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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Jan 14. 2019

20만원 내고 농업이야기 듣는 포럼, 흥행한 비결(1)

1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드세요.

포럼 티켓 가격은 결국 그 산업의 위상에 따라 결정된다


특정 산업의 전문가와 현업 종사자들이 나와 자신들의 지식을 청중들과 나누는 포럼, 콘퍼런스는 그 산업의 경제적 위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앞으로 유망한 분야에 대한 포럼이라면 청중들로 행사장이 가득 차고 , 티켓 가격도 1인당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이 넘습니다. 반대로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분야거나 쇠락하고 있는 산업 분야의 포럼이라면 행사장은 한산하기만 하고 티켓을 판매하기는커녕, 경품 이벤트 등을 통해서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것도 벅차지요.


농업은 어떨까요? 독자 분들도 쉽게 짐작하실 수 있듯 그동안 농업 분야 포럼은 대부분 무료나 아니면 아주 약소한 금액의 참가비만 받은 채 열렸습니다. 대부분 농업 분야 박람회·전시회의 부대 행사 정도로 해서 전시장 한편에서 소박하게 열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농업이 미래다'라고 수년째 목놓아 외쳤지만 국내 농업이 처해있는 산업적 현실이 그런 구호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겉보기엔 별 비전이 없어 보이는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십만 원을 주고 티켓을 구매할 사람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죠.



이틀에 20만원 내고 누가 농업 포럼을 듣냐?


지난해 제가 일하는 네이버 FARM판에서 이틀 동안 참가비 19만 8000원을 내고 듣는 전문 농업 포럼을 개최한다는 계획을 내놨을 때 돌아왔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무리 네이버를 통해서 홍보할 수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료 농업 포럼은 안 된다', '누가 20만 원씩이나 내고 농업 포럼을 듣냐', '다른 전시회 가면 포럼이든 토크 콘서트든 다 공짠데 왜 여기만 이렇게 돈을 받으려고 하냐' 


거의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회사 사업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행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포럼이 열렸던 사흘 내내(첫 이틀 동안 참가비는 19만 8000원, 마지막 하루는 2만 원) 16개 세션 대부분이 250석의 좌석을 가득 메울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지금부터 4회에 걸쳐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럼 기획 - 프로그램 구성 - 홍보마케팅 - 현장진행 네 단계로 나눠서 연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농업에서 가능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가능하다


지난해 7월 열렸던 팜테크포럼의 진행 상황과 성과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한국 농업 발전을 위해선 저희가 주관한 것과 같은 유료 농업 포럼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둘째, 2019년에도 진행될 팜테크포럼에 대해서 더욱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셋째, 농업이라는 '돈 될 것 같지 않은 분야'에서도 포럼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벤치마킹해 사용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오늘은 저와 저희 동료들이 국내 첫 유료 농업 포럼을 기획할 때 가장 신경 썼던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봅니다.


우선 제가 일하는 네이버 FARM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곳은 제가 소속된 한국경제신문이 네이버와 함께 합작 투자해서 만든 콘텐츠 회사입니다. 네이버 안에 있는 여러 주제판 중 농식품 관련 주제를 다루는 farm판을 운영하는 것이 회사의 주된 사업입니다. 2019년 1월 현재 약 300만 명의 이용자가 farm판을 설정했고요. FARM 판 모바일 페이지를 방문해주시는 순 방문자(중복 집계하지 않은 순수한 인원수)는 약 30만 명에 달합니다. 



하루 30만 명이 방문하는 사이트(편의상 사이트라고 하겠습니다.)를 그것도 농업 분야에서 갖고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분들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시작했다는 건 틀림없습니다. 특히 홍보, 마케팅에 있어서는 정말 큰 이점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강력한 플랫폼을 가졌다고 해서 2박 3일 간 진행되는 오프라인 행사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콘텐츠를 보는 것과 이틀 동안 자기 돈 20만 원을 내고 포럼을 듣는 건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입니다. 평소 먹거리에 대해 다룬 이야기, 농민들 인터뷰, 귀농귀촌 노하우에 대해 다룬 콘텐츠를 즐겨 읽는다고 해서 그 이용자분들이 자기 돈을 내고 일산 킨텍스까지 와서 포럼을 들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FARM 판 인력 전원이 기자들로 구성돼 있어 그전에 포럼과 같은 행사를 기획해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도 큰 약점이었습니다. 경험이 없기에 모두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행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 정도 돈을 내고 듣는 유료 농업 포럼이 없었다는 것도 걱정거리였습니다. 아직 만들어지 않은 시장이었으니 저희가 처음으로 시장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2018년 팜테크포럼 브로셔


포럼 자체에서 매출과 이익을 내야하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다른 농업 포럼과는 전혀 다른 타깃을 선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기존의 농업 포럼은 대부분 전시회/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개최됐습니다. 포럼 자체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고 그저 전시회/박람회를 받쳐주기만 해도 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포럼들이었습니다. 청년 농부들의 토크 콘서트나 귀농인들의 귀농 노하우를 발표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유료로 자기 돈을 내고 전문적인 농업 포럼을 들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누군지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전문적인 농업 지식, 트렌드, 기술 발전 동향에 이야기를 듣는 대가로 돈을 낼, 지불의사가 있는 분들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국 유료 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B2B(기업 간 거래) 모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연사들의 전문적인 식견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수요층은 결국 농식품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과 그 기업 임직원들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2018년 팜테크포럼 브로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기존의 농업 포럼과는 다른 방향을 채택한 것이었습니다. 기존 행사들은 대부분 예비 귀농인이나 개별 농민들에 초점을 맞춘 행사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농촌에 내려가서 잘 정착할 수 있는지 혹은 개별 농민의 스몰 비즈니스에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전달하는 자리였죠. 그리고 이렇게 개인들을 타깃으로 한 행사였기에 참가비를 받거나 비용을 높이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랬다가는 행사장에 사람들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게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전체 박람회 행사를 주관하는 게 아니라 포럼 행사만을 주관하는 것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박람회 전체를 주관한다면야 포럼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충분히 메꿀 수 있었지만 저희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그래서 우선 저희의 타깃을 농식품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임직원으로 맞췄습니다. 


(세 번째 날 포럼은 좀 다릅니다. 세 번째 날 행사는 토요일에 진행되는 행사이기도 해서 다른 농업 포럼들과 마찬가지로 귀농귀촌 노하우를 중심으로 한 여섯 강의에 2만 원 코스로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행사 자체를 B2B 모델로 가자고 정하자 그다음부터는 어떤 연사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할지가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첫째, 농식품 비즈니스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전문적인 내용들로 포럼을 구성해야 했고요. 둘째, 실제로 현장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을 연사로 섭외해야 했습니다.


먼저 타깃 소비자 집단을 정하고 그에 맞춰 상품을 제작하라. 듣기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종종 무시되곤 하는 말입니다. 많은 회사들에서 어떤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팔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잘 만드는 물건을 먼저 개발한 다음에야 누구한테 이 물건을 팔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의미 있는 매출과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만들 상품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찾고, 그들에게 특화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저와 제 동료들이 지난해 팜테크포럼을 기획하면서 가장 처음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해외 농업 트렌드, 농업 분야 투자, 농업 스타트업, 농기업에 특화된 경영전략, 식품 시장 트렌드, 스마트팜, 농업 디자인, 농업 유통 등의 카테고리에 맞춘 연사 섭외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이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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