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라넌큘러스-겹겹이 쌓인 하루

by 이영주


지지직— 라디오 소리가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창밖에 사람들은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건지,

한 손엔 차가운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을 쥔 채

고개를 전부 땅 쪽으로 숙이고 빠른 경보를 울리며 지나간다.


‘나도 밖을 다닐 땐 저렇게 다니나?’


생각하다가 꽃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던 중,

저 멀리서 비율 좋은 아주 예쁜 여자분이 웃으며

내가 있는 가게만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곧 들어오겠구나 싶을 만큼 정면돌파였다.


“3… 2… 1.”


도착 전까지 숫자를 세어본다.

딸랑—

정확히 1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렸다.

맞췄다는 생각에 내심 속마음은 뿌듯해진다.


“어서 오세요.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예쁜 분이 보이길래요.

들어오시겠구나 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꽃 사고 싶은데

추천해 주실 만한 거 있을까요?”

예쁜 얼굴만큼 목소리도 환했다.


“어떤 이유로 사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저 오늘 자유거든요.

오늘은 남편이 아기를 봐준다고 나갔다 오라 해서요.

너무 좋아서… 저한테 꽃 선물하려고요.

얼마 만에 아기 없이 혼자 나오는지 몰라요.

사장님이 저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골라주세요.”


아기 엄마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과 몸매였다.

괜히 내가 반성하게 된다.

내가 선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선물하는 마음으로 꽃을 고르게 되면 이상하게 더 조심스러워진다.


“정말 제가 골라도 괜찮을까요?”


“네! 당연하죠.”


나는 잠시 꽃들 사이를 걸었다.

그중에서 자연스럽게 손이 간 건 라넌큘러스였다.

꽃잎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꽃.


“이 꽃은요,”

꽃을 들고 계산대 앞으로 오며 말했다.

“한 겹인 것 같아 보여도, 들춰보면 계속 나와요.”


그녀는 꽃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저 같네요.”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더 많은 설명은 필요 없었다.

꽃잎 하나를 살짝 벌려 보이며 덧붙였다.


“엄마인 겹도 있고, 아내인 겹도 있고,

오늘처럼 그냥 나인 겹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 꽃이