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케네디 오바마 트럼프. 그들은 어떻게 연설로 사람의 마음을 얻었을까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미국 대통령이 연설로 사람의 마음을 얻은 비결>이란 주제로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적절한 사례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연설 중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연설은 아마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일 거 같습니다. 이 연설은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링컨이 죽은 장병들의 추도식에 참석해서 했던 연설입니다.
우리말로는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표현으로 번역되는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 폴 더 피플이란 표현으로 유명한 연설이죠.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발표돼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연설의 분량은 얼마나 될까요? 시대를 뛰어넘은 명연설인만큼 그 분량도 길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사실 이 연설은 불과 266개 단어로 이뤄져 있습니다. A4용지 반 페이지가 넘을까 말까 한 아주 짧은 분량이죠. 실제 연설 시간도 2분에 불과했습니다.
오늘은 본인 스스로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탁월한 작가였던 존 에프 케네디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과 지난 1월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두교서 연설 그리고 미국 드라마 속 대통령의 연설을 바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기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미국 35대 대통령을 지낸 존 에프 케네디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명연설로 유명한 대통령입니다. 마흔네 살의 나이에 대통령에 오른 그는 젊고 박력 있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서 했던 연설에는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한 봉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여러분의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보라”는 구절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암살당한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케네디가 정치가 이전에 타고난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직후인 1945년엔 허스트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 4년 전인 1957년엔 그가 쓴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1917년 시작된 퓰리처상은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저널리즘과 문학, 음악 분야 상입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반기 top10에 선정된 채널입니다.)
그의 책 <용기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여러 정치가 중에서 케네디가 훌륭하다가 판단한 여덟 명의 정치가들의 삶과 업적을 다루고 있죠.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로서 케네디의 재능과 명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 수 있죠.
그런 케네디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사례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61년 그가 의회를 찾아 미국의 우주 개척에 대한 의지를 밝혔던 연설에서 그의 문학적 재능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1961년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개척 경쟁에서 한발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펼치던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입니다. 정치, 군사, 경제적 분야만큼이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두 국가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케네디의 연설이 있기 4년 전인 1957년 미국은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기술력만큼은 미국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거였죠. 미국도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등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련은 번번이 미국을 앞질러 갔습니다. 1961년 4월엔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앨런 셰퍼드는 그보다 한 달이 늦었죠.
이런 상황에서 의회를 찾은 케네디는 연설 말미에 우주 개척에 대한 대담한 계획을 내놓는데요. 그 표현이 손에 잡힐 듯 매우 구체적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앞으로 하나의 목표에 전념해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를 해낸다면 달에 가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이 나라 전 국민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합니다.”
케네디는 미국의 우주 진출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일반인들이 어려워할 만한 단어를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겨 우주 개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깁니다. 뛰어난 작가인 그는 달을 걷는 우주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자신과 미국 정부의 계획을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럼 실제로 케네디가 했던 것과 같이 살아 숨 쉬는 묘사를 사용하는 게 말하기의 효과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먼저 제가 같은 주제에 대해 다룬 두 가지 연설문의 짧은 도입부를 읽어드릴 테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도입부는 좀 짧은데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백악관의 웨스트 윙에서 생방송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오늘 매우 역사적인 행사에 생방송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기회를 맞이하여... 첫 번째 도입부는 여기까지입니다.
두 번째 도입부도 들려드리겠습니다. 11개월 전 1200파운드의 우주선이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습니다. 18시간 전 우주선은 화성에 착륙했습니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전국의 6만 명의 학생들, 남부 캘리포니아의 제트 추진력 연구소 그리고 휴스턴의 나사 엔지니어들은 바로 여기 백악관에서 처음으로 우주선이 보는 화성을 보게 됩니다.
잘 들으셨나요? 방금 들려드린 두 개의 연설문 도입부는 둘 다 미국 대통령이 우주선의 화성 착륙을 국민들에게 발표하는 상황을 가정해서 쓰인 연설문입니다. 현실에서 사용됐던 연설문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 나오는 대통령 제드 바틀렛이 우주선 착륙을 기념해 부하들에게 준비시킨 연설문 내용이죠.
