음성 지시에 따라 방향을 잡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보며 안내 음성을 따라가다 보니, 중랑천이 나왔다.
그 중랑천 길을 따라 더 가보니, 커다란 한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강이 이렇게 넓고 아름다워 보인 건 처음이었다.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무려 40km가 넘는 길이었다.
난생처음 자전거로 이렇게 먼 길을 타봤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뻐근했지만, 기분은 상쾌하고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장시간 갑순이를 혼자
둔 것 같아 미안했다.
“갑순아. 자, 이거…”
시저를 따서 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에휴… 이 간식을 너무 좋아해서 어쩌냐. 너무 이것만 먹으면 건강에도 안 좋을 텐데…”
온몸이 땀에 젖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갑순이를 보니, 길을 가다가 혹은 유튜브나 SNS를 통해 본 장면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갑순이를 데리고 어딜 좋은 데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알바나 프리랜서로, 한 달 겨우 생활비만 버는 빠듯한 생활을 오랜 시간 해왔다.
그 흔한 중고 경차조차 없던 뚜벅이…
나중에 레게 가수로 대박 나서 롤스로이스 타고 다닐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만 하며
보편적인 삶을 외면했던 내 과거가 후회로 다가왔다.
“갑순아… 아빠가 내일 한강 보여줄게.”
방 안에만 있다가, 어깨끈 매고 동네 산책이 전부였던 우리 갑순이.
자동차는 아니지만 자전거가 생겼으니, 이걸로라도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었다.
갑순이에게 두 팔을 벌려 보였더니, 자동으로 앞발을 들어 품안으로 쏙 들어온 우리 갑순이.
아장아장 걷던 꼬마 갑순이 때부터 항상 내 옆을 지켜준 내 새끼.
버는 돈 모두 장비나 악기 업그레이드에 써버리고,
정작 갑순이에겐 시저 몇 개 사준 것이 다였던 이기적인 견주인 나.
매년 생일 챙겨준다고 주위에선 좋은 견주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견주가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갑순이를 조금 더 챙겨야겠다고 느꼈다.
아침이 밝아왔다. 근처 마트에서 시저 몇 개를 사왔다.
시저를 본 갑순이는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를 까서 줬다.
코를 박고 미친 듯이 흡입하는 갑순이.
이동용 가방에 남은 시저를 넣었다.
이것저것 갑순이가 먹을 물과 그릇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내가 마실 물통도 챙겼다.
한강으로 향했다.
갑순이를 이동용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달리니
무척 무겁고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갑순이에게 한강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반포한강공원.
그곳은 사람들이 나들이 하러 오기도 하고, 나처럼 애견을 데려오는 사람도 많아
갑순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조심히, 최대한 안전하게 자전거를 몰아
반포한강공원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갑순이를 꺼내줬다.
견생 처음으로 보는 탁 트인 시야… 그리고 넓은 한강.
갑순이는 무척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적응했고, 우리 갑순이가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갑순아… 진작 데려왔어야 했는데…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게 뭐라고…”
나는 절대 좋은 견주가 아니었다.
만성 우울증으로 늘 약에 의존해 살던 나.
항상 밝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준 건, 언제나 갑순이였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 시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