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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키 May 28. 2024

안경잡이 댄서 - 벗어나기

(2022.06.30)

‘댄서들은 왜 안경을 쓰지 않을까?‘


댄서 중에 안경을 끼는 사람?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만나는 댄서들이라 함은 매주 수요일 수업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이기 때문에, 이 단언은 나의 편협한 시각일 확률이 크다. 무대에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끼는 사람을 봤다고 반론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무대 위의 퍼포머가 아닌 한낱 춤을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네 이 역시 제 편협한 시각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편협하게 바꿔서, 댄서 중 연습할 때 안경을 끼는 사람? 본 적이 없다. 코레오그래피 수업을 4년 가까이 듣고 있지만 여태껏 수업 중에 안경을 쓰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나.


사실 댄서들이 안경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춤을 출 때 불편하니까. 늘 안경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편함은 춤을 추는 도중에 안경이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개를 획 젖힌다거나 빠르게 턴을 도는 경우 안경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곤 한다. 눈앞의 시야가 흐릿해짐과 동시에 찾아오는 창피함, 그리고 모두가 나의 사라진 안경에 탄식으로 애도할 때의 쪽팔림.


안경 날림 사태를 타파하기 위해 내가 생각해 본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1. (영상을 찍을 때 만이라도) 안경 벗고 춤추기

안경을 벗으면 바로 앞 노트북 속 글자도 검정 선으로 보이는 내 시력으로는(이 글을 쓰며 실제로 확인해 보았다.)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대다 넘어질 것이 확실하다. 고로 이 방법은 탈락!

2. 안경다리 끝에 고정 받침대 껴두기

가장 확실한 안경 고정 방법이겠으나 이건 아무래도 폼이 나지 않는다. 이런 받침대는 군대 입대할 때나 챙기는 물품이라고. 탈락!!

3. 렌즈 착용하기

가장 보통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허나 나는 렌즈를 잘 끼지 못한다. 렌즈를 넣으려고 할 때마다 눈을 감기 일쑤이고, 눈을 자주 비비는 습관은 렌즈 착용에 최악이다. 그러므로 탈.. 아니 일단 보류.


해결책은 항상 의외의 것에서 찾아오게 마련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딜 가나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고, 이것은 춤 연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춤을 출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은 ‘숨이 참 X 100’을 만드는 일인데, 이 마스크에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마스크를 착용할 때 마스크 줄을 한 번 꼬아 귀에 걸면서 안경다리에도 함께 걸치기! 이 경우 한 번 꼬아진 마스크 줄이 고정 받침대 역할을 해준다! 조금 남다른 사이즈의 얼굴 크기는 안경을 더 탄탄히 고정하는데 퍽 도움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스크, 그리고 남다른 얼굴 크기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


하지만 이 해결책도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올까 싶다 만은, 언젠간 코로나도 종식이 되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되면 마스크는 더 이상 내 안경을 고정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도 끝났는데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출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결국엔 렌즈를 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춤출 때 렌즈를 끼는 것이었다. 뭐 그런 목표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꽤나 진지한 목표였다. 허나 올해가 반이나 지나가는 지금까지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 렌즈를 산 게 2년 전인데 아직 테스트용 렌즈도 뜯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내 렌즈의 유효기간은 확인해 보니 2024년까지다. 아직 쓸 수 있구나.

하반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이 순간. 그래, 올해 목표 하나쯤은 이뤄야지. 조심스레 렌즈 위 먼지를 닦아본다.


*


2024.05.28 약 2년이 흐른 지금, 예전 글을 읽어보니 2년 사이에 참 많은 일이 벌어졌구나 싶다. 매주 수요일 코레오그래피 수업만 듣던 난 이제 평균 주 4회 춤을 춘다. 코레오그래피에서 힙합과 왁킹이라는 장르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수업만 듣는 게 아닌 공연 무대에도 왕왕 서게 되었다. 무엇보다 안경 쓴 댄서 몇을 알기도 한다.


그때와 지금 같은 점이라면 내가 아직까지도 안경잡이 댄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1. 안경 벗고 춤추기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퍼포먼스 영상 촬영 중 안경이 자꾸 날아가서 어쩔 수 없이 시도한 것이었다. 혼자서 춤출 때는 안경 벗고 추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공연을 하다 보니 동선 이동 시 위험성 때문에 안경을 벗고 춤추는 것이 쉽지 않다. 여러 번 할 수 있는 영상 촬영이 아닌 단 한 번뿐인 무대 공연이라면 더더욱.

2. 안경다리 끝에 고정 받침대 껴두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폼이 나지 않는다. 탈락!

3. 렌즈 착용하기

첫 공연 무대에서 렌즈 착용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렌즈가 눈에 들어오려는 찰나 나는 눈을 감기 일쑤였다. 크루 멤버 두 명이 내 눈을 잡고, 또 한 명은 렌즈를 넣으려고까지 했으나 실패했다. 눈꺼풀 힘이 이리 쎈 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결국 렌즈의 유효기간이 다하기도 전에 안경을 새로 맞추며 안경 도수가 달라졌고 렌즈와는 이별했다.

4. 마스크 줄을 꼬아 안경다리에 걸치기

알다시피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며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났는데도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춘다..? 있을 수 없다.


행인 점은 이젠 힙합과 왁킹을 주로 배우는 터라 머리를 과하게 털 일이 없어 안경이 잘 날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잡이 댄서 벗어나기는 현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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