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맥나마라, 군대와 전쟁을 경영과 통계로 재구성했던 이유.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하버드 경영대 교수 출신 포드자동차 사장은 어떻게 미국 최장수 국방장관이 됐을까? 로버트 맥나마라 그가 경영학과 통계학의 힘으로 7년간 미국 국방부를 이끌었던 비결.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돈값을 하는 사업만 벌려라>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마련해봤습니다.
오늘 방송에선 하버드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공부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를 거쳐 포드 자동차 사장이 된 경영학자이자 기업인이 자신의 경영, 통계 지식을 바탕으로 미군이라는 당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조직이자 또 매우 비효율적이었던 조직을 어떻게 개혁에 나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8대 국방장관은 군을 개혁하기 위해 당시로선 낯선 개념이었던 비용효과분석 기법을 군에 도입했는데요. 비용효과 분석은 뉴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용편익분석, 예비타당성 조사와 같이 기업을 경영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수단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돈을 낸 만큼 값어치를 하는지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비를 따져보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방송을 들으시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경영, 통계 지식을 갖추는 것의 중요성과 함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비용편익분석과 예비타당성 조사의 뜻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먼저 로버트 맥나마라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맥나마라 같은 인물을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천재입니다. 천재라는 말 그대로 그는 자신만의 경영학, 통계학 이론을 만들어냈고요. 실제로 이 이론을 활용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대기업이던 포드자동차의 경영 실적을 크게 개선시켰습니다.
그리고 포드자동차 사장을 거친 뒤에는 7년간 미국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미군의 여러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개혁했습니다. 7년이란 재임 기간은 역대 미국 국방장관 중에서 가장 긴 재임 기간입니다.
1916년에 태어는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석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잠시 회계법인에서 일했던 그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연소 교수가 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연봉은 가장 많은 교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그는 육군 항공대 대위로 군복을 입습니다. 전쟁 당시 그는 전쟁부 통계국에서 일하는데요. 여기서 그가 했던 일은 경영학과 통계학 지식을 바탕으로 군수물품을 구해다가 군인들에 나눠주는 조달‧보급 절차를 개선하고, 어떻게 하면 전투기와 폭격기를 비롯한 공군 전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적군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를 수학과 통계기법으로 연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미합중국 공로훈장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1946년 중령 계급으로 군에서 전역합니다. 군 생활의 전부를 후방에서 보내고 적군을 향해서 총 한번 쏴보지 않았던 그가 훈장과 함께 3년 만에 대위에서 중령으로 두 계급 승진했으니 군에서 그가 했던 역할이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에서 전역한 그는 다시 하버드대로 돌아가는 대신 포드자동차에 들어갑니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가 그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부 통계국에 있던 민간 출신 통계학자들을 모두 고용했기 때문입니다. 헨리 포드가 고용한 통계학자들은 영어로 Data Whiz Kids라고 불렸는데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데이터 신동이나 통계 신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써먹는 경제경영을 들으시면 다양한 경제, 경영 이슈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뽑은 top 10 채널입니다.)
헨리 포드가 로버트 맥나마라를 비롯한 이들 ‘통계 신동’들을 뽑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영학, 통계학 지식을 바탕으로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포드자동차를 싹 바꿔달라는 것이었죠.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형 자동차인 모델 T로 시장을 휩쓸고, 컨베이너 벨트 조립 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혁신으로 포드자동차는 사업 초기 미국 자동차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포드도 설립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나자 관료주의, 부서 이기주의, 비효율적 경영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는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원 투수로 투입된 사람들이 로버트 맥나마라와 통계 신동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런 포드자동차의 기대를 100% 만족시켰는데요.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경영 방식을 도입되면서 포드자동차의 실적은 크게 좋아졌고 로버트 맥나마라 역시 회사 안에서 초고속 승진을 계속합니다. 그는 입사 14년 만인 1960년 마흔넷의 나이로 포드자동차의 사장이 됩니다. 포드 집안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드자동차 사장이 된 지 한 달이 조금이 지났을 때 그에게 국방장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옵니다. 당시 대통령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존 F. 케네디였는데요. 케네디가 로버트 맥나마라를 데려오려고 한 이유는 헨리 포드가 로버트 맥나마라를 데려온 이유와 같습니다.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미군 전체를 대상으로 개혁을 실시해서 보다 효율적이고 강한 군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죠.
