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돼지 농부가 '결국 시장이 모든 걸 결정한다'고 말하는 이유
“전문가들끼리 모여서 동물복지 축산이 꼭 필요하고, 앞으로는 윤리적 소비가 축산의 큰 트렌드가 될 거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별 소용없어요. 결국 중요한 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거예요. 소비자들이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동물복지 농장들도 계속 운영될 수 없을 거예요”
경남 거창군에서 돼지농장 ‘더불어 행복한 농장’을 운영하는 김문조 대표는 국내 동물복지 축산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진주산업대 국제축산개발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1년 경남 고성군에 있는 돼지농장 직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합니다.
농장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은 그는 2005년 지금 자리에서 자기 농장을 시작합니다. 어미 돼지 50여 마리만 있던 작은 농장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사료값을 벌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돼지들에게 먹이를 준 뒤 공사장에 나가 일용직으로 일하고, 저녁에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돼지들을 살피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농장을 키워가면서 2012년에는 모두 1000여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규모로 농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동물복지 사육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동물복지란 사육 과정에서 돼지, 소, 닭 같은 가축들이 느끼는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 사육 방식을 뜻합니다.
돼지 농장의 예를 들자면 돼지들을 스톨(좁은 면적의 철제 사육틀)에 넣어 기르면 안 되고 축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풀어놓고 키워야 합니다. 축사 바닥에도 왕겨 등을 깔아서 돼지가 보다 편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죠.
돼지 한 마리당 정해져 있는 사육 공간의 면적도 일반 농장보다 두 배가량 넓어야 합니다. 새끼 돼지들의 꼬리와 송곳니를 잘라서도 안 됩니다.
이외에도 동물복지 농장으로 인증받기 위해선 가축 종류마다 지켜야 하는 조건들이 있는데요. 국내에선 2012년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도입되면서 동물복지 축산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김문조 대표가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바꾼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의 농장에서 생산한 돼지고기는 2016년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습니다. 축산물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선 농장에서 동물복지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돼지 도축장과 이곳으로 돼지를 운송하는 운송 차량 모두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서 정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처럼 김문조 대표는 양돈 분야에서 국내 동물복지 축산을 이끌고 있는 인물 중의 한 명인데요. <더농부>가 최근 그를 만난 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 축산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와 국내 동물복지 축산이 처한 현실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동물복지 축산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 자주 나오는 단어가 ‘동물의 행복권’, ‘윤리적 소비’, ‘친환경 축산’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김문조 대표 역시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단어들을 자주 사용했는데요.
하지만 그가 입에 더 자주 올린 단어는 ‘시장’, ‘소비자의 선택’, ‘가격’, ‘생산성’, ‘수요와 공급’과 같은 단어들이었습니다. ‘동물의 행복권’ 같은 단어들이 다소 이론적, 관념적으로 느껴지는 데 비해 ‘시장’과 ‘소비자’라는 단어는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연결된 단어들인데요.
김문조 대표가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면 한국 동물복지 축산의 미래는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그에게 대학 축산과를 졸업하고 남의 농장에 들어가 돼지를 기르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 무렵 학과 선배와 동기, 후배들 중에서 실제로 농장에 들어가 일하는 인원의 비율은 10%에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은 공무원이 되거나 농협‧축협 같은 농업 분야 기관‧협회에서 일하고 싶어 했죠.
“2년 동안 학교에서 축산을 배우면서 여러 농장에 가서 실습을 해봤어요. 돼지 농장뿐만 아니라 낙농 농장에서도 일해 봤고 양계장에서도 일했죠.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까 돼지를 키우는 일이 제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이용해서 남보다 돼지를 잘 키우면 수입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1991년 경남 고성군에 있는 돼지농장 직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들만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장, 종돈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축산 지식을 현장에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요.
이곳에서 2년간 일한 그는 1993년 다시 모교인 진주산업대로 돌아갑니다. 이 학교가 일종의 양돈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되면서 학교 안에 양돈산학협동연구회라는 연구‧교육 기관이 생겼고 그곳 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여기서 양돈 지식에 대해서 훨씬 더 깊이 배울 수 있었어요. 제가 했던 일이 전국의 양돈 농민들을 대상으로 최신 양돈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었거든요. 양돈기술단계과정이란 이름으로 1주일짜리 교육 과정도 운영했고 전문가들을 불러서 양돈기술 세미나도 열었죠.
