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를 마치며
라디오 <2시의 데이트>의 DJ는 뮤지와 안영미이다. 안영미는 광고가 나가야 할 타이밍이 되면 “잠깐 쉬었다 갈게요”라는 멘트를 한다. 한 청취자는 그 멘트가 나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쉬는 일에 집중한다고 한다.
글을 안 쓴 지 1주일이 넘었다. 며칠 전 남편이 글 안 쓰냐고 물었다. “응 쉬고 있어” 나는 그 대답을 하면서 사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서평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성을 못했다. 매일 마감 글쓰기를 안 하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 내려놓은 것 마냥 몸이 가볍다.
최근에 김현주, 지진희 주연의 드라마가 시작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부부로 나온다. 그들은 잘 어울리고, 애인 같은 부부를 잘 연기한다. 드라마 《애인 있어요》를 참 좋아했다. 지금도 이따금 생각나면 다시 보곤 한다. 두 사람은 대학교 때 만나 결혼을 했다. 20대, 30대, 40대를 함께 했다. 어느 날 둘의 사이는 어긋나고 급기야 이혼을 하고 남자는 떠난다. 여자는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은 여자는 다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 왜 부인과 헤어졌나요? 사랑이 식었나요?" 그러자 남자는 대답한다. "아니. 사랑에 지쳐서....."
내가 그렇다. 누가 등 떠밀며 글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끙끙대다가 글쓰기에 지쳤다. 글쓰기가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회의록 쓰는 게 두려워 누군가 야근할래? 회의록 쓸래?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야근을 택했을 거다. 지금은 글쓰기가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글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흰색 화면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생각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막막하다. 그런 시간을 오래 거치다 보면 글이 완성된다. 그때 기분은 참 뿌듯하다. 잠깐의 희열 때문에 몇 달을 글을 썼는데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내려놓았다.
내가 쓴 글에 지친 내 마음이 묻어나지는 않을까. 우걱우걱 쓴 글이 티 나지 않을까. 이렇게 쓸 거면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글쓰기 번뇌가 찾아왔다. 글에 직접적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았어도 내가 쓴 글에 분명 내가 담겨있다. 미우나 고우나 글 하나하나에 하루를 좀 더 열심히 살고 싶은 열정의 흔적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흩어져있는 점들이다. 그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어떤 지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냥 나는 오늘의 점을 찍기로 했다. 지치면 지치는 대로 완성이 덜 되면 완성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고 방황도 하면서.
30일 글쓰기를 마치며 다시 또 시작해 보려 한다.
* 상단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