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

제12화 나와 같이 함께 쉽게 넘긴 열세 살

by 리치만

갑순이와의 산책은 가끔 귀찮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에 참 좋은 시간이다.

활달하고 밝은 성격의 갑순이에게도 산책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마주 오는 산책견에게 항상 먼저 다가가 인사부터 건넨다.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단계가 길어지며 사람들의 피로감도 점점 쌓여갔다.

그러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서, 사회는 서서히 완화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갑순이와 벌써 같이 살아온 지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이 넘었다. 특별하게 잘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늘 친절하고 순하기만 한 우리 갑순이…

매년 차려줬던 생일 사진들을 봤다.

사진 속에 갑순이는 항상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온 세상이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고통 속에 살다가 조금 완화된 것에 안정감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나도 무언가를 내 일상에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손이 형과는 자전거 이야기로 통화를 많이 하게 됐다.

그러다 가끔은…


“준혁아. 너 자격증 같은 거 생각 안 해봤어?”

“자격증이요?”

“자격증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쓸모가 있어.”

“아… 전… 민증 하나로 만족해서…”

“장난 그만하고… 국비 같은 거 한번 알아봐.”


국비 자격증…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어느 분야로 가야 할지부터 고민이 됐었다.

음악 하겠다고 나이만 먹었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는 나로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타일 시공 생각 있니?”

“타일이요? 그거 뭐… 화장실에 붙이는 거

말하는 거죠?”

“타일이 진짜 돈이 될걸. 좀 힘들긴 하지만.”

“아… 살면서 노가다 경험도 적어서…”

“일단 배우는 거지. 옆집 사람이 타일러인데, 매년마다 차를 바꾸더라.”

“이거 따는 데 얼마나 걸려요?”

“그냥 학원 몇 달 다니고 시험 쳐서 딸걸?”


갑순이를 쳐다봤다.

갑순이도 이제 노견이라 병원에서 관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매년 두 번씩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면,

나도 이제 정식적인 직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3개월 정도 학원에서 이수하고 취득하는 과정이었다.

예술대학까지 졸업해놓고 이걸 해야 하나라는 현타가 왔지만,

아무 배경도 없는 나는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라 철없는 생각은 이제 접어둬야

할 때였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자…”


어느 날, 갑순이와 산책을 나갈 때였다.

어깨끈을 묶고 길을 걷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갑순이가 조금 달랐다.

항상 산책할 때면 내 동선에 맞춰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던 애였는데,

움직임이 조금 둔해진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한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매번 산책할 때마다 그것을 느꼈다.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항상 어깨끈을 집으면 산책 나가는 걸 알고 좋아하는 건 여전했으니까…


갑순이와 산책 루트는 항상 비슷했다.

근처 카페 중에 애견 동반이 되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을 가거나 동네 놀이터를 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갑순이 눈을 보니 약간 눈동자 색이

연해진 걸 봤다.

“후… 우리 갑순이도 이제 노견이네…”


힘이 조금 떨어지고, 눈도 조금 나이 들어

보이게 변했지만, 아직은 나에게 가장 천사

같은 갑순이였다.


자전거가 생기고 나서, 갑순이와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 시작했다.

산책으로 한정됐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

애견 슬링백을 하나 구입하고서, 그 안에 갑순이를 넣고 자전거로 이동했다.

낙성대 공원에 데려갈 때도 갑순이는 무척 좋아했다.

그곳은 애견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많은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손이 형의 조언을 듣고, 국비 자격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자손이 형의 첫 번째 권유는 내가 현재 복용 중인 정신과 약을 끊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약에 의존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약을 먹어야 잠들 수 있었고, 약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나였다.

병원에 갈 때도, 의사 선생님이 약을 조금 줄여보자고 말할 때면 한사코 안 된다고 했었다.

이런 내가 과연 끊을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지만,

좋은 것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약을 끊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지도 어플 켜봐.”

“네.”

“보면, 한강 라인 따라 쭉 자전거 도로가 놓였을 거야. 그냥 어플 켜 놓고 가라는 데로 가면 그렇게 어렵진 않아.”

“아… 형이 말씀하신 팔당역 가는 길이, 경사도가 3%라고 나오네요?”

“그 정도면 아주 완만한 편이야. 그냥 한번 다녀와. 정말 좋다.”


자손이 형은 나에게 자전거 타고 다녀올 곳들을

추천해줬다.

처음 장거리를 갔던 곳은 팔당. 그다음엔

일산 행주산성이나 두물머리.

그 밖에도, 시간이 나면 무조건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를 다녀왔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연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는 것, 그러한 것들이 힐링이 되었고,

나는 2주마다 가는 병원에서 약을 점점 줄일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단순히 ‘이동을 한다’는 것보다는,

목적지를 정해서, 다녀오며 느껴지는 성취감 —

그러한 것들이 ‘우울증’이라는 옷을 점점 얇게 해주었다.


어느덧 더운 여름이 되었다.

갑순이에게 또 다른, 특별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물이라면 목욕을 너무 싫어하던 녀석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근교에 있는 계곡에 데려갔다.


처음엔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려고만 하더니,

조금 적응하니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갑순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서, 나도 무척 기뻤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긍정적인 곳으로 컨트롤하기 시작했고,

약 없이 수면에 들 수 있었다.


2010년 이후 처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잠들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금껏 곁을 지켜준 우리 갑순이 덕분이었다.


2023년 7월.

나는 약을 더 이상 먹지 않게 된 날이다.


난 완벽하진 않겠지만, 온전한 멘탈을

다시 찾게 되었고, 그렇게 국비지원을 신청하여

학원을 나가기 시작했다.


타일. 필기 없이 실기로만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시멘트와 장비들…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드레드 머리도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너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 자신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 했던 머리…

레게라는 음악을 하며 드레드락이라는

변화를 줬을 때도,

나에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건 확실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미용실에서 과감하게 잘랐다.


군대 이후로 가장 짧은 머리가 되었다.

조금 어색했지만 괜찮았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도 줄었고, 무엇보다 너무 편하고 좋았다.

짧아진 머리라서 간지 좀 없어지면 어떤가?

그냥 편하고 좋으면 그만이었다.

짧은 머리로도 레게 할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학원 교육이 끝나고, 시험을 보게 됐다.

아쉽게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재도전해서,

결국엔 합격도 했다.


해가 바뀌어 1월이 되었고,

1월 3일이면 매년 해왔던, 우리 갑순이 생일

파티를 했다.

나와 13년을 함께한 우리 갑순이의 생일.


“갑순아… 니가 있어줘서, 아빠가 이거 다 해냈어.”


지금껏 함께 살아오며,

아픈 걸로 속상하게 한 적이 없어서 너무나 대견하고 고마웠다.

열세 번째 생일에 이어서, 내년, 내후년에도

이렇게 생일 파티를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내 새끼 갑순… 앞으로 30년만 더 살자.”

매년 생일 때마다 해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