이런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다 보니까 저절로 최신 사육 기술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농민들이 대부분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게 됐죠. 교육 실무 담당자가 저였으니까 모든 교육 내용에 대해서 공부해야만 했죠”
이 기간 동안 그는 낮에는 연구회 담당 과장으로 일하고 밤에는 축산학과에서 전공 수업을 듣는 생활을 2년간 반복했습니다. 원래 2년제였던 진주산업대 국제축산개발학과가 4년제 과정으로 바뀌었고 김 대표가 편입을 통해 3학년으로 다시 입학했기 때문이죠. 밤낮으로 돼지 사육 방식에 대해서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현장 경험에 최신 사육 기술까지 더한 그는 1996년 고향인 경남 진주에 돼지 농장을 차리려 합니다.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는데요. 그는 “사기에 말려들어서 땅만 사놓고 농장은 짓지도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만 날렸다”고 짧게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그는 억대의 빚을 지게 되는데요.
빚을 갚기 위해서 다시 남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는 돼지 농장의 농장장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더 쌓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자기 농장을 차리려는 두 번째 시도에 나선 건 2005년이었습니다. 이때는 땅을 사고 축사를 지어 새로 농장을 꾸리는 대신 원래부터 있던 작은 돼지농장을 인수해 자기 농장을 차렸죠.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 50마리만 있던 소규모 농장이었습니다.
농장을 시작한 뒤로 처음 반년 동안은 새벽과 밤에는 농장 일을 하고, 낮 시간에는 일용직 근로자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돼지농장을 인수했다고 그때부터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어미 돼지들이 난 새끼 돼지가 다 자라서 시장에서 내놔야만 돈이 손에 들어오니까요. 돼지들을 키우려면 사료가 필요한데 누가 사료값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농장을 인수하느라 빚도 꽤 졌죠.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돼지들한테 먹이를 주고 난 다음에 공사장에 나가 일했어요. 일이 끝난 다음에 다시 농장에 와서 돼지들을 돌봤고요.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벌어서 돼지들을 먹여나갔죠.”
10여 년 년 동안 농장에서 일하면 쌓은 현장 경험과 전문 지식 덕분에 농장은 몇 년 안가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안정적으로 농장 규모를 키워나가던 그가 동물복지 축산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뜬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김 대표는 자신이 동물복지 사육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2007년 무렵부터라고 설명합니다. 이 시기는 가축들이 걸리는 질병인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여기 거창에선 구제역이 발생하진 않았었어요. 그래도 다른 농장들이 구제역 때문에 하루아침에 문 닫는 모습을 보니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죠. 돼지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환경에서 돼지들을 키우는 게 좋은 걸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그전부터 동물복지 축산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때부터였어요”
그는 독일과 덴마크 등 유럽의 축산 농가들이 동물복지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모습과 그곳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물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지금껏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세 가지 모습에 크게 놀랐는데요.
첫째, 일반 농장에서 키운 돼지고기 값보다 최대 4배가량 높은 값에 팔리는 동물복지 돼지고기 가격과 이렇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고요.
둘째, 동물복지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는 축산 농가들의 사육 기술에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사육되는 돼지들에 비해서 훨씬 더 좋은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자라는 돼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독일에 있는 마트에 가봤더니 동물복지 농장에서 키운 돼지고기는 네잎클로버 모양으로 된 인증 마크가 찍혀서 팔리는데 가격이 다른 돼지고기보다 네 배 이상 더 비싸더라고요. 두 배 더 비싼 것도 아니고 가격이 네 배나 더 비싼데 그 고기만 찾아서 먹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가격과 맛뿐만 아니라 이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됐는지까지 따지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제 곧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소비자들이 늘어나겠구나. 동물복지 농장을 하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동물복지 축산이 트렌드로 떠오를 것이라는 판단과 돼지를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그는 2012년부터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합니다.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기에 하나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며 농장을 바꿔나갔는데요.
몇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돼지 농장의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악취를 없애고 돼지들이 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설비를 갖췄는데요. 돼지들이 배출하는 분변에 미생물을 섞어 악취를 줄이고, 폐수를 다시 정화해서 사용하는 친환경적인 분뇨 처리 시스템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새끼를 밴 어미 돼지부터 시작해서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들을 스톨(철제 사육틀)에서 빼낸 뒤 넓은 축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이곳 농장에선 수태 초기에 어미 돼지에게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스톨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축사 바닥에 왕겨를 깔고, 2주에 한 번씩 갈아주면서 돼지들이 조금 더 편안하고 청결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고요.
