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키 May 20. 2024

갸우뚱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왁킹 프리스타일 도전기

“이번 주는 마지막 수업이니까 개별적인 피드백이 들어갈 거고, 약간의 비수를 꽂을 거예요.”


그래, 오늘 이것 때문에 결석하고 싶었다. 나의 왁킹 프리스타일에 대한 ‘개별적인’ 피드백. 그런데 비수를 첨가한.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에 수업을 듣던 쌤이 이번 달에는 뚝딱이반(정말 춤을 처음 추는 사람,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를 위한 수업)만 진행하셨고, 마침 ‘스트릿 우먼 파이터 2’를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던 쎄라 쌤이 한 달 특강을 진행한다길래 냅다 신청해 버린 것이었다. 쌤이 6개월 만의 중급 수업이라서 빡세게 준비해 오셨을 줄은, 수업 소개 글에 쓰여있던 다양한 요소 중 ‘프리스타일’이 메인 주제였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수업은 정말 프리스타일 위주였다. 처음 두 번 수업엔 안무 루틴이 있긴 했지만 그 외 대부분은 프리스타일을 트레이닝하는 시간이었다. 힙합으로도 프리스타일은 피하는데, 트월*도 부족한 내가 왁킹 프리스타일이라니.


* 트월(Twirl) : 왁킹의 기본 동작으로, 팔을 돌리는 동작을 말한다.


요즘 춤 판은 프리스타일 배틀과 퍼포먼스,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프리스타일 배틀은 무작위로 나오는 음악에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겨루는 것을 말한다. 승패는 보통 춤 자체를 얼마나 잘 추는지 판단하는 테크닉, 음악을 얼마나 잘 살리는지를 보는 뮤지컬리티, 춤의 질감 표현, 애티튜드 등의 요소로 결정되는데 저지가 중요시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많은 음악을 알고 있어서 어떤 음악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던가, 모르는 음악이라도 잘 예측해 가며 춤을 추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에 반해 퍼포먼스는 안무를 미리 구상하고 연습해 무대에 서는 형태다. 안무를 얼마나 잘 짰는가, 동선 등 구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넣었는가, 연습을 많이 했는가 등이 평가 요소가 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퍼포먼스를 훨씬 훨씬 더 선호한다. 안무를 직접 짜진 않지만 정해진 안무를 배우는 게 마음이 편하고, 솔직히 빨리 잘 외우기도 한다. 동작의 정확성, 표현력 등은 내가 시간을 투자해 반복 연습을 하면 어떻게든 된다. 이에 반해 프리스타일은 무의 상태에서 내가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하니 두렵고도 어렵다. 학창 시절부터 하라는 것만 성실히 따르며 자라온 나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너무 어려운 주문이다. 또 프리스타일은 ‘날 봐! 나 잘해!’하는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가 필요한데, 어릴 때 재수 없단 소리를 많이 들었던 나로서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게 힘들다. 같은 크루 멤버들은 프리스타일 배틀에 나가면 내가 가장 본선 진출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내가 자신감 있게 눈이 돌아갈 정도로 춤을 출 수 있을 때는 술을 마셨을 때뿐이다.


“이제 네 명씩 짝을 지어줄 거예요. 한 명씩 나와서 프리스타일로 추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슬쩍슬쩍 가서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줄 거예요. 눈은 춤추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귀는 제 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여기 조는.. 남자끼리 하면 너~무 재미겠다.”


그렇게 스무 명 중 단 네 명뿐인 남자들끼리 같은 그룹이 되었다. 그중 두 명은 다른 학원에서도 본 적이 있는 왁킹을 전공하는 것 같은 어린 아가들이고, 다른 한 명은 나와 비슷하게 왁킹을 취미로 배우는 것 같은 동년배였다. 전공생 아가 다음으로 내 차례가 되어 춤을 추는데 처음 듣는 음악이라 소스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전공생 아가들이 트월도 제대로 못 한다며 속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 같고(사실 그 아가들은 내가 추고 있는 춤에 관심도 없을 것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추고 싶고, 근데 음악을 잘 모르겠고. 긴가민가 긴장만 하다가 첫 번째 턴이 끝났다. 그리고 쎄라 쌤의 등장.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혀 쎄라 쌤에게 귀를 가져다 댄다.


“음악 잘 들으시고, 표현력도 좋으세요. 근데 시선이 너무 밑에 있어서 땅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데, 어디 한 군데를 찍어 놓고 거기를 보면서 춤을 춰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비수가 아닌 말에 안도함과 동시에 이 고질적인 자신감 결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한탄했다. 다음 턴, 다다음 턴에는 최대한 땅을 보지 않으며 춤을 춰보았지만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쌤은 내가 음악을 잘 듣고, 표현력이 좋다고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칭찬마저 그냥 달래기 위해 해주는 말로 느껴졌다.


“이젠 두 명씩 짝을 지어드릴게요. 각각에게 피드백드렸던 거 기준으로 서로 보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끼리 짝지은 거예요.”


나의 짝은 내 동년배 사람이었다. 그래, 전공생들이랑 우리를 짝지으면 애들이 맘에 안 들어하겠지. 취미생들은 취미생들끼리 짝짓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드는 한 편 내심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서로 한 턴 씩 주고받으며 춤을 추고 있는 와중에 쎄라 쌤이 다시 내 뒤로 와 나는 무릎을 굽혔다.


“보세요. 저분은 자기 안의 자신감이 넘치는 게 느껴지죠. 그래서 동작도 정확해지고, 애티튜드가 살잖아요.”


그랬다. 동년배 사람은 (개인적인 견해로) 춤을 아주 잘 추는 분은 아니었지만 매번 춤을 출 때마다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이 없었다. 그에 반해 나는 항상 갸우뚱으로 시작해, 주저주저하다 끝나는 때가 많았다. 춤은 기세라고, 아무리 잘 춰도 기세 없이는 말짱 도루묵인 마당에 갈 길이 먼 난 왜 주저하고만 있었을까. 테크닉, 뮤지컬리티, 질감 표현, 애티튜드 중 그나마 가질 수 있는 게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인데.


마지막 턴은 자신감 있게 춰 보기로 한다. 다행히 음악도 아는 음악이다. 시선은 땅에 두지 않고 위로. 아무도 날 보지 않고 있고, 나 혼자 춤을 추고 있다고 상상하며 자신감을 내비쳐 본다. 트월과 왁으로 음악을 현란히 표현해 본다. 턴도 한 번 돌아본다. 그리고 쎄라 쌤의 시선을 느낀다. 턴과 동시에 터지는 쎄라 쌤의 외침을 듣는다.


“그렇취!!”

작가의 이전글 광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