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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017. 기억 상실증

손님: 여자 두 명.(관계: 대학 친구)


내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인력거를 이용했다. 구릿빛 피부에, 얼굴은 뮬란을 닮은 여자 한 명. 다른 한 사람 얼굴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예쁜 필리핀계 여자였다. 둘은 캐나다 대학을 함께 나온 친구라 했다.

필리핀 여자를 보곤 첫눈에 '예쁘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눴던 거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 예쁜 사람 이야기를 기억 못 할 수 있냐?'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다. 
하지만 뮬란을 닮은 여자분은, 얼굴뿐만 아니라 했던 말까지 모두 기억났다. 

정말 닮았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뮬란'의 모습


"저는 예술가예요. 설치 미술을 하고 있고요."

여자분의 첫인사이자 자기소개였다. 
"이민을 잘못 갔어요. 추운 걸 싫어하는데 토론토는 영하 30도가 넘더라고요."
여자분이 캐나다에 산다고 해서 내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했던 대답이다. 
"제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 저희 이모예요. 산에서 사는 분인데 저도 자연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를 지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체력은 좋아요. 하루에 24시간 동안 작업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내 글 쓰는 작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자분이 한 말이다. 
"제 몸에 pine tree(소나무) 타투를 새겼어요. 제가 pine tree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제 작품 중에도 pine tree에서 영감받은 게 많아요."
커다란 소나무를 보며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8호 '재동 백송'


집에 와서 일기를 쓸 때, 두 손님 이야기가 양적으로 차이가 났다. 필리핀 손님 이야기는 기껏해야 두 줄, 그마저도 없는 이야기를 쥐어짜내야 했다. 그런데 뮬란을 닮은 사람 이야기는 두 페이지에 빼곡히 채워졌다. 

뮬란 닮은 분에게 온 편지


아, 생각해보니 내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을 참 좋아했지. 뮬란이 참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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