지금부터는 그가 자신의 경영, 통계지식과 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어떻게 미군을 개혁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송 초반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는 군대에 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란 분석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영어로는cost-effectiveness analysis라고 불리는 기법입니다. 맥나마라가 비용 대비 효과 분석 기법을 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군은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예산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백악관에서 전체 국방예산의 한도를 정해서 국방부에 보내줍니다. 그러면 국방장관이 육군, 해군, 공군 등 각 군이 이 예산을 각각 몇 퍼센트씩 가져갈지를 결정해줍니다. 이렇게 예산이 정해지면 육군은 육군끼리, 해군은 해군끼리, 공군은 공군끼리 그 예산을 갖다가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고 돈을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에 실린 글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 손정의, 앙겔라 메르켈, 빌 게이츠, 레이 달리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 탁월한 리더와 창업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비결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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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눠먹기식으로 예산을 가져다 쓰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는데요. 국가 차원의 큰 전략적인 목표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중요한 과제부터 추진해나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또 각 군이 알아서 예산을 사용하다 보니 똑같은 무기를 저마다 따로따로 개발하는 비효율적인 중복 투자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서 1950년대에는 육군, 해군, 공군이 저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따로따로 개발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미사일이나 전투기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요. 같은 종류의 무기를 각 군이 저마다 따로따로 개발하려고 한다는 건 엄청난 낭비였죠.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권한, 예산 결정‧배분 권한을 국방부로 갖고 옵니다. 큰돈이 들어가는 무기 개발 사업을 각 군이 따로따로 하지 말고 함께 개발할 수 있게 하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군에게 예산을 나눠주고 알아서 쓰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 그리고 예산을 투입했을 때 기대되는 전략적 효과에 따라 어디에 예산을 쓸지 국방부가 직접 정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과 목표를 세워서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앞으로 5년 동안 동유럽에서 소련의 세력을 견제하는 군사적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의 무기가 필요하고 이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를 계산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도별로 얼마씩의 돈을 투자할지를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비용대비효과분석, 비용대비편익분석, 예산타당성조사의 뜻에 대해서 간단하게만 설명드리겠습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이 분석기법들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는데요. 돈을 들인 만큼 돈값을 할 수 있을지 가격 대비 성능비, 가성비를 따져보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비용편익분석을 놓고 말씀드리면 말 그대로 비용을 들였을 때 얼마만큼의 편익, 즉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건데요. 돈을 이 정도 들이면 얼마만큼의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를 미리 살펴보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다를 메꿔서 땅으로 만드는 간척 사업은 비용이 매우 크게 드는 사업입니다.
우선 바다를 메우기 위한 토목공사 비용으로 많은 돈이 들고요. 땅이 만들어진 뒤에도 여기에 도로, 다리, 상하수도관, 전력시설, 각종 건물들을 지어야 하는데 이런데 쓰이는 모든 돈이 간척사업의 비용으로 잡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간척사업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간척된 땅에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면 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는 거니까 이만큼이 이익으로 잡히고요. 이 땅에 새롭게 공장을 지어서 만든 제품 생산량도 이익으로 잡힙니다. 간척된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나오는 농산물 생산량도 이익으로 계산됩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업을 할 때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이를 통해 거둘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일정 기간을 두고 비교하는 게 비용편익분석의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비용편익분석을 할 때 중요한 건 모든 성과를 화폐가치, 즉 돈으로 환산해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새롭게 도로를 뚫게 되면 기존 도로의 교통난이 해소되고 사람과 제품의 이동시간이 줄어들게 되는데요. 이렇게 교통난이 해소되고 이동시간이 단축된 게 돈으로 따지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미리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분석해서 금액으로 환산한 뒤 이를 도로 건설비용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비용편익분석으로 특정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편익이 계산되면 편익을 비용으로 나눠보는데요. 이 값이 1 이상이어야만 그 사업이 경제성, 즉 가성비가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익을 비용으로 나눴을 때 그 값이 1을 넘는다는 건 들어가는 비용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말이죠. 돈이 1원이 들어갔을 때 최소한 그 효과도 1원 이상은 나와야 사업을 해볼 만하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입니다.
다시 로버트 맥나마라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방금 설명드린 비용효과분석을 자신이 국방장관으로 있던 7년 동안 전 미군에 도입합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던 베트남 전쟁의 전세를 분석하는 데도 비용효과분석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베트남전 당시 폭격기의 출격 횟수와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의 종류와 양을 집계한 뒤 이를 통해 몇 명의 적군을 사살했는지와 비교했습니다. 폭격기 출격 횟수와 떨어뜨린 폭탄의 양이 미군이 사용한 비용이 되는 거고요. 사살한 적군의 숫자가 효과 혹은 편익으로 계산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이 숫자를 보고 미군이 전쟁을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맥나마라에게 보고된 적 사망자 수와 실제로 사망한 적군의 숫자가 크게 차이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보스인 맥나마라가 적 사망자 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잘 아는 베트남 현지 미군 부대들이 자신들이 사살한 적군의 수를 부풀려서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보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통계를 조작했던 거였습니다.
그 결과 현실과 동떨어진 보고서들이 맥나마라와 대통령에게 보고됐었고 이는 결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최고 지휘부가 전쟁의 상황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게 됐으니 당연히 전쟁에선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주된 이유입니다.
만약 이 같은 숫자 조작이 없었다면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더 일찍 깨달았을 거고 이에 따라 더 빨리 베트남에서 철수했다면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지키고 전쟁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통계를 구할 때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출처를 확보하고, 특정한 의도에 따라 통계 집계 과정이 휘둘리지 않도록 막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베트남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오명이 됐는데요. 2009년 7월 6일 그가 사망했을 당시 뉴욕타임스가 그의 부고 기사 제목으로 뽑은 ‘헛된 전쟁의 설계자 로버트 맥나마라, 93세를 일기로 죽다’라는 제목이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운 경영, 통계 이론이 미국 기업계와 미군에 미친 영향을 결코 작지 않았는데요. 그가 국방장관 시절 확립한 기획예산체계, 비용효과분석 기법은 이후 미군은 물론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군대와 기업들이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1968년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그는 같은 해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해 1981년까지 13년간 일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가난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오늘은 <하버드 경영대 교수 출신 포드자동차 사장은 어떻게 미국 최장수 국방장관이 됐을까? 로버트 맥나마라 그가 경영학과 통계학의 힘으로 7년간 미국 국방부를 이끌었던 비결.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돈값을 하는 사업만 벌려라>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마련해봤습니다.
오늘 방송이 청취자 여러분이 경영, 통계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오늘 방송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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