따로 사료를 주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돼지들이 배가 고프면 알아서 사료 급여기(사료를 주는 장비)에 들어가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일반적인 농장과는 다른 점입니다. 이 장비는 김 대표가 따로 개발한 장비인데요.
“원래는 돼지 20마리가 지내는 방마다 외국에서 수입한 동물복지용 사료 급여기를 1대씩 넣었어요. 그런데 사료 급여기가 1대밖에 안 되니까 돼지들 중에서도 힘이 약한 돼지들은 밀려서 제대로 사료를 먹지 못하더라고요.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까 체중도 안 늘고,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직접 사료 급여기를 만들어 봤어요. 한 방에 4대씩 넣으니까 힘이 달려서 제대로 못 먹는 돼지도 없고 돼지들이 자기가 알아서 사료를 잘 찾아먹더라고요.”
김 대표는 사육 환경을 사람이 얼마나 편하게 키울 수 있는지가 아니라 돼지가 얼마나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두고 바꿔나가면서 돼지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들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게 새끼 돼지의 꼬리를 자르지 않는 일인데요.
“일반적으로 돼지를 키울 때는 어렸을 때 꼬리를 자르거든요. 돼지들끼리 서로 꼬리를 물어뜯으면서 다치는 걸 막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사실 사료만 제대로 줘도 꼬리를 자를 필요가 없어요.
돼지들이 서로 꼬리를 물어뜯는 건 사료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사료에 곰팡이가 생기고, 그 사료를 먹은 돼지가 설사를 해서 항문과 꼬리 쪽에 이상한 냄새가 나서 그런 거거든요. 이상한 냄새가 나니까 다른 돼지가 가서 물어뜯는 거고요. 사료 관리에만 더 신경을 써도 그렇게 꼬리를 자를 필요가 없죠.”
돼지들에게 주는 스트레스 혹은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면서 돼지 사육의 생산성 역시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더불어 행복한 농장에선 1년 동안 어미 돼지 한 마리당 24마리가량의 비육돈(돼지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돼지)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국내 양돈농가의 평균은 17마리 수준인데요.
돼지들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새끼를 낳았고 사육 과정 중간에 폐사하는 돼지들의 숫자도 줄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농장의 분만율은 85%~90%예요. 수정된 어미 돼지 열 마리 중에서 아홉 마리는 새끼를 낳는다는 거죠. 육성률은 95%예요. 일단 새끼 돼지가 태어나면 95%는 시장에 나갈 때까지 무사히 잘 자란다는 말이죠.
일반적인 농장들보다 분만율과 육성률 모두 상당히 높은 편이죠. 돼지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니까 그만큼 더 많은 새끼를 낳고, 또 중간에 아프지 않고 잘 자라는 거죠”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면 동물복지 축산을 선택한 김 대표의 선택은 선견지명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처럼만 보입니다. 돼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생산성도 올렸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이 김 대표에게 금전적으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국내 동물복지 농장 중에서 동물복지 사육을 포기하는 곳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대표가 이같이 말하는 건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면서 생산 비용은 크게 늘어났지만 시장에 팔 때는 일반적인 돼지고기와 별 차이 없는 가격으로 고기를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금 전에 어미 돼지가 낳는 새끼 돼지들은 늘어나고, 중간에 폐사하는 돼지들은 줄어들면서 어미 돼지 한 마리당 시장에 내놓는 돼지들의 수가 늘어났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말만 들으시면 동물복지 농장을 하면 일반 사육 방식보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돼지 농가의 경우 동물복지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게 되면 같은 면적에서 일반 사육 방식으로 키울 때보다 사육할 수 있는 돼지의 숫자가 절반가량으로 줄어듭니다. 돼지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사육 공간이 두 배가량 넓기 때문인데요.
