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

제13화 그러던 어느날 너는 잠에 들어

by 리치만

코로나19는 이제 사라지다시피 했다.

외출할 때 마스크 착용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었다.

나라 안팎이 점점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락다운으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게 됐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가 꽤 심각한 상황이었다.


취득한 자격증으로 취업을 시도했지만, 세계적인 경제 공황의 여파로

건설 업계 경기가 좋지 않아 문턱을 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밥 말리의 일생을 그린

영화 《원 러브: 밥 말리》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밥 말리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개봉 예정인 포스터를 보는데, 너무 멋졌다.


같이 갈 사람이 없을까 싶어 저장된

연락처를 뒤적이다, 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낸

현우 형 이름이 눈에 띄었다.


“형, 뭐 해?”

“흠… 오랜만이다…”

“아니, 뭐 하냐고?”

“이 쓰끼야. 지금 이 시간이면 일하지, 이 쓰끼야.”

“크크크. 형, 나랑 영화 보러 가자.”

“무슨 영화?”

“밥 말리 영화가 개봉한대. 이건 봐야지!”


현우 형과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고, 형이 워낙 일이나 개인적인 일로 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편이라 얼굴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너 요즘 뭐 하며 지내냐?”

“나 요즘 백수.”

“아무 일도 안 해?”

“하던 거 그만두고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직장이라도 다녀보려 했더니, 쉽지가 않네.”

“그래? 그럼 우리 회사에 TO 있는데, 한번 해볼래?”

“형 회사? 뭐 하는 덴데?”

“IT 회사. 뭐 컴퓨터 작업할 수 있게 세팅해주고, 그 자산들 관리하는 거야.”

“말로 들으면 꽤 거창하네~”

“할 거면 내가 너 추천해줄게.”

“오~ 형이 거기서 뭐 좀 됨?”

“쩝… 직원 하나 채용하는 정도는 된다, 이놈아.”

“오… 알았어. 거기서 내가 할 일이 뭐라고?”

“그냥 컴퓨터 다룰 줄 알면 돼.”

“아… 나 또 스무 살 때 컴퓨터 공학도였지?”

“맥(Mac)도 다룰 줄 아냐?”

“아~ 맥! 두 번째 들어간 대학에서 실습을 맥으로 했쥐~”

“됐어, 그럼.”

“오케이~ 영화는 볼 겨, 말 겨?”

“영화… 알았어. 주말쯤 해서 보자.”


영화 한 편 보자고 전화했다가, 취직까지 되다니.

‘사람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가끔은 정말 맞는 말일 때가 있는 것 같았다.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현우 형에게 회사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도 들었다.

“형 근데, 나 거기서 형한테 뭐라고 불러야 돼?”

“과장님…”

“형, 직급이 과장이야?”

“응. 우리 회사는 출근 복장도 자유로워서 좋아.”

“아… 정장 같은 건 안 입어도 된다고?”

“응. 트레이닝복만 아니면 돼.”


비교적 꽉 막힌 회사는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좋았다.

물론, 입는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자유로웠던 건 예전 음향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기에 신기하거나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진짜 새로운 시작’이 되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갑순이와 산책을 나갔다.

저녁 공기가 웬일인지 달게 느껴졌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자주 가던 카페로

향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갑순이의 최애

간식인 시저도 하나 샀다.


카페에 앉아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다가, 갑순이를 보다가…

세상도, 그리고 나 자신도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안정감이라는게 느껴졌다. 마음 안에 뭔가 푸근한 게 차오르는 듯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르게 갑순이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는 것, 그리고 눈동자 색이 연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 데려갔을 때, 수의사 선생님이 갑순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화가 온 거예요.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 우리 갑순이도 이제 정말 노견이구나.


10년을 넘어 열세 살이 된 갑순이.

그만큼 나도 어느덧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어버렸다.

내 눈에는 여전히 꼬마 갑순이로만 보이는데…

지금도 품에 안기면, 낑낑대는 애기 소리를

내는 그 아이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이, 괜스레 서글퍼졌다.


현우 형의 회사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잠실에 있는 회사로 향했다.

2호선을 이용해야 했는데, 순환선이라 그런지 출근 시간대엔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퇴근은 오후 6시.

역시 퇴근 시간대답게, 숨도 못 쉴 정도로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야 했다.


“휴… 이게 어디 사람이 사는 거냐…”


집에 도착하면 기가 다 빠져서, 거의 반 건어물 오징어가 된 상태가 됐다.

퇴근 후에는 갑순이가 좋아하는 산책을 시켜야 하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매일같이 산책을 미루게 되었다.


“갑순아… 산책은 내일로…”


어쩔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너무 피곤했다.

어떤 날은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출근할 때도 있었다.

약을 끊긴 했지만, 이런 날이 가끔씩 찾아왔다.

그래도 어떻게 끊은 약인데, 다시 입에 털어 넣을 순 없었다.


