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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Mar 14. 2019

나물 장사로 매출 132억 회사 만든 전업주부.

부모님 도라지 팔아드리려 시작한 부업이 직원 50명 회사로

성장하는 기업들의 모습은 대개 비슷합니다. 화목한 가정들이 대부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 따뜻한 관심과 존중으로 자녀를 대하는 부모,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녀. 행복한 가정은 대개 이 세 가지 모습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적으로 회사를 경영해나가는 리더, 비용 절감을 통해 이뤄낸 높은 이익률, 경쟁자와 차별화되는 상품, 남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브랜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을 찾아가보면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들입니다.


저는 2016년말부터 지금까지 2년 3개월동안 한국경제신문과 네이버가 합작해서 만든 네이버FARM판에서 파견 근무 중인데요. 이곳은 네이버 안에서 농업, 식품, 귀농귀촌 등 농식품 업계에 관련된 주제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입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인터뷰이와 함께 @홍선표


대충 세아려 보니 FARM판에서 일하면서 대략 100여곳이 넘는 농가와 농식품 기업을 방문해서 취재하고 인터뷰 기사를 썼습니다. 제가 만나는 농민, 농식품 기업인들은 대부분 해당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분들입니다. 크게 성공한 분이 아니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만나뵙고 기사를 쓸 이유가 없죠.


2년여간 100여명의 부자 농부,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을 만나다보니 이 분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한 기업들에겐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고 농업 분야라고 해서 다를 건 없습니다.


이번 글에선 스스로를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전업주부'라고 소개한 고화순 하늘농가 대표의 사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 대표가 이끄는 하늘농가는 2018년 기준 연 매출 132억원에 직원 50여명이 일하는 농식품 가공업체인데요.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고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지 20년만에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식품 박람회


30대 주부가 부업으로 시작한 나물 장사를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킨 노하우와 현지 농가와의 계약재배로 생산 단가를 낮춘 비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 매출 132억 원에 직원 50명, 중소기업 중에선 규모가 꽤 되는 회사입니다. 식품 가공업을 하고 있는 이 회사는 1998년에 세워졌는데요. 독자분들께서는 이런 회사의 창업 CEO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그리고 창업자는 창업 이전에 어떤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회사를 세워서 20년 만에 이 정도 규모까지 키운 사람이라고 하면 그 이전에 이미 해당 분야, 그러니까 식품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자기 사업을 벌이는 데 관심도 많았을 거고 원래부터 사람들을 이끄는 데도 자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2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매출을 130억 원까지 키우고 직원들도 50명이나 고용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지금 이 글처럼 경제, 경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내용을 접하고 싶다면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을 들어보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뽑은 top 10 채널입니다.)


20년만에 매출 132억 원 기업을 만든 비결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고화순 하늘농가 대표의 모습은 방금 말한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편입니다. 사실 고 대표는 애초에 사업하고는 전혀 무관한 전업주부였습니다. 고 대표 스스로도 “원래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잘 기르며 사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전업주부였던 고 대표는 왜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회사를 이 정도 규모까지 키워낼 수 있었던 걸까요? 그가 이끄는 하늘농가는 나물‧채소류를 단체 급식에 납품하고, 또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식품가공업체입니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는 회사입니다.


지금은 직원 수십 명이 바쁘게 오가는 회사가 됐지만 처음엔 회사 사무실도 없이 고 대표 혼자서 집에서 하던 부업으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부업을 이 정도 규모의 회사로 키워낼 수 있었던 걸까요?


고 대표가 처음 사업과 연을 맺게 된 계기는 부모님이 키우던 도라지였습니다. 1996년이었습니다. 당시 고 대표는 학교 급식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결혼을 하고 나서 줄곧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구한 일자리였습니다.


