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34조 원 빚더미에 깔린 회사를 2년 만에 부활시킨 78세의 현자,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란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다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힙니다.
1959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전자부품 제조업체 교세라를 창업한 그는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리고 혼다 그룹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창업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으며 꾸준히 성장한 게 그를 경영의 신이라 불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뛰어난 경영자이면서 동시에 매우 깊은 사색을 하는 철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예순 살이 넘은 뒤에는 불교에 귀의해서 정식으로 스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인들에게 자신의 경영기법을 가르치기 세이와주쿠라는 공부모임을 만들어 일본은 물론 해외 70여 개 국가를 돌아다니며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직접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한때 이곳 모임에 참가해서 경영에 대해서 배웠을 정도입니다.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자본금 300만 엔과 7명의 동료 직원을 데리고 공장 건물을 임대해서 차렸던 교세라를 세계 100대 혁신기업으로 성장시킨 전설적인 기업인인 만큼 그의 경영기법과 철학에 대해 다룬 책만 해도 수십 권이 넘는데요. 오늘은 이 책들 중 비교적 최근에 나온 그의 책 두 권을 바탕으로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17년에 나온 <이나모리 가즈오 아메바 경영>이란 책과 2018년에 나온 인덕경이란 책이 그 책들입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저희 한국경제신문 소속 기자들이 그를 만나서 쓴 인터뷰 기사와 그가 이끌었던 교세라와 일본항공에 대해 썼던 기사를 바탕으로 그가 경영자로서 성공할 수 있던 비결,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따라 할 수 있는 그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서 다루기 전에 우선 이나모리 가즈오란 인물에 대해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일흔여덟 살이란 나이는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보단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인생 후배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들려주는 나이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0년 일본에선 일본 경제의 운명을 책임질 구원투수로 그 당시 이미 일흔여덟 살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택합니다. 당시 일본 총리이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직접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삼고초려했을 정도로 그의 도움이 필요했던 건데요. 그 당시 일본에선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팔순을 바라보는 노경영자까지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시킨 걸까요?
오늘날에도 일본 항공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일본 국적 항공사는 일본항공 줄여서 JAL, 잘이라고 불리는 회사입니다. 2010년 1월 이 일본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법정관리는 쉽게 말하면 기업이 스스로 힘으로는 도저히 회사를 살리기 어려울 만큼 빚이 많을 때 법원에서 그 회사에 속하지 않는 제 3자를 경영자로 임명해 대신 경영하게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빚이 너무 많아서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는 힘들지만 앞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제 3자의 도움으로 다시 부활시키려는 제도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2010년 1월 일본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회사가 떠안고 있는 빚만 2조 3000억 엔,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34조 원에 달했습니다. 방만한 경영에다 엔화 가치가 크게 오른 엔고까지 겹치면서 회사가 쓰러지게 됐습니다. 누가 오더라도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청취자분들도 짐작하실 수 있듯이 일본의 어떤 경영자도 먼저 나서서 자신이 일본항공을 살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만히 자기 회사만 잘 운영하면 되는 데 괜히 나섰다가 결국 일본항공을 살려내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만 자기가 뒤집어쓰게 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일본 정치권이 일본항공을 이끌 구원투수로 모신 게 이나모리 가즈오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총리이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까지 이나모리 가즈오를 찾아가 위기의 일본항공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약에 한국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대한항공이 법정관리에 처한다면 한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클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요? 일본 경제를 위해서라도 일본항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야만 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항공을 맡아달라는 요구에 응하고 표류하던 난파선의 선장이 됩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반기 top10에 선정된 채널입니다.)
그가 쓴 책 인덕경을 보면 그 역시 처음에는 일본항공을 맡아달라는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선 그 자신이 줄곧 제조업 분야에서만 일했기에 항공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일본항공 재건에 뛰어든 건 다음 세 가지 이유였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첫째 이대로 JAL이 2차 부도를 맞는다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입니다. 둘째 JAL 내의 많은 직원이 회사갱생법에 따라 해고를 당하게 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3만 2천에 달하는 직원들의 고용을 지켜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셋째, JAL이라는 회사가 2차 부도로 없어지면 일본의 대형 항공사는 한 곳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수익자인 국민 입장에서 볼 때 한 항공사의 독점은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온한 여생을 보내던 이나모리 가즈오가 침몰 직전이던 일본항공에 뛰어든 이유였습니다. 그가 일본항공 최고경영자직을 수락하면서 내걸었던 조건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나이가 있어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는 힘드나, 일주일에 3일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임시직이니 급료는 필요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영의 신이라는 명예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위와 같은 조건만 내건 채 일본항공으로 들어갑니다. 평소 교세라에서 그의 경영철학을 알리는 일을 담당하던 부하 직원 단 세 명만을 데리고 일본항공 회장직에 취임합니다.
