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28조 원의 부를 일굴 수 있던 비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든다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차별 때문에 선생님의 꿈을 포기한 재일교포 3세 소년은 어떻게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을까?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그는 어떻게 돈을 벌었나? 그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오늘은 자세한 설명에 앞서 먼저 짧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지금부터 제가 설명하는 회사의 직원이라고 상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모두 세 명밖에 안 되는, 바로 오늘 창업한 아주 작은 회사가 있습니다. 사무실도 따로 없어서 다른 회사 사무실에 방 한 칸을 얻어서 책상만 들여놓은 채 시작한 회사입니다.
직원들도 정식으로 면접을 봐서 뽑은 것도 아니고요. 원래는 이런저런 잡일을 돕던 아르바이트생들을 데려다가 회사를 차렸습니다. 회사의 사장은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스물네 살,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민자 가정의 3세였습니다.
그런데 창업 첫날인 오늘 이 사장이란 사람이 직원 조회를 하겠다며 두 명 밖에 안 되는 직원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합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는 나무로 된 귤 상자 위에 올라가서 말합니다. 연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무실도 없어서 남의 회사에 얹혀사는 직원 2명짜리 회사의 사장이 할 말은 분명 아닐 겁니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20대 사장의 연설을 듣던 직원 2명은 얼마 안 가 회사를 그만둡니다. 아마도 사장이 과대망상증에 걸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자아도취에 과대망상증까지 걸린 철부지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니까 아마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지 않았을까요?
1981년 3월 일본에서 창업한 이 회사는 2017년 9조 1587억 엔, 우리 돈으로 100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회사 창업주 역시 일본 최고의 부호가 됩니다. 나무 상자에 올라 직원 2명을 앞에 두고 열변을 토했던 스물네 살 젊은 사장은 손정의였고요. 다른 회사 사무실에 얹혀서 시작했던 회사는 일본의 대기업 소프트뱅크였습니다. 과대망상으로 보일 정도로 터무니없었던 꿈이 정말로 현실이 된 것이죠.
오늘 방송의 주인공인 손정의, 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창업자 겸 사장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업가이자 투자자입니다. 그가 주도해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 등과 함께 만든 투자펀드인 비전펀드가 굴리는 투자금은 1000억 달러, 우리 돈 약 110조 원에 달합니다. 이 돈은 2019년 대한민국 국방 예산인 46조 원의 약 2.5배에 달하는 돈인데요.
이 110조 원을 어디에 투자할지가 그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2018년 11월엔 이곳 비전펀드에서 쿠팡맨으로 유명한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에 2조 250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규모의 부를 일궜는데요. 미국 경제매체인 포브스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그가 보유한 자산은 219억 달러, 약 28조 8000억 원으로 그는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일본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세계적으로 놓고 봤을 때는 세계 39위 부자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약 20조 원의 자산으로 세계 61위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룬 부의 크기 보다도 더 대단한 건 그가 이 모든 성과를 남들보다 불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1957년 일본 사가 현 도스 시에 있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재일 교포 3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 일본에 눌러살게 되면서 그의 가족은 일본에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top 10채널 써먹는 경제경영에 들어오시면 다양한 경제경영 이슈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쉽게 짐작하실 수 있듯이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산다는 것은 많은 차별을 견뎌내야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손정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생 시절 그의 장래희망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일교포 출신인 그가 그 당시 일본에서 교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으니 국적을 일본으로 바꿔달라’고까지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그럴 순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평범한 10대였다면 크게 실망한 나머지 자칫하면 방황에 빠져 잘못된 길로도 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깨달은 뒤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만약 그가 재일 교포 출신이 아니라 차별받지 않고 공립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인 손정의와 소프트뱅크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부턴 손정의의 경영전략에 대해서 다룬 2015년 출판된 <손정의 제곱법칙>이란 책과 그가 그동안 국내외 언론들과 해왔던 인터뷰 기사 등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그를 만든 성공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요인은 각각 ‘황금알을 만들기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라’, ‘70%의 승률이 있을 때 도전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손정의를 세계적인 기업가로 만든 첫 번째 비결로는 ‘황금알을 만들려 하기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려고 하는 자세’를 들 수 있습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히트 상품을 개발하려 하기보다 히트 상품을 꾸준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제도, 시스템, 조직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다는 건데요. 