하늘농가의 식품가공공장 내부


고향집 도라지를 팔려고 시작한 부업


고 대표의 고향은 경북 울진군이었는데요. 이곳에선 고 대표의 부모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여러 농산물 중에서도 도라지 농사를 제법 크게 지었는데요. 도라지 농사로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몇 년 전부터 중국산 도라지가 밀려들면서 국산 도라지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고 대표의 부모 역시 수확한 도라지를 팔지 못해 쩔쩔매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본 고 대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팔을 겉어 붙이고 나섰는데요.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덕분에 평소 학교 급식 영양사들과도 알고 지냈던 고 대표는 시골집에서 올려보낸 도라지를 들고 학교마다 돌아다닙니다. 샘플 도라지를 보여준 뒤 ‘울진군에서 키운 이 국산 도라지가 품질이 괜찮으니 사보는 게 어떻겠냐’고 영업에 나선 것이죠.


다행히 고향집에서 올려 보낸 도라지는 품질이 좋았고 몇 군데 학교와 거래를 시작하게 됩니다. 거래라고 해봤자 그 규모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급식에 도라지가 맨날 나오는 것도 아니고 취급하는 상품도 도라지 하나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첫 거래가 고 대표가 오늘날과 같은 회사를 차리는 첫걸음이 됩니다. 2년 정도 학교에 도라지를 납품하자(납품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올려보낸 도라지를 고 대표가 집에서 손질해서 박스에 담아서 넘기는 정도였죠) 점점 ‘다른 채소도 구해다 줄 수 있느냐’는 부탁도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부모님이 농사짓는 농산물을 팔아주겠다는 건데 고 대표도 신이 나서 일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지은 농산물로는 물량을 맞추기 힘들게 되자 고향집 주변 농가들한테서도 농산물을 받아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농산물을 고속버스 밑 짐칸을 활용해 보냈을 정도니까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농산물을 고향 마을에서 직접 구할 수 있는 덕분에 다른 식자재 납품 업체들보다 판매가를 낮출 수 있었던 게 고 대표의 장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고 대표는 1999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합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과거에 부업으로 했을 때와는 달리 농산물을 직접 학교에 납품하는 대신 보다 규모가 큰 식자재 업체에 납품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직원이라고는 집 근처 허름한 가게에 모여앉아 함께 채소를 손질하던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 밖에 없던 회사가 수많은 학교와 기업 구내식당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영업망을 뚫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사업 초기 빠른 성장을 위해서 다른 업체의 유통망을 빌린 거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농민, 농식품 비즈니스맨들의 성공 노하우에 대해서 분석한 <리치 파머> 


처음부터 브랜드를 쌓는데 집중하다


보다 큰 식자재 업체에 주문받은 농산물을 납품하던 이 시기에도 고 대표는 회사의 상품을 경쟁자들의 상품과 차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 같은 고민 덕분에 원래 거래하던 업체와 계약이 끝났을 때도 살아남고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요.


이 방법은 바로 회사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단체 급식용 식자재 시장에는 브랜드라는 개념이 드물었습니다. 그저 커다란 파란색 봉투나 갈색 종이상자에 주문받은 식자재를 담아 보내는 식이었죠. 이래서는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식자재를 보고 어느 업체에서 납품한 식재료들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죠.


“차별화하지 못하면 인식되지 못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영 그루로 꼽히는 세스 고딘이 자신의 대표작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줄기차게 말한 내용인데요.


이 말처럼 만약 고 대표가 자기 회사만의 브랜드를 만들지 쌓아올리지 못했다면 식자재를 납품하던 업체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큰 위기를 맞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차근차근 자신만의 브랜드를 쌓아 올렸습니다.



