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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Sep 05. 2018

AI 스피커가 뉴스에 불러 올 세 가지 변화.  

앞으로 몇 년 안에 신문 기사를 존댓말로 쓰게 되는 이유.

AI(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선점하려는 IT 기업들의 쟁탈전이 치열하다. 구글, 아마존 같은 해외 기업들 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카카오, SK텔레콤, KT 등 국내 기업들도 저마다 자신들만의 AI 스피커를 속속 내놓고 있다. 너나없이 개발하는 이유는 간단한다. 앞으로 사람들이 AI 스피커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이제는 일상이 됐다. AI 스피커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진 간단한 내용을 검색하거나, 몇몇 정해진 품목을 주문하는 정도의 쓰임새에 머물고 있지만 기기 보급이 늘어나고 이에 맞춘 서비스들이 늘어나면 AI 스피커로 할 수 있는 일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오늘은 사람들이 AI 스피커로 뉴스를 듣는 게 일상이 되는 시대가 되면 이에 맞춰 뉴스 기사 작성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AI 스피커를 통한 뉴스 소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특정 언론사 몇 곳의 뉴스가 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 이슈에 대한 여러 매체의 뉴스를 동시에 화면에 노출시킬 수 있는 컴퓨터, 스마트폰과 달리 스피커에선 한 번에 하나의 뉴스만을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제목과 매체명을 쓱 훑어보고 읽고 싶은 기사를 선택할 수 있는 텍스트 뉴스와는 달리 음성 뉴스는 인공지능 플랫폼이 이용자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한 건의 뉴스만이 제공된다. 음성 뉴스에 최적화된 뉴스 작성 기법을 미리 터특한 언론사의 뉴스일수록 이용자들에게 제공될 확률이 높다. 초기에 구독자를 많이 확보한 언론은 그 이후로도 유리한 위치에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플랫폼 초창기에 이용자를 선점한 콘텐츠 제공자가 그 이후에도 줄곧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뉴스가 실리는 매체가 달라지면 뉴스 작성 기법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신문지면에 인쇄된 뉴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뉴스, 모바일 기기를 통해 유통되는 뉴스는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본문 작성, 제목 편집, 사진·그래픽 배치를 포함한 작성 기법이 달라야 한다. 종이 지면에 실렸던 기사를 그대로 스마트폰 화면에 욱여넣고는 독자들에게 알아서 보라고 강요하는 태도가 오늘날 국내 신문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이 글은 지난 7개월 간 해온 개인적인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2018년 2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가 만든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오디오클립에서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이란 이름으로 1인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제목처럼 경제, 경영 분야에 초점을 맞춘 방송이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업데이트하는데 지금껏 모두 스물 세편의 방송을 올렸다. 한 편당 분량은 10~15분 사이다. 게스트 없이 혼자 준비해온 원고를 읽고 이를 편집해 내놓는다. 토크쇼가 아닌 뉴스에 훨씬 가까운 팟캐스트다. 



구독자는 9월 5일 기준 약 2700명이다. 구독자는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콘텐츠의 질은 인정받는 편이다. 네이버가 뽑은 2018년 상반기 TOP 10 채널로 선정됐다. 


신문사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평일에는 사람들이 눈으로 읽는 기사를 쓴다. 주말엔 사람들이 귀로 듣는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다.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눈으로 읽는 독자를 위해 쓸 때와 귀로 듣는 청취자를 위해 만들 때는 원고도 애초부터 다르게 작성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 수준의 콘텐츠로는 팟캐스트에선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기존 라디오 뉴스를 만들던 방식도 팟캐스트에 그대로 접목할 순 없다. 한 꼭지가 보통 1~2분 사이인, 길이가 길어야 5분 내외인 라디오 뉴스에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많은 기존 신문 기사를 오디오 콘텐츠로 가공하기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 다룬다.



1. 앞으로 신문 기사는 존댓말로 쓰게 된다.


지금까지 신문 기사는 반말로 쓰는 게 당연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반말로 쓰는 게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글이 들어갈 수 있는 종이 위 공간에 정해져 있는 상황에선 짧은 문장일수록 좋다. 문장을 짧게 써야 더 많은 정보를 기사에 담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반말로 글을 쓰는 것과 여러 축약형 표현을 쓰는 이유다. 기사를 쓸 때 중요한 내용부터 앞에 쓰는 역(逆) 피라미드 구조대로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기사가 넘칠 때 편집자가 별다른 고민 없이 뒤에서부터 덜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뉴스를 소비하는 도구가 종이에서 컴퓨터, PC로 바뀌면서 공간의 한계는 의미가 없어졌다. 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길게 써도 상관없다. 글이 길어서 읽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서 읽을만한 탄탄한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문단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사진과 이미지를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음성으로 뉴스를 듣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기사를 존댓말로 쓸 수밖에 없다.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엄격한 한국에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반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처럼 딱딱한 기계음이 내뱉는 반말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뉴스라도 반말로 나온다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뉴스가 음성 콘텐츠로 읽힐 것을 전제로 기사를 쓴다면 존댓말을 선택해야 한다.  


