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록키 Sep 07. 2018

016. 어색한 사이

손님: 한국 남자 1명, 인도 남자 1명


"두 분 친구예요?"

“아니오.”
"그럼 회사 동료에요?"
“비슷한 거예요.”
남자 손님 두 명이 내 인력거에 올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친한 친구도 아니고, 동료도 아닌데 대체 인력거에 왜 함께 탔을까? 게다가 둘은 어색한 사이였다. 남자 둘 다 몸집이 큰 편이었는데, 좁은 인력거 안에서 서로 붙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 명은 가장자리로 몸이 쏠려있었고, 다른 한 명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게 인력거에 타는 손님들 끼린 친하기 마련이다. 가족, 친구, 연인, 등등 관계는 다양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끼리 타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친하지 않은 남자끼리 타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이 정돈 친해야 인력거를 같이 타....


하긴, 손님을 태우기 전부터 이상하긴 했다. 손님은 ‘영어 투어’로 예약을 했는데, 예약자 이름이 한국인이었다. 그게 뭐 이상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게 한국인이 영어 투어를 신청하는 경우, 여행사 이름이 같이 붙기 마련이다. 외국인을 데려온 가이드가 인력거 투어를 신청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사 이름도 없는, 익명의 한국인이 예약한 상황. 

예약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가니 남자 세 명이 서있었다. 한국인 두 명과 인도 사람 한 명. 한국인은 중년 남자 한 명과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이었다. 그중 인력거에 올라탄 사람은 젊은 한국 남자와 인도 사람이었다. 
투어는 전부 영어로 진행됐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인도 친구만 신경 써주세요.”
젊은 남자는 인도 사람을 특별히 신경 썼다. 심지어 내가 인력거를 타면서 계속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설명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한국 남자는 인도 사람의 자리를 오른쪽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영어로 시종일관 설명하다 보니, 한국 남자가 너무 소외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어로 몇 마디 건네 봤는데 남자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한국 남자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거나, 딴짓을 하다가 
“네?”, “뭐라고 하셨어요?”
라며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결국 투어는 인도 사람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투어가 거의 막바지로 다다랐을 무렵, 도보 투어를 하는 구간에 도착했을 때였다. 
"한옥 전경을 보는 것과 한옥 내부를 둘러보는 선택지가 있는데, 둘 중에 어떤 게 좋으세요?"
내가 한국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도 함께 투어에 참여한 만큼 한국 사람에게도 선택권을 주려고 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인도 친구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한국 남자는 여전히 인도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재앙이 될 줄은 그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한옥마을의 언덕. 여행자들은 각오하고 와야 한다.


“어헉, 원래 이렇게 많이 걷나요? 편하게 인력거 타고 다니는 건 줄 알았는데.”

한국 남자는 언덕을 올라가다가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에 인도 남자는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지친 기색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한옥 사진을 찍었다. 인도 남자는 한옥 전경을 보는 코스를 택했다. 내가 많이 걸어야 될지도 모른다며 겁을 줬지만, 인도 사람은 괜찮다며 전의를 다졌다. 생각보다 북촌 언덕은 한국 남자에겐 높았던 모양이었다. 한국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고통스러워했다.



한옥마을 언덕은 가파르지만, 한 번쯤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


인도 남자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한옥 사진을 찍을 동안 뒤처진 한국 남자를 챙기는 건 내 몫이었다. 지친 한국 남자와 속도를 맞추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투어 내내 궁금했던, ‘둘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두 손님의 관계는 친구 관계도 아니고 직장 동료 관계도 아니었다. 한국 남자가 속한 회사와 인도 사람의 회사는 협력 업체였다. 인도 사람이 업무차 한국에 방문했는데, 업무가 끝나고 서울구경을 다니는 중이라 했다. 상당히 건전한 접대문화였다. 대게 회사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밤 문화를 대접하는 경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인력거 투어로 접대하는 경우는 생소했다. 
투어가 다 끝나고 약속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인력거에 오르지 않았던, 중년 남자가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인도 사람도 인력거 위에서 두 팔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중에 웃지 않는 사람은 젊은 남자뿐이었다. 인력거에서 내려 인도 남자와 중년 남자가 투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젊은 남자는 나에게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수고하셨습니다.”
남자의 파란 셔츠 겨드랑이 부분만 유독 짙게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도보투어를 하며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눴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예약도 하시고, 서울 여행 계획도 짜시고, 거기다 직접 인력거까지 타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내 말에, 젊은 남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바로 회사 막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5. 세대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