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록키 Sep 07. 2018

018. 끈적한 중년 부부

사진 한 번 찍어드리고 시작할게요. 포즈 좀 취해주세요.


여느 투어처럼 인력거 위에 앉은 손님 사진을 찍어주고 투어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포즈를 취해달란 말에 남자분은 화끈하게 응했다. 자기 쪽으로 아내를 끌어당겨 볼에 입을 맞췄다. 

이번 손님은 50대 중년 부부였다. 인력거 투어 내내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자주 껴안았다. 사진을 찍는 곳마다 찐한 스킨십을 해서, 금실이 좋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내가 봤던 어떤 커플들보다 열정적이어서 좋았다. 내가 맥주를 좋아한다는 말에, 남자분은 헤어지며 아사히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주었다. 그래서 단지 좋은 손님으로 기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일기를 정리하는데 이상한 점이 조금씩 생각났다. 그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 작은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1.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 질문에 남자분은, "는 강남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아니라 '저'. 그리고 둘이 머무는 호텔은 명동에 있었다. 여자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2. 여자분은 마음만은 젊게 사는 사람이었다. 

"저는 늙어서도 계속 젊게 살고 싶어요." 
인력거를 타는 내내 여자분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었다.

"저와 잘 맞는 여자만 찾으려 해서 연애하기가 어렵네요." 

나의 이런 푸념에,

"맞아요. 저도 그런 게 없으면 안 끌려요. 사람은 각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지."

라며, 나의 연애관을 이해해줬다. 보통 나이 든 사람은, "맞는 사람만 찾을 생각 말고, 상대방에 맞출 생각을 해야지."라며 진부한 말을 하기 마련인데.

3. 두 분은 공통사가 달랐다. 여자는 아사히 맥주, 남자는 폭탄주, 좋아하는 술이 다른 것 외에도 여자와 남자가 좋아하는 게 많이 달랐다. 말하는 내내 핀트도 조금씩 어긋났다. 내가 아는 금실 좋은 부부들은 서로 케미가 잘 맞아서,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재밌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두 손님 대화는 그리 부드럽게 흘러가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다.

"회사에 보고를 올려야 되는데, 제 핸드폰으로 두 분 사진을 하나 찍어도 될까요?"

내가 부탁하자, 그때 남자분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혹시 인터넷에 그 사진이 올라가나요?"

중년부부가 아니라 중년커플이었던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17. 기억 상실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