이 같은 자세는 그가 처음 창업을 준비할 당시 사업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마련한 방식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홀몸으로 미국 유학을 떠난 손정의는 고등학생, 대학생 때부터 사업가의 꿈을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합니다. 다른 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절대로 자기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발명품을 발명해서 돈을 벌어보기로 결심합니다. 참신한 발명품을 개발해서 이에 대한 특허를 대기업에 넘기고, 자신은 특허권료를 받아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겠단 계획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키패드에 언어를 입력하면 이를 외국어로 번역해서 음성으로도 읽어주는 외국어 번역기를 개발합니다. 이를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업체 샤프에 넘겨 1억 엔, 약 10억 원의 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읽고계신 이 글을 포함해 빌 게이츠, 앙겔라 메르켈, 레이 달리오, 이나모리 가즈오, 벤 호로위츠, 사카모토 료마 등 탁월한 리더들이 자신만의 전략을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비결은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예스 24
이 제품을 개발한 게 1970년대였으니까 그때만 해도 꽤나 복잡한 기술이었을 테고 또 공학이 아닌 경제학을 전공한 그가 직접 개발하기에는 기술력도 자본도 부족했었습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자신이 직접 제품을 개발하지도 않고, 또 자신의 돈을 투자하지도 않은 채 이 제품을 발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우선 기술 개발은 자신이 다니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와 연구원들에게 부탁해서 맡깁니다. 손정의는 기술 개발을 부탁한 교수와 연구원들에게 ‘돈은 상품의 특허권을 기업에 판매해서 특허권료를 받게 되면 주겠다’고 말합니다. 당장은 돈을 줄 수 없지만 일단 제품이 개발되면 일본 전자업체들에게 특허를 팔아서 꼭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제품 판매에 성공하면 돈을 주는 일종의 성공 보수, 인센티브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제안을 거부한 교수나 연구원들도 많았지만 그가 말하는 계획의 가능성을 보고 우선은 무료로 제품을 개발해준 엔지니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정의는 실제로 일본에 돌아간 뒤 50여 곳의 전자제품 회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개발한 상품을 알렸고 결국 대형 전자제품업체인 샤프와 계약을 맺고 특허를 넘겨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크게 투자하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돈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 같은 그의 사업방식에 대해 손정의 제곱법칙의 저자 이타가키 에이켄은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야말로 손정의 비즈니스의 본질이며 본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회사를 세운 1981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과 미국에서 거대 통신사를 운영하고 있고, 110조 원 규모의 비전펀드를 앞세워 전 세계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등 소프트뱅크 그룹의 사업 영역이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지만 소프트뱅크는 원래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회사로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들로부터 소프트웨어를 독점 판매하는 판권을 사들인 뒤 여러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손정의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대신 이를 유통하는 회사를 차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윈도우와 같은 초대형 히트 상품을 개발하면 물론 매우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비용, 인력, 시간을 들여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흥행에 실패하게 되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의 손해를 입게 됩니다. 윈도우와 같은 황금알을 개발하는 대신 그런 황금알들을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회사를 만들면 리스크를 크게 줄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창업 직후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허드슨과의 독점계약을 따내면서 빠른 속도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요. 1986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일본 내 판권에 대한 독점권을 따내면서 1992년 이미 1000억 엔, 약 1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손정의의 성공 비결로 꼽을 수 있는 또 다른 비결은 ‘승률이 70%라고 확신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몸을 움직이는 과감함과 신중함의 조화, 그리고 타이밍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정의는 그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해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검색엔진인 야후에 투자했고요. 2000년엔 중국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에 투자했고, 2004년엔 통신사인 일본텔레콤, 2006년엔 일본 3위의 이동통신회사인 보다폰재팬을 인수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3조 3000억 엔, 당시 환율로 약 36조 원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서 2017년 상반기에 걸치는 1년여 동안 소프트뱅크가 기업 인수합병에 쏟아부은 돈만 약 46조 원에 달합니다.
