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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Jun 02. 2024

자폐는 병(病)일까, 개인의 정체성일까?

모르겠으니 파스칼에 빙의하여 생각해 보자.

  자폐를 진단받은 아이의 부모들이 꼭 거쳐가야 하는 질문이 있다.


  자폐는 병(病)인가, 개인의 정체성인가?


 이는 아이의 치료(혹은 교육) 방향을 정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폐가 병(病)이라고 생각한다면 병이 깨끗이 다 나을 때까지 치료하는 데 집중을 해야 할 것이고,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의 특수성을 인정하며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데 집중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답이 없는 문제를 만난 경우, 그런데 꼭 어떤 입장을 취해야 앞으로의 행동을 진행할 수 있을 때 수학자 파스칼을 생각한다. 파스칼은 종교를 믿을 때에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여 이해득실을 따진 T 중 T인 인간이다.


 파스칼은 이렇게 주장했다.

T 중 T인 인간의 종교로 이해득실 따지기


 파스칼에 따르면

 신을 믿을 경우, 실제로 신이 없다면 살아있는 동안 세속적으로 약간의 손해를 입을 수 있지만, 실제로 신이 있다면 죽은 뒤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신을 믿지 않을 경우, 실제로 신이 없다면 어떠한 득실도 없지만, 실제로 신이 있다면 죽은 뒤 지옥에 가는 너무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지타산을 따졌을 때(?) 신을 믿는 것이 더 득이 되므로,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믿는 데에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파스칼의 철두철미함에 큰 감동을 받은 나는,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결론을 내야 할 때면 파스칼에 빙의를 하게 되었다. 어차피 답도 없는 문제, 이득이라도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하. 그래서 ‘자폐는 병(病)인지, 개인의 정체성인지’에 대해서도 파스칼에 빙의를 하여 이해득실을 따져보기로 했다.


 이건 부모와 아이, 즉 당사자가 둘이니 < 부모의 입장 >과 < 아이의 입장 >을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결과는 같지만!)


 

 


 붉은색으로 표시한 것은 실(失)이고, 초록색으로 표시한 것은 득(得)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나와 재준이 모두에게 이득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폐를 정체성이라고 생각할 경우, 실제로 자폐가 병(病)이든 정체성이든 그 어느 경우에서도 득이 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한때, 재준이의 자폐 치료를 위해 나도 수천만 원의 돈을 들여가며 '완치'를 해준다는 곳들을 찾아다녀볼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진짜 재준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육아에 대해 깊은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재준이가 클 동안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준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다른 사람들이 재준이를 어떻게 생각하든, 재준이는 재준이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준이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저렇게, 아주아주 철두철미하게 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자폐를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건 언어재활사의 입장으로 따져봐도 같은 결론이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자폐 아동들이 치료를 해야 하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할 것이다.


 그러니 다들, 아이의 '자폐'를 두고 병으로 생각할지, 정체성이라고 생각할지,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져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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