첫 번째와 두 번째 도입부를 서로 비교하며 들어보시니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첫 번째 연설문은 그저 평이하기만 합니다. 인간이 발사한 우주선이 처음으로 화성에 착륙하는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죠. 매우 역사적인 행사에 생방송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는 어떤가요? 마치 청중들이 대통령 옆에서 함께 우주선 착륙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죠. 11개월 전 1200파운드의 우주선이 발사돼 18시간 전에 화성에 착륙했다는 구체적인 정보들도 담겨있고요.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도 대통령 제드 바틀렛은 두 번째 도입부를 연설문으로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두 번째 도입부가 훨씬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정보, 한 마디로 사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우리들에게 조금 더 친숙한 미국 대통령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명연설로 이름을 떨친 대통령입니다. 그에겐 코디 키넌이란 연설담당 수석비서관이 있었는데요. 코디 키넌이 한창 오바마의 연설물을 쓰던 2011년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습니다. 코디 키넌은 특히 근면하게 일하는 미국의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대통령 연설문에 자주 등장시켰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코디 키넌을 특별히 신뢰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의 이야기를 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그리고 주변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야말로 미국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연설문 소재로 삼는 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했던 연두교서 연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새해 초마다 의회를 찾아 앞으로 1년간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밝히는데요. 이 연설을 특별히 연두교서라고 밝힙니다.
1년간 추진할 주요 정책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국가가 처해있는 주요 현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입니다.
저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모습을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시청하고 또 그의 연설문 전문을 영문과 한글 번역본을 통해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권력자의 연설은 역시나 살아있는 사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시간 20분가량의 연설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서 소개한 인물만 모두 10여 명이 넘었습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동안 활약한 미국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합니다. 폭풍우를 뚫고 40여 명을 구출해낸 해안경비대 대원 애슬리 레퍼트와 산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어린이 60명을 구해낸 소방관 데이비드 달버그의 사례를 소개하며 의회에 초청된 그들에게 미국 국민을 대신해 박수를 보냅니다. 회의장에 앉아있던 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칩니다.
2017년 6월 야구 연습 도중에 괴한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던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원내총무의 복귀를 축하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자신이 이뤄낸 경제적 성과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역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여냅니다.
법인세 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린 법인세 감면 효과를 설명할 때는 코리 애덤스란 용접공을 가리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코리 애덤스도 오늘 밤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고 2009년 불황 때는 실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금 용접공이 되었고 다른 성실한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금 감면을 통해 새 집과 두 딸의 교육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일어나 봐요. 코리. 그는 훌륭한 용접공입니다. 그의 사장에게 내가 직접 말해주었습니다. 축하해요. 코리”
만약에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 감면 효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평범한 이웃인 코리 애덤스의 사례 대신 각종 숫자를 사용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법인세 감면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평균 가처분소득이 400만 원 정도 올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면 듣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효과는 코리 애덤스라는 눈에 보이는 인물을 소개했을 때보다 훨씬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례로 든 인물은 이들만이 아닙니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할 때는 캘리포니아 출신 12살 소년 프린스틴을 가리킵니다. 프린스틴은 성조기가 새겨지지 않은 군인들의 묘지에 성조기를 달아주겠다는 마음만으로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 성조기 달기 운동을 벌여 약 4만 개의 성조기를 전사한 군인들의 묘지에 답니다.
단순히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에 대한 예우를 개선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12살 소년의 사례를 드는 것 중 어떤 게 더 효과적일까요?
오늘은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바탕으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에 들어맞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의 효과와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청취자 분들도 이제 말하기와 글쓰기에 있어서 사례와 예시를 드는 것,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복잡한 이론과 숫자 대신 사례와 예시 등 이야기 스토리를 훨씬 더 잘 기억하는 건 인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인류가 문자를 통해 정보와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한 건 불과 수천 년 전부터입니다. 그전까지 우리 인류는 글이 아닌 말을 통해 조상 대대로 정보를 전달해왔습니다. 그리고 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때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형식이 바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 스토리입니다. 우리의 뇌가 이야기 스토리에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스토리가 들어간 사례로 말과 글을 구성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오늘 다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이론과 통계 숫자가 아닌 눈에 보이는 생생한 사례를 먼저 찾아라. 일단 적합한 사례와 예시를 찾았다면 당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둘째는 상황을 묘사할 때는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묘사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성실하다고 말할 때도 그냥 그는 성실합니다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그는 매일 아침 가장 일찍 출근합니다와 같은 방식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도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항상 적절한 사례와 효과적인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 경영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순서는 여기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출간 한 달만에 1쇄 3000부를 모두 팔고, 교보문고 CEO 필독서로 선정된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의 PDF 파일을 무료로 공유드립니다.)
(지난 <홍자병법> 뉴스레터 보기)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반기 top10에 선정된 채널입니다.)
(유튜브에서도 써먹는 경제경영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팟빵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