텍스트일 기사더라도 반말보다 존댓말이 읽기 편하다. 좀 더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존댓말 기사체가 되면 자연스레 각종 축약 표현도 덜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2. 기사 앞부분에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문단이 꼭 들어가게 된다.


텍스트 뉴스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전체 내용을 훑어본 뒤 읽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음성 뉴스에선 그게 안된다. 아무리 재생 속도를 높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뉴스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내가 알아야 될 내용인지 별 쓸모없는 내용인지를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결국 뉴스 맨 앞부분에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기존 텍스트 뉴스에서도 리드 문단이 이런 역할을 했지만 두, 세 줄짜리 리드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똑같이 국민연금 고갈시기가 앞당겨졌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다. (가)는 신문 기사고, (나)는 팟캐스트 방송에 내보냈던 원고다.


(가)

국민연금기금 고갈 시점이 기존 예상(2060년)보다 3~4년 이른 2050년대 중·후반으로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다 경제성장률마저 연 3% 밑으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22일 각 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산하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기금 고갈 시점이 2050년대 중·후반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재정추계 결과를 최근 도출했다. 정부는 70년 뒤 국민연금 재정을 미리 진단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2003년부터 5년마다 재정 계산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의 마지막 해인 2088년까지 기금 소진을 막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월소득의 13% 이상인 것으로 재정계산위원회는 예상했다. 현행 보험료율(9%)보다 4% 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나)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2050년대 중·후반이면 고갈된다는 국민연금, 기금이 떨어지면 국민연금을 못 받는 걸까? 월급에서 떼 가는 국민연금을 지금보다 50%가량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연금은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돈입니다. 그 액수도 평균적으로 월급의 9%나 돼 부담이 작지 않은 액수입니다. 

  오늘 방송에선 최근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과 쌓아놓은 국민연금기금이 다 떨어지게 되면 과연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연금은 기금 적립금이 635조 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중 3위에 달하고 있지만 ‘모두의 돈’이기 때문에 ‘누구의 돈’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 일반 국민들은 국민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무관심한 편인데요. 오늘은 국민 대부분의 노후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신문 1면에 나갔던 기사다. 앞서 말한 대로 국민연금 고갈 시시가 앞당겨졌다는 사실을 밝힌 뒤 이어서 정보의 출처가 되는 보건복지부 산하 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말하고 있다. 

(나)는 같은 내용으로 만든 팟캐스트의 원고다. 우선 제목을 통해 이번 방송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청취자들에게 밝혔다. 매달 월급에서 국민연금을 9%씩 떼 간다는 사실을 말해서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고갈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 기금이 다 떨어지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 다뤄보겠다고 앞으로 들려줄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분량이지만 신문기사인 (가)를 그대로 읽은 내용을 들었다고 하면 그 뒤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없다. 음성 콘텐츠로 기사를 쓰기 위해선 팟캐스트 원고인 (나)처럼 지금부터 어떤 내용을 다룰 건지, 이 이슈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계속해서 듣는다.

(3) 취재원들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싣게 된다.


국내 언론에서 취재원들의 발언은 대부분 한 줄로 처리된다. 인터뷰 기사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그렇다. 취재원들이 한 말을 몇 줄이 되든 쭉 이어서 인용하는 게 아니라 한 문장씩 잘게 쪼개서 넣는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에서 트럼프 뉴스를 검색해봤더니 96%가 좌파 매체 뉴스였다”며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런 식이다.


거의 대부분의 취재원 발언 인용이 

<A 씨는 “~~~~~~~~~~~~~~~~~~~~~”며 “~~~~~~~~~~~~~~~~~~”고 말했다.>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것 역시 지면의 제한 때문에 경제성을 추구하다 보니 나온 관습일 수도 있고 아니면 취재원의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함으로써 기자가 자신의 생각에 맞는 발언만 취사선택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성 뉴스가 보편화되면 이 같은 인용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면의 한계도 없을뿐더러 한 문장 요약으로는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넣는 게 불가능하다. 과거 텍스트 뉴스 때는 취재원이 구어체로 편하게 말한 내용이더라도 신문에 실을 때는 어느 정도 다듬어서 실을 수밖에 없었다. 신문 기사에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구어체 문장은 기존 신문 기사에서는 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뉴스를 귀로 눈으로 듣게 되면 말한 그대로의 구어체 인용문도 훨씬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게 된다. 한 문장으로 요약돼 ~~ 했다며 ~~라고 말했다 식의 기존 인용 방식보다 독자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 취재원의 말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독자들에겐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기자는 본인이 취재원의 말을 판단해 요약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AI스피커를 비롯한 기술의 발달이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꾸준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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