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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Aug 15. 2017

인간 기자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 건축가 전문직은 미래에도 존재할까? 

로봇 기자 그게 별거냐? 했는데


  지난해 국내에 ‘로봇 기자’가 처음 등장해 기사를 썼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를 포함한 기자 대부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원래 증권 시황 기사나 스포츠 결과 기사는 쓰는 게 단순해. 어떤 주식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어느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만 잘 정리하면 되는 거잖아. 대단한 거 아냐’     

아무리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발전해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기사는 따로 있으니 별달리 걱정할 필요 없다는 투였다. 다른 직업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더라도 글 쓰는 직업만큼은 로봇이 결코 넘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로봇 기자가 ‘자잘한’ 기사들을 처리해주면 인간 기자들은 오히려 더 심층적이고 현장 취재 내용이 풍부한 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모든 전문직은 사라진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The future of the profession)을 읽고 나니까 생각이 좀 달라졌다. 책에 나온 대로라면 변호사, 의사, 건축가, 회계사, 성직자, 교사 등 사람들이 전문직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직업들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참고로 이 책은 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 부자(父子)가 집필했다. 아버지 리처드 서스킨드는 30여 년간 기술이 전문직에 가져올 변화를 연구해온 법률 기술 전문가다. 그가 쓴 변호사의 종말, 내일의 변호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1990년대에 내가 앞으로는 의뢰인과 변호사들이 이메일로 업무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거란 이야기를 꺼냈을 때문해도 엄청난 비판과 조롱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책에 나온 절차에 따라 나의 업무를 하나하나 분석해봤다. 공장 노동자들의 업무를 동작 단위로 분석해 최적의 업무 절차를 만들어낸 테일러리즘처럼. 분석해보니 오늘날의 기술만으로도 기자 일을 로봇이 대체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기본 업무 중 하나인 기삿거리 찾기는 인공지능의 정보검색 능력을 활용하면 대체하기가 어렵지 않다. 메일 계정으로 들어오는 각종 보도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슈를 분석해내면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기삿거리를 찾는 건 힘든 일이 아닐 거 같다.     



  일단 기삿거리를 찾았다고 하면 저인망식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인터넷 등에서 긁어모으면 된다. 과거 신문 기사만 잘 분석하더라도 특정 이슈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인공지능의 빅 데이터 분석이면 각종 통계와 연구논문 등 분석해 인간 기자보다 더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추는 데도 문제가 없고. 개별 이슈에 대한 전문가의 논평은 그들이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글만 잘 추려도 문제가 없을 거다. 

     

  글 쓰는 작업도 크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기사라는 건 사실 몇 가지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트레이트, 해설, 인터뷰 등 기사 종류마다 해당 형식을 입력하고 그 형식에 맞춰 사실 관계를 잘 붙이기만 해도 괜찮은 기사를 쓸 수 있다.


  편집이야 이미 인공지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분야다. 독자들에 따라 같은 기사라고 해도 제목이 다르게 노출되고,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사만 보여주는 방식은 이미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네이버만 해도 Airs 뉴스를 통해 독자들의 취향에 맞춘 기사만 따로 제공하고 있다.     


전문직의 사라지는 이유_1


  이렇게 내가 하고 있는 업무 공정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니 기자일도 로봇이 대체하지 못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이미 버즈피드와 중국 진르토우티아오에서는 어느 정도 시도되고 있는 내용들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에서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전문직 대부분이 소멸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과거 베일에 쌓여있던 전문직 업무도 사실 하나하나 그 공정을 분석해보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단순 업무의 비중이 높다는 거다. 변호사를 예를 들면 소송 관련 서류 분석, 판례 분석 등의 검색 업무는 자동화 검색시스템을 사용하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폭넓게 처리할 수 있다. 컨설턴트들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관련 자료를 더욱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의사들이 환자의 증상을 보고 병을 진단할 때도 그동안의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처리하면 더욱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오진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건 물론이고. IMB이 개발한 왓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직 업무에 속해있는 반복적인 업무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만큼 과거처럼 그 일을 하는 데 고비용의 전문직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맡겨버리거나 아니면 과거 전문직보단 훈련 기간이 짧은 준전문가 집단이 인공지능 시스템과 함께 일하도록 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전문직이 사라지는 이유_2


  전문직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로, 기계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든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든 못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므로 굳이 사람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과거 1980년대에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접근방법이 인공지능이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따라 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인공지능 연구가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인공지능이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길 바라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한 가지 현상을 보고 그것의 맥락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않는다. 대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쏟아부어 인공지능이 그런 데이터 분석해 해답을 찾기를 원한다.     


  다시 변호사의 예를 들면 인간 변호사는 의뢰인이 왔을 때 그 사람의 케이스 하나하나를 분석해 그것에 알맞은 소송 전략을 조언해준다. 인공지능은 개별 사례를 뜯어보는 대신 그간 축적된 엄청난 양의 사례를 순식간에 분석해 의뢰인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최적인지를 분석한다.  오늘날 전문직의 업무 방식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인과 같다고 하면 인공지능은 대량 맞춤형 서비스와 같다. 

    

  이런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 로봇이 전문직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한다고 해도 업무의 결과물이 인간보다 나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책의 저자들은 장기적으로 분명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기적으론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인간보다 못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 전문직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매우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인공지능에 기반한 서비스는 그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시스템을 구축하면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수록 서비스 품질이 높아지는 시스템의 특성 덕분이다.     


  기자로서 내 업무 경험을 통해 비추어볼 때 맞는 말이다. 사실 인터넷 뉴스 콘텐츠에서 콘텐츠의 질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말 며칠을 공들여 쓴 기사나 30분 만에 후루룩 쓴 기사나 조회수와 관심도만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충 쓴 기사가 더 큰 관심을 가질 때도 많고.     


  일단 인터넷 뉴스 시장에서 중요한 건 콘텐츠의 질 보다도 독자들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를 쓰는 것이다. 일단 해당 주제가 독자들의 관심사에만 들어맞는다면 독자들은 만족한다. 쉽게 말하면 콘텐츠 수즌이 대충 70점 수준만 넘으면 독자들은 큰 불만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신문사에서 일하면 기사에 쓰이는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고민한다. 이 단어가 적절한지 앞에서 이 단어를 쓴 적은 없는지, 다른 단어와 비교할 때 뉘앙스의 차이는 없을지. 엄청나게 고민한다. 그런데 막상 독자들은 그런 고민에 대해 무관심하다. 기자로서는 대충 쓴 기사와 정말 공들여 쓴 기사에 대해 차이점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공지능 기자가 쓴 기사가 인간 기자의 글보다 단기적으로 문장 표현 등이 투박할 수 있지만 그게 일반 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변호사, 의사, 건축가, 성직자, 교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저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 기사보단 독자들의 선택이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용을 따져봤을 때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다지 나쁘지 않고,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인간 전문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뛰어넘는다고 하면 과연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인간의 서비스를 택할 사람이 있을까?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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