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매몰비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까닭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틀리는 경제 원리.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용 개념 총정리>라는 제목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개념들 중에서도 우리들의 일상과 경제 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원리들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기회비용, 매몰비용이란 말은 경제 현상을 다루는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누구나 몇 번씩은 들어보셨을 법한 말인데요. 그런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거나 경제학 책에서 찾아봐도 이들 비용 개념에 대해서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기회비용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렇게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 방송에선 많은 분들이 헷갈리는 이들 비용 개념을 찬찬히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이 뭔지에 대해서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원은 한정돼 있다’는 희소성의 원칙이 경제학의 뼈대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든 자원이든 사람의 감정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은 그 양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경제학의 기본 전제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여러 선택지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면 반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맨큐의 경제학이란 경제학 전공서적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예전에 경제학의 10대 기본원칙이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그 첫 번째 원칙이 ‘People face trade-offs’였습니다. 트레이드오프는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를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을 뜻하는 말입니다. 맨큐 교수의 이 말을 한국말로 의역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되는데요. 실제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속담은 경제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지들은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기회비용에 대해서 쉽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제학 용어 사전 같은 곳에서 기회비용의 뜻을 찾아보면 보통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기회의 최대가치’ 혹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자체 또는 그러한 기회가 갖는 가치를 말한다’ 이런 식의 설명입니다.
다른 경제용어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어도 사전에 나온 설명만 읽으면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리고 이 설명들은 정확히 말하면 기회비용을 이루는 여러 비용들 중 일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다양한 경제, 경영 이슈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듣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뽑은 top10 채널입니다.)
기회비용은 영어로도 ‘Opportunity cost’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기회라는 뜻이 중요한 말인데요. 기회비용을 쉽게 다시 한번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회비용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선택받지 못한 여러 대안들 중에서 가장 이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선택지의 가치, 그리고 거기에다가 우리가 내린 선택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말합니다. 선택받지 못한 대안들 중에서 가장 이익의 큰 선택지의 가치라는 말은 경제학적으로 암묵적인 비용이라고 불리고요. 우리가 내린 선택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경제학적으로 명시적인 비용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부턴 예를 들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갑돌이라는 고등학생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갑돌이는 주말을 맞아 여자 친구하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려고 합니다. 이렇게 3시간을 데이트하는 데 모두 2만 원이 든다보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갑돌이가 데이트를 안 하고 그 3시간 동안 평소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한 시간에 8000원씩 모두 2만 40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만약 세 시간 동안 집에 있으면 부모님을 도와 집안 청소를 도와드렸다면 한 시간에 5000원씩 1만 5000원의 용돈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해보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갑돌이가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결정했을 때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은 얼마일까요?
데이트를 하면 2만 원을 써야 하고요.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2만 4000원을 벌 수 있고 집에서 부모님 일을 도와드렸다면 1만 5000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기회비용은 얼마일까요? 여러 가지 답이 생각나실 수 있는데요. 먼저 데이트 비용 2만 원이 기회비용라고 말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텐데요. 틀린 답입니다. 또 데이트를 하지 않았을 경우 벌 수 있는 돈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인 아르바이트 일당 2만 4000원을 기회비용이라고 말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이 역시 틀린 값입니다. 아르바이트 일당과 부모님께 받을 수 있는 용돈을 합한 3만 9000원이 기회비용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틀리셨습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기회비용을 계산할 때는 선택받지 못한 대안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안의 가치 하나만을 찾아야 합니다. 이 경우엔 아르바이트를 하면 집안일을 도울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아르바이트 일당 2만 4000원이 되겠죠. 아르바이트 일당에 부모님께 받는 용돈까지 더 하는 식으로 선택받지 못한 대안들의 가치를 모두 더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돕는 것 중에서 하나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머지 선택지의 가치를 모두 더해버리는 식으로 계산하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드리면 다들 이해하시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선택받지 못한 대안들의 가치를 모두 더해버리는 일들이 적지 않아 말씀드리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일단 3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는 아르바이트 일당 2만 4000원이란 값은 나왔는데요. 여기에다가 또 어떤 걸 더해야 하는 걸까요? 바로 데이트 비용 2만 원도 더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회비용이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선택을 하면서 포기해야만 하는 여러 다른 대안들 중에서 가장 이익이 큰 대안의 가치만을 떠올리는데요. 그건 잘못된 설명입니다. 만약에 데이트를 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데이트 비용 2만 원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그렇기 때문에 방금 말한 갑돌이의 사례에서 갑돌이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은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벌 수 있었던 돈 2만 4000원에 데이트 비용 2만 원을 더한 4만 4000원이 됩니다. 경제학에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 수 있었던 2만 4000원을 암묵적 비용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선택하는 대가로 놓친 금액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데이트 비용 2만 원의 경우 명시적인 비용이라고 부릅니다. 갑돌이가 데이트를 하기로 선택했고 그만큼 실제로 지출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기회비용은 이렇듯 암묵적 비용과 명시적 비용을 더한 값을 말합니다.
