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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Dec 15. 2018

무기 밀매상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대통령

역사상 가장 대담한 군사작전, 엔테베 작전을 성공시킨 비결.

원래 정치인들이 쓴 책은 그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쓴 책이더라도 그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이면서 신생 조국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며 무기를 몰래 들여오고, 비행기 수리 기술밖에 없던 나라에 항공기 제조업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일을 성공시킨 인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몇 가지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조 작전으로 꼽히는 엔테베 작전을 지휘했고, 수십 년 동안 피의 악순환을 부르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인 ‘오슬로 협정’을 이끈 공로로 노벨 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무총리와 대통령도 지냈죠.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는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016년 9월 타계하기 일주일 전에 탈고를 마친 책입니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그가 마지막으로 완수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이렇듯 수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왼쪽)

그는 원래 폴란드 비쉬네바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랍비였던 그의 할아버지가 모는 마차 위에서 시골 풍경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던 그가 죽기 전에는 이스라엘 연구진이 개발한 자율주행차에 몸을 싣게 됩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홀로코스트를 피해 새로운 조국으로 달아난 유대인들이 숱한 위기를 겪으며 이스라엘은 지금처럼 든든한 국방력을 지닌 최첨단 산업 국가로 발전시킨 연대기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기 전부터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살던 사람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물론 이스라엘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침략자에 불과할 겁니다. 사실 이 책에서는 그 점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보단 이스라엘이 얼마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두뇌와 협동에 의지해서 발전해 왔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그의 책이니 이점은 어쩔 수 없겠단 생각이 듭니다.

엔테베 작전으로 인질에서 풀려난 이스라엘인들

저는 이 책을 주로 경영의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시몬 페레스가 설명하는 여러 사건들 중에서도 역사상 가장 대담했던 군사 작전으로 꼽히는 엔테베 작전의 막전막후에 대한 내용이 가장 흥미 있었습니다. 엔테베 작전은 1976년 팔레스타인 해방전선 소속 테러리스트들에게 비행기가 납치당하며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유대인 승객 100여 명에 대한 구출 작전입니다.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당시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빼았긴 비행기는 이스라엘에서 3000㎞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해 있었고요. 테러리스트는 물론 우간다군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간다를 다스리던 독재자 이디 아민이 테러범들의 뒤를 봐준 것이죠.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세계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들의 동료를 석방시키지 않으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엔테베 작전으로 인질에서 풀려난 이스라엘인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은 발칵 뒤집혔는데요. 짐작하실 수 있듯이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쪽과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맞부딪혔습니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시몬 페레스는 협상 대신 군사행동으로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우리가 항복하면, 전 세계의 어느 나라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테러집단의 요구를 더 많이 끌어 모으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사실 군사작전은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큰 옵션이었습니다. 우선 처음 논의할 때만 해도 성공 가능성이 매우 적어 보였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영토도 아닌 3000㎞ 떨어진 곳에 있는 적성국에서 테러리스트는 물론 우간다군을 상대해야 했고요. 둘째 현재 인질들이 어디에 구금돼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적들은 몇 명인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습니다. 셋째 특공대를 보내 인질들을 구출한다 해도 어떻게 다시 데려올지, 그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타협이 아닌 군사행동을 펼쳤다가 인질을 구출하지 못하는 참사가 터지면 장관인 자신이 옷을 벗는 건 물론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파장이 컸을 일이었죠.


군사 작전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특수부대요원들. 이디 아민의 차로 위장하기 위한 벤츠를 비행기에 싣고 있다.


처음에는 특공대를 보내 인질들을 구출하자는 그의 주장에 총리를 비롯한 내각 각료 대부분이 회의적인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는데요. 유대인이 아니라서 풀려날 수 있었던 인질들에게 정보기관 요원들을 보내 인질들이 구금된 장소, 건물 구조, 테러범들의 숫자와 화력, 경비 상태에 대해 세세하게 파악합니다. 마침 풀려난 인질 중에 전직 프랑스 육군 대령이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3000㎞ 떨어진 적지에서 펼치는 작전이기에 기존의 교범에 의지해서는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방위군을 통틀어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장교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페레스도 함께 회의에 참석해 이들과 함께 기존의 작전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작전을 구상합니다. 이 위원회의 이름은 ‘판타지 위원회’였습니다. 이곳에선 실제적인 전술을 마련함과 동시에 특공대가 탑승한 수송기에 검은색 벤츠를 실은 뒤 외국에 나갔던 독재자 이디 아민이 돌아온 척 연기를 하자는 마치 영화 같은 전술도 제안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작전은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작전은 특공대가 수차례 훈련했던 것과 동일한 55분 만에 종결됐습니다. 그 사이에 엔테베 공항은 이스라엘군의 완벽한 통제하에 들어갔고 100여 명의 인질들은 구출돼 군 수송기에 실려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테러범들이 모두 사살된 건 물론이었고요. 이것이 엔테베 작전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출 작전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자서전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엔테베 작전을 설명하던 장에서 시몬 페레스는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리더의 고뇌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엔테베 작전도 결국은 성공했기에 탁월한 판단으로 평가받는 것이지요. 똑같은 준비를 통해 작전에 들어갔더라도 인질들이 작전 몇 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이 발생했다면 작전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겠죠. 그렇다면 작전을 주도한 그에게 모든 책임이 쏟아졌을 거고요.


리더의 역할이 완벽한 정보를 모으는 게 아니라 사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안갯속에서도 어떻게든 조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인 이유입니다.


시몬 페레스는 죽기 일주일 전에 완성한 그의 책에서 마지막으로 네 가지를 젊은 세대들에게 당부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이자 그의 정치적 멘토인 벤구리온이 그에게 남긴 말이었는데요.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첫째, 미래에 대한 비전은 현재의 계획이 투영되어야 한다.

둘째, 사람은 믿음의 힘으로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

셋째, 내일의 기회를 위해 오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은 없다.

넷째, 산통 없이는 출산할 수 없는 것처럼, 성공하려면 실패의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낙관주의자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를 역사에서 찾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결국 조금씩 나아져온 역사를 보면서 낙관주의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죠.


“역사야말로 비관적인 세계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유제”라는 게 그가 남긴 말입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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