김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은 땅 넓이 4800평, 축사 면적은 1100평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돼지 농장이라면 돼지 4500마리를 키울 수 있는 규모죠. 하지만 김 대표의 농장에서 자라는 돼지는 그 절반인 2200여 마리입니다. 일단 이렇게 키울 수 있는 돼지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동물복지 방식으로 사육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해야 합니다. 돼지를 철제 사육틀 안에 가둬 키우는 게 아니라 축사 안에서 풀어 키우기 때문에 사람 손이 가는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2주에 한 번씩 축사 안에 왕겨를 깔아주는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농장에선 이런 일에 노동력이 들어갈 이유가 없죠. 김 대표는 “지금 정도 사육 규모면 원래 2~3명만 일해도 충분한 규모지만 동물복지 사육을 하려면 5~6명은 필요해요”라고 말합니다.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 맞게 축사를 새로 짓고 그 안에 사료 급여기 등 각종 설비를 갖추는 데 쓴 초기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 대표는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모두 17억 원을 사용했는데요. 이 돈은 모두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사육하는 돼지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직원 수는 늘려야 했고, 거기에 설비 투자 비용으로 큰 금액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농장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악조건들인데요.
이런 불리함을 이겨내고 동물복지 농장이 일반 농장과 같은 수준의 매출과 이익률을 거두기 위해선 한 가지 답밖에 없습니다. 돼지의 판매 가격을 올리는 것이죠.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추가로 드는 비용만큼 가격을 높여 받을 수 있다면 김 대표 같은 농민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 대표는 과거에 기존 방식으로 돼지를 키울 때 벌었던 매출과 이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가 판매하는 돼지의 가격에 그가 동물복지 사육을 선택하기 위해 감당한 추가 비용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생활협동조합과 돼지고기 유통업체 한 곳에 돼지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돼지를 넘길 때 일반적인 돼지보다 한 마리당 3만 원의 돈을 더 받습니다. 이 마리당 3만 원이 동물복지 사육을 선택한 대가로 받는 추가적인 이익인데요.
전체 돼지 사육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 손해를 메꾸기에는 크게 부족한 금액인 게 사실입니다. 현재 김 대표의 농장은 동물복지 사육으로 바꾸기 전에 비해 매출과 이익 모두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매출만 놓고보면 약 20억 원가량 줄어들었고요.
“내가 동물복지하느라 들인 돈이 얼마고, 우리 돼지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잘랐는데 소비자들은 왜 이걸 몰라줄까라고 원망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한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유통업체에서 저한테 그만큼밖에 더 못 주는 것도 시장에서 비싼 가격을 내고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사 먹을 소비자들이 아직은 별로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들이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란 돼지의 고기를 일반 돼지고기의 두, 세 배 가격에 사준다면 유통업체들이 저한테 주는 돈도 그만큼 늘어나겠죠.
그리고 그렇게 돼서 동물복지 농장을 해도 지금 하고 있는 것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만 하면 다른 돼지농장들 중에서도 동물복지로 바꾸는 농장들도 늘어날 거고요.
결국 모든 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거 같아요. 소비자들이 아직 제 상품의 가치를 몰라주는데 더 비싼 돈을 내고 내 고기를 사드시라고 할 수는 없죠.”
김 대표는 국내에서 동물복지 축산물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먼저 소비자들에게 동물복지 사육의 참뜻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동물복지 농장에서 키운 돼지고기가 더 맛있고 건강하다고 홍보할 게 아니라 사람이 먹으려고 키우는 동물도 살아있을 동안에는 제대로 대우받으며 고통 없이 자랄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위한 동물복지가 아니라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저희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가 어떤 농장의 돼지하고 비교해도 더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돼지들이 행복한지까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돼지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 가서 저희 농장의 돼지고기가 맛있으니까 저희 돼지를 사달라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돼지고기 맛에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만큼이나 어떻게 도축하느냐, 어떻게 숙성시켰느냐도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사실 사람의 입이 느끼는 맛만 생각하면 동물복지를 하지 않고도 맛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죠.
저는 동물복지는 맛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먹는 가축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사육할 때는 고통스럽게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생각에 동의하시는 소비자분들이 많아져야만 동물복지 방식으로 가축을 키우는 농민들도 많아질 수 있죠.”
동물복지 사육의 핵심이 어떻게 하면 맛있고 사람의 건강에 좋은 돼지고기를 만드느냐가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동물이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사육될 수 있도록 하고, 가축 사육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동물복지의 가치 그 자체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만 가축을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농민들도 힘을 받을 수 있고요.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만이 축산업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김 대표가 갖고 있는 신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