제가 방송 초반부에 경제학 전공자 들일수록 기회비용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실제로 시험 성적에서도 나타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에선 사람들의 경제지식을 측정하는 테샛이란 시험을 정기적으로 주관하고 있는데요. 시험 결과를 보면 앞에서 든 사례처럼 기회비용의 정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서 상경계 전공 대학생의 정답률이 비상경계 전공자의 정답률보다 낮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의 정답률이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보다 낮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기회비용을 포기해야만 했던 선택지 중에서 가장 이익을 주는 대안의 가치, 즉 암묵적 비용으로만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어서 경제학에서 다루는 다른 중요한 비용들인 매몰비용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매몰비용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더 쉬운데요. 경제용어사전에서는 매몰비용에 대해 ‘이미 지급되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지와 상관없이 이미 지출된 비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이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한 갑돌이가 이번에는 여자 친구의 생일을 맞아 자신이 직접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하려 하고 있습니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 달걀, 우유, 버터, 베이킹파우더 등등 여러 재료를 사느라 2만 원을 썼습니다. 빵집에서 갑돌이가 만들려고 하는 크기의 케이크를 사려면 3만 원이 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만 반죽을 만들다가 실수로 설탕 대신 소금을 엄청 집어넣어버렸습니다. 모든 재료를 다 섞은 반죽에 소금을 쏟아부은 것이죠. 이 반죽으로는 도저히 케이크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 경우에는 선택을 해야겠죠. 다시 전부 재료를 사다가 새롭게 케이크를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서 선물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돌이의 실수로 버려지게 된 재료비 2만 원이 매몰비용이 됩니다. 이 2만 원은 갑돌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돌려받을 수 없는 돈입니다. 이미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반죽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갑돌이는 먼저 지출한 재료비 2만 원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이미 2만 원이나 주고 재료를 샀는데 여기서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이미 써버린 재료비 2만 원은 어떻게 해든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돈, 매몰비용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새로운 판단을 내릴 땐 고려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죠.
만약에 갑돌이가 순전히 이미 써버린 2만 원이 아까워서 다시 재료를 사다가 케이크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런 모습은 매몰비용 오류라고 불립니다.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이미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다가 더 손실을 키우는 걸 매몰비용 오류라고 부릅니다.
갑돌이의 사례만 놓고 보면 매몰비용 오류에 빠지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쉽게 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매몰비용 오류는 정부나 기업들도 흔하게 내리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잘못된 사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그동안 투입한 시간, 인력, 비용이 아까워 쉽게 포기를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과 프랑스가 1960년대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콩코드 여객기는 개발 당시부터 일반 여객기보다 연로는 훨씬 더 많이 소모하지만 승객들은 100여 명 밖에 태우지 못해서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영국, 프랑스와 비슷한 시기에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나섰던 미국 업체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중간에 개발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정부와 업체들은 이미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투자됐다는 것 때문에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결국 콩코드 여객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 여객기를 통해서는 돈을 벌 수 없었고 결국 콩코드 여객기는 영국의 브리티시 항공과 프랑스의 에어프랑스에 막대한 손실만 끼친 채 더 이상 운항되지 않게 됐습니다. 손해를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걸 두려워하는 인간의 손실회피 심리가 매몰비용 오류를 불러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틀리는 비용 개념. 기회비용, 매몰비용.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용 개념 총정리>라는 제목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개념들 중에서도 우리들의 일상과 경제 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필수 개념들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를 말해준다는 면에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정부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들도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경제 원리로 꼽히고 또 그만큼 현실에서 항상 마주치는 개념들입니다. 오늘 방송이 청취자분들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출간 한 달만에 1쇄 3000부를 모두 팔고, 교보문고 CEO 필독서로 선정된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의 PDF 파일을 무료로 공유드립니다.)
(지난 <홍자병법> 뉴스레터 보기)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유튜브로도 써먹는 경제경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제, 경영 이슈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듣고싶으시면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을 구독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뽑은 Top 10 채널입니다.)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팟빵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