사실 아무리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를 투입했어도 일본항공이 처한 상황은 단기간에 나아질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일본항공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 언론들조차 결국 올 것이 왔다며 정부를 통해서 연명하면서 방만 경영을 일삼던 퇴물 기업이 쓰러졌다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그가 투입된 뒤에도 이런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나모리 가즈오가 투입된 이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회장에 취임한 지 8개월 만에 일본항공의 기록적인 적자 행진을 멈추고 회사를 흑자로 돌려세웠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2년 연속 계속해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합니다. 정확하게 숫자를 말씀드리면 일본항공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1년 전인 2009년 1337억 엔의 손실을 입었지만 2010년엔 1884억 엔의 영업이익을 거두게 됩니다. 영업이익이 1년 만에 3000억 엔가량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실적이 개선된 덕분에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년 2개월 만인 2011년 3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났고 2012년 9월엔 다시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됩니다. 2012년 11월 일본의 경제매체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나모리 가즈오가 이끄는 일본항공에 대해 “일본항공의 영업이익률은 전 세계 주요 항공사 가운데 일부 저가항공사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3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진 채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다시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었던 데는 일본 정부의 지원이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회사갱생법에 따라 1만 6000명의 직원들이 해고되고 직원들의 퇴직연금이 30%가량 감축되면서 회사의 재무여건이 좋아진 것도 회사의 영업이익이 늘어난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이 동일했다고 해도 이나모리 가즈오가 아니고 다른 경영자였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회사를 되살려 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취임 첫날 “경영의 목적은 모든 직원의 행복 추구”라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경영의 롤모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서 “경영자의 목적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종업원과 그들 가족의 생활을 지켜주고 믿음을 주는 데 있다”라고 말하고 또 이를 실천해온 경영자이죠. 그랬던 그였기에 2010년 한 해에만 4만 8000명의 직원 중 1만 6000명을 회사에서 내보내고 남은 직원들의 퇴직연금도 대폭 삭감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쉽지 않으며 그가 경영을 하면서 그동안은 경험해오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상황을 회피하기보단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직접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드린 이나모리 가즈오에 대한 설명 예를 들어 서 그가 불가에 귀의해 스님이 됐을 정도로 철학에 관심이 많다던지, 직원의 행복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을 해왔다는 설명만 들으면 그를 철학자형 경영자로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경영자들과 비교하더라도 숫자와 회계 수치에 매우 민감한 경영자입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어떤 경영자보다도 관심과 고민이 많습니다. 다음 주에 업데이트될 2부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그의 대표적인 경영기법인 ‘아메바 경영’ 또한 조직 구성원들을 10여 명씩 묶은 뒤 그들의 업무 성과를 분 단위로 측정할 정도로 숫자로 나타나는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회계란 기업 경영에 있어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업을 경영해나가는 데 없어선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관리 작업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런 이나모리 가즈오기에 취임 첫날부터 일본항공의 부활을 위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채산성 개념을 심어주는 데 주력합니다. 채산성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어떤 매출액에서 그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들어간 비용을 빼고 남은 진짜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가 회사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게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비결입니다.
언론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돼 오던 일본항공에선 직원들 사이에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희박했습니다. 사업 성과가 매출로만 평가되는 바람에 매출에서 비용을 빼고 남은 진짜 이익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습니다. 직원들로선 적극적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는 직원들에게 채산성 개념을 불어넣기 위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아메바 경영을 일본항공에 도입합니다. 회사 전체를 10명 안팎의 소규모 집단인 아메바로 쪼개어 각 아메바마다 매출, 비용, 이익을 계산하도록 하는 독립채산제를 도입했습니다. 그가 쓴 책을 보면 이렇게 아메바 경영을 도입하자 비행기 정비사들이 한번 썼던 장갑을 버리지 않고 다시 스스로 빨아서 쓰고 스튜어디스들도 직접 유니폼을 빨아 입을 정도로 직원들 사이에서 비용 절감에 대한 의지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아메바 경영을 통해 직원들에게 ‘매출은 최대로, 비용은 최소로’라는 자신의 경영 이념을 불어넣은 그는 그와 동시에 과감한 개혁에 개혁에 나섭니다. 그 이전까지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유지하던 적자 노선을 확 줄여버렸습니다. 이를 담당할 노선총괄본부를 만들어 2009년 67개에 달하던 국내 노선 중 수익이 안 나는 20개 노선을 1년 만에 없애버렸습니다. 국제선까지 포함해 247개에 달하던 노선이 2012년 초엔 173개로 30%가량 줄었습니다. 부품 비용과 정비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항공기 기종도 대형, 중형, 소형에 따라 한두 기종으로 가짓수를 줄여버렸습니다. 그 결과 비행기의 평균 운행 비용이 20%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아메바 경영의 도입과 비용 절감이 가져온 결과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가 이나모리 가즈오가 회장직을 맡은 뒤 바로 흑자로 돌아섰고 2년 연속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게 됩니다. 취임 첫해인 2010년 1894억 엔, 2011년 2049억 엔, 2012년엔 1952억 엔의 이익을 올렸습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샀던 회사가 법정관리 2년 8개월 만에 다시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고요. 그의 개혁을 통해 회사가 완전히 체질 개선에 성공한 것입니다.
일본항공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고 회장직에 취임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항공을 부활시킨 뒤 여든한 살의 나이로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2013년 3월 일본항공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 이후엔 명예회장으로 있으면서 자문위원 역할만 수행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후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항공 회장 시절 편의점 주먹밥 2개로 저녁을 때우면서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투혼을 불살렀던 기억을 떠올렸는데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는게 그의 말입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 입 니다. 다음 주에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메바 경영기법과 그가 말하는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12개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그의 책 이나모리 가즈오 아메바 경영과 인덕경. 그리고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