그나마 시간이 여유로운 때는 주말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겨우 갑순이와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뉴스 기사나 일반인들의 시청자 사연 방송들을 보면,

“대기업은 아니지만…” 하면서 중소기업도 괜찮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어디까지나, 예쁘게 꾸며낸 방송용이라는 걸

출근을 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물론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패가 나뉘고, ‘라인’이라는 걸 타야 하고,

조선시대 궁궐 암투를 상상하게 하는 유치한 분위기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과장은 실력도 없고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윗선에 아부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본사에서 좌천돼서 내려왔으며,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기가 권리당원으로 있는 정치 집단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수위 높은 말로 ‘꼽’을 주는 유치한 사람도 있었다.


“아니, 씨발… 여기가 삼성도 아니고, 중소기업 따위가… 하…”

“야… 좀 진득허니, 그냥 일 해.”

“아… 이 과장… 더는 못 해먹겠네…”


퇴근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현우 형에게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웬만해선 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어쩌면 이런 회사 생활을 이제 처음 해보는 내가

철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과장… 진짜 미안한데,

좆소기업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알 것 같애.”


“여기가 좀 그렇지?”

“회사 자체는 크게 문제가 안 되는데, 사람 새끼들이 문제야.“

“실장이랑 차장이…”


현우 형은 실장이나 차장 욕하기에 바빴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게 쉽지는 않다.

언뜻 듣기로는, 외사촌 형이

법 없이도 살 착한 성격이라는데,

그런 형도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이런 것들이 싫어서

오랫동안 알바나 프리랜서로만 일했었는데,

직접 겪고 나니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이걸 참으려면,

원래 나의 모습을 버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구 하나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휴대폰 어플로 통장 잔고를 봤다.

숫자는 너무나 짧기만 했다.

분노의 게이지가 머리 정수리까지 차오른 이상,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갑순이를 한 번 더 생각했었다면…


며칠이 더 지난 후,

현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과장… 동네 형까지 잃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퇴사하는 게 맞는 거 같아.”

나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 현우 형에겐 미안했지만,

이런 상하구조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아니, 누구 밑에서 조직적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는 성향이었다.


‘사회성 결여’라는 걸… 나는 인정한다.

군대라는 곳에서의 단체 생활도 너무나 힘들었고,

대학교 조별 과제조차도 정말 싫었다.


나는 본사로 퇴사 사유서를 제출하고,

임원급 직원과 면담을 한 후 회사를 나왔다.


퇴사를 하고 난 다음 날,

나는 다시 백수 생활로 돌아왔다.

회사에 다니는 몇 개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갑순이 산책을

드디어 시켜줄 수 있었다.


너무 미안했다.


“갑순아… 요거 먹자!”

육포를 뜯어서 주니,

허겁지겁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제는 노견이 된 갑순이에게

시저 간식을 계속 주는 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저를 대체할 만한

간식이 딱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자손이 형의 멘탈 케어와 조언들을 받아들이면서

많이 성숙해졌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이만 먹은 어른이에 불과했다.


전화 통화로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문득 ‘팩트 폭행’이라도 날아오는 날이면

무척 부끄러워진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불편한 사람은 누구나 다 있어.

불편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 그게 뭔 줄 아냐?”

“뭔데요?”

“또라이.”

“아….”

“야, 니가 좋아하는 타이거 JK나 스컬 같은 사람들도

아마 힘들었을걸?”

“그… 그렇겠죠…”

“너 그 성격머리 안 버리면,

레게 가수가 아니라 ‘에게~~’ 가수 된다.”

“가수는 무슨… 형은 예전에 믹스나 마스터링 같은 거 하셨잖아요.

아직도 해요?”

“뭐… 취미로 하곤 있지. 야, 방금 톡으로 뭐 보냈다. 한번 봐봐.”


자손이 형이 카톡으로 보낸 URL은

간편화된 오븐 링크였다.


“야, 이거 하나면 요리를 겁나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다.”

“아… 이런 걸 안 써봐서…”

“너도 이제 배민으로 사 먹지 말고, 해 먹어. 이것아~”

“하긴… 오 근데 설명서 보니까 고구마도 구울 수 있네요?”

“고구마뿐이겠냐. 감자튀김 같은 것도 다 된다고 나와 있네.”


갑순이가 생각났다. 이젠 시저 같은 간식 대신

고구마 같은 걸 먹이는 게 더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사과나 수박 같은 걸 썰어 줬을 때

아삭아삭 씹는 그 소리도 귀여웠는데,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강아지들은 고구마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시저보다는 건강 염려가 덜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퇴사한 상태라 통장 잔고는 조금 가벼워졌지만,

일단 오븐 구입 버튼을 눌렀다.


쿠팡 프레시에서 고구마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가격도 적당해서 살까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다.

조금 더 쌀쌀해지면 해주기로 하고

구입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백수의 여유로움은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는 없었다.

집에서 쉬면서 갑순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지만,

돈을 벌어야 삶이 유지되기에

잡코리아를 뒤지고 있었다.