손정의가 2000년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만난 지 단 6분 만에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당시만 해도 알리바바는 직원 30여 명이 일하는 창업 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인 데다 영어 교사로 일했을 뿐 사업 경험이라고는 없었던 마윈이 이끌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이런 회사에 대해 창업자를 만나자마자 2000만 달러, 우리 돈 약 200억 원을 투자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손정의는 2017년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마윈은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매출도 없었다. 그런데 눈이 매우 강력했고 빛이 났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합니다. 이후에도 알리바바가 자금난을 겪던 2004년 6000만 달러의 돈을 추가로 투자합니다.
그리고 손정의의 이 같은 결정은 그와 소프트뱅크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다 줬습니다. 알리바바는 2014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는데요. 이때 알리바바의 주식 34.1%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던 소프트뱅크는 주식 상장으로 578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70조 원의 평가 이익을 거두게 됩니다. 대략 1000억 원의 투자금이 70조 원이 돼서 돌아온 것입니다.
(유튜브 <홍선표의 고급지식>에선 손정의 회장이 일본의 혁명가 '사카모토 료마'를 인생의 롤 모델로 삼은 3가지 이유에 대해 다뤄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면 손정의 회장이 꼼꼼한 계획과 준비보다는 본능적인 감각에만 의존해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 수십 조를 투자하는, 무조건 돌진하는 스타일의 경영자로 비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손정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가 첫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보면 그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손정의는 소프트뱅크를 창업하기 전에 1년 반의 시간을 들여서 어떤 사업에 뛰어들지 고민합니다. 한번 선택하면 평생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고 중간에 잘못돼서 사업이 망하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1년 반의 시간을 들이더라도 충분히 검토하고 또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손정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을 40여 가지 떠올린 뒤 각각의 계획에 대해 사업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검증하며 조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손정의가 직접 설명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하나의 사업에 대해 10년분의 사업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상 자금 조달표, 예상 손익계산서, 예상 대차대조표, 예상 인원 계획, 예상 매출 그리고 당연히 시장 점유율 같은 것까지 조사했습니다. 나아가 경쟁사가 될 것으로 보이는 회사의 규모, 비즈니스 모델, 매출, 이익, 대차대조표도 철저히 조사했지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높이 1미터 이상의 자료를 모을 만큼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한 가지 사업에 대해서 10년 치 사업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각 연도별로 예상되는 재무제표와 인원 계획까지 예측해보고 또 경쟁사가 될 만한 회사들에 대해서도 샅샅이 알아본다는 건 매우 뚜렷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가지 사업에 대해 계획을 짜다가도 더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다시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런 과정을 마흔 번 넘게 거친 뒤에 선택한 사업이 바로 소프트뱅크였습니다.
‘승률이 70% 일 때 승부한다’는 그의 철학은 과감한 뿐 아니라 신중함 역시 품고 있는 말입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길 확률과 질 확률이 반반일 때 싸움을 거는 자는 어리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률 90%라는 숫자가 70%보다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좀 풀어드리면 자신과 회사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신규 사업에 도전할 때 성공할 확률이 50% 일 때 도전하는 건 지나치게 위험부담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공 확률 70% 일 때 도전하는 게 90% 일 때 도전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이미 승률이 그렇게 까지 높아졌을 때, 그러니까 시장의 불확실성이 모두 다 사라진 뒤에 뒤늦게 뛰어들어봐야 이미 경쟁자들이 시장을 다 차지했기 때문에 건질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이 승률 70%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손정의는 어떤 상황이 돼도 틀림없이 70% 이상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마 이 정도면 70%쯤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그가 일본 최고의 부호가 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오늘은 <차별 때문에 선생님의 꿈을 포기한 재일교포 3세는 어떻게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을까?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그는 어떻게 돈을 벌었나? 그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 3가지>란 제목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인생과 여러 선택의 순간마다 그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노하우에 대한 내용이 청취자 여러분의 삶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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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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