대형 식품업체들이 식자재를 포장하는 방법을 유심히 살폈던 그는 이 포장 방법을 자기 회사에도 도입합니다. 우선 회사 브랜드가 잘 드러나도록 포장 용기와 상자를 디자인했고요. 일부 채소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윗부분을 비닐로 덮어서 포장합니다. 마트에서 파는 팩 두부와 같은 방식으로 포장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문 물량에 맞춰 상품을 딱 맞게 담아보낼 수 있도록 여러 크기의 용기와 상자를 마련합니다.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영세 업체들이 대부분이었던 1999년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단체 급식업계에서는 남다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차별화된 디자인과 포장 용기로 브랜드를 쌓은 고 대표는 2004년엔 회사명을 지금의 하늘농가로 바꾸고 1차 업체가 돼서 여러 단체 급식장에 직접 식재료를 납품하기 시작합니다.



필자와 동료들이 함께 저술한 <리치 파머> 본문


“단호박 하나를 납품하더라도 식당에서 이 단호박을 어디다 사용하는지를 물어보고 용도에 맞게 손질해서 보냈어요. 급식을 준비하는 일은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해야 될 일을 줄여주면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단호박만 해도 카레에 넣을 건지 조림으로 할 건지에 따라서 써는 방법이나 크기가 다르거든요. 그래서 가로, 세로 1㎝ 크기로 깍둑썰기한 카레용 단호박 같은 상품을 만들어서 주문받았어요. 샐러드 채소도 비빔밥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그냥 샐러드로 먹느냐에 따라서 자르는 법이 다른데 이것도 비빔밥용, 샐러드용 이런 식으로 상품을 규격화해서 판매했죠.” 


산지 농가들과 직접 계약을 맺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이런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식재료를 납품받는 데서 오는 가격 경쟁력, 디자인 차별화를 통해서 쌓아올린 브랜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세심한. 이 세 가지가 하늘농가가 그동안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 대표는 지금도 대부분의 식재료를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군의 농가들, 경남 남해군 창선농협, 충남 부여군 세도농협, 강원 영월군 산나물박물관 등 산지 농가와 농협, 영농조합 등에서 직거래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들여서 가공한 식재료를 5000여 곳의 초중고교와 기업 구내식당 등에 납품하고 있고요. 고 대표는 “산지 농가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일 년 동안 필요한 물량을 정해진 가격대로 납품받고 있어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을 때도 걱정할 게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돈농가를 방문했을 당시 농민과 함께 사진을 찍은 필자 @홍선표


하늘농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나물·채소 가공식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각종 나물을 데친 뒤 진공 포장하고 따로 나물 양념소스를 첨부한 식품인데요. 집에서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되면서 이에 대한 준비에 나선 것이죠. 


“회사 매출이 대부분 학교 급식에 납품하는 데서 나오다 보니 학교가 방학하는 여름과 겨울철에는 매출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어요. 직원들은 출근해서 나와있는데 일거리가 없었던 적도 있고요. 그래서 옛날부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면서 마트에 소매용으로 납품하기도 하고 집에서 간단하게 2,3분이면 해먹을 수 있는 나물 가공품도 만들어서 팔게 됐어요.”



고 대표는 2016년부턴 회사 안에 따로 연구부서도 만들었습니다. 단체 급식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상품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최근에는 해외 수출용으로 컵 비빔밥을 개발해 프랑스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물 가공식품을 개발한 노하우를 살려서 외국인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개발한 것이죠. 


고 대표는 자신과 하늘농가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내가 고객이라면 어떤 서비스와 제품을 원할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태도’를 꼽았습니다. 작은 중소기업이 대형 식품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세심함 덕분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영양사분들이 식자재업체에 주문을 했더라도 급하게 변경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갑자기 메뉴가 달라져서 먼저 주문한 재료를 취소하고 다른 재료로 해야 된다든지, 식사 인원이 늘어나서 식자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던지. 대형 업체 같은 경우에는 일단 주문한 내용을 변경하는 절차가 번거로운데 저희는 직원이 24시간 대기하면서 이를 변경 주문들을 처리했어요. 퇴근한 다음에는 회사 전화를 제 핸드폰으로 돌려놓고 제가 직접 이런 주문들을 처리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해서 바로 다음날이더라도 고객이 필요한 재료들을 꼭 가져다드렸던 게 처음에 저희가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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