“흠… 직장 생활을 하면, 또 그럴 것 같고… 일단은 알바로 시작을 해볼까…?”


나이가 나이인지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없었다.

더 이상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는 것도 그만해야 할 것 같아서,

민망하지만 알바몬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급구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익숙한 CU…


“편의점 일을 한 지도 정말 오래됐는데, 안 까먹었을려나…”


조금 걱정하면서, 공고에 있는 점주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면접을 바로 보자는 말을 들었고,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면접을 본 후 바로 채용됐다.

길을 돌고 돌고 돌아 다시 편의점이라니… 조금 웃프기도 했고, 그닥 나쁘지도 않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있지만, 현실에선 분명 있다.

그래도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개의치 않았다.


13년 전처럼 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 10시 출근, 다음 날 오전 8시 퇴근이었다.


회사 다닐 때처럼 체력이 소모되진 않아서,

아침마다 갑순이와의 산책 시간을 지킬 수 있어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 일이었기에 적응이 조금 필요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예전이라 하기엔 조금 더 오래된 시간에 해봤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편의점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더 복잡해졌고, 체계가 잡히면서 손님에게

불친절하기라도 하면

본사 홈페이지에 민원이 올라올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예전과는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했다.


평일엔 산책, 그리고 쉬는 날엔

갑순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면 알바보다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걱정하고 싶었다.


갑순이는 몸이 둔해지는 게 점점 더해졌다.

방에서도 계속 누워 자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깨워서 뽀뽀도 하고,

장난도 치고 괴롭혔겠지만,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갑순이에게

그런 장난을 더는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집에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방 구조상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을 뿐이지,

거의 창고 용도로 쓰고 있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놓은, 정리 정돈이 안 된 지저분한 방이었다.

작은 방 창문은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서

갑순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기도 했다.


여느 강아지들이 그렇듯, 우리 갑순이도 목욕을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세면실 역시 작은 방처럼 들어가지 않는 공간 중 하나였다.

갑순이 전용 타월을 펼치기만 해도

목욕을 예감하고 몸을 움츠리고 엄살을 부리던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작은 방 창문을 열고

놓아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문 쪽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나 돌아봤더니

갑순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웬일이야? 여길 다 들어오고?”


담배 불을 끄고, 갑순이를 들어올려 안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갑순이.

예전에도 이렇게 가벼웠던가?

그 생각에 조금 슬픔이 밀려왔다.


내 마음 한켠에는

이제 우리 갑순이도 ‘노견’이라는 것을

점점 더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안약을 넣어주긴 했지만,

노화로 인한 증상이기에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외출할 일이 있어

세면실에서 씻고 있었다.

양치를 하고 있는데,

세면실 문으로 갑순이가 들어왔다.


“응? 이 녀석이 여길 왜 들어오지…?”


나는 단순하게,

갑순이가 심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많이 쇠약해지고, 둔해진 갑순이였기에

산책을 조금 줄였고,

가까운 공원에 갈 때도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시저나 육포 몇 개를 먹으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넘어갔다.

야간에 일하는 루틴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조금 힘든

점도 있었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원래부터 익숙했던 일이기도 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8시에 일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침 출근 시간대라 막히면 9시를 조금 넘겨 도착하고,

막히지 않으면 9시 전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금 막혀서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를 막 넘긴 때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갑순이를 자그맣게 불렀다.

우다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많이 둔해진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눈으로 갑순이를 찾았다.


침대에서 자고 있으려니 싶어

침대를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들췄다.

갑순이는 내 옷에 휘감긴 채, 움직임 없이 누워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뭔가 불길함이 내 가슴을 찌르듯 훅 하고 올라왔다.

갑순이를 안아봤다.

온몸에는 힘이 없었고, 고개는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휘감긴 옷을 풀어냈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갑순이를 안고 병원까지 뛰었다.



병원 방향으로 달리며 갑순이를 내려다봤다.

아무 힘 없이 떨어져 있는 고개는

이미 그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그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가면 살 수 있어. 병원에만 가면…”


병원은 멀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도 5분 거리였다.

하지만 그날은 수십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앞의 모든 풍경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는 뛰면서 갑순이의 가슴 쪽을 누르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병원에 도착했다.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나를 보더니

**응급상황!**이라며 소리쳤다.

수의사님이 뛰쳐나와 갑순이를 받아 안고

치료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수의사님이 나와 물었다.


“심폐소생술… 시도할까요?”


“네, 해주세요! 빨리요!!”


수의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이 빠진 듯,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카운터 앞에서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말도 안 돼…”


카운터 직원은 진정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진정을 할 수 없었다.

치료실 앞에서 불안에 떨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왜요… 왜 그러세요…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세요…”



조금 뒤, 수의사님이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오실 때부터 이미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도와드릴 수 없었어요…”



이럴 수는 없었다.

조금 둔해진 것 말고는,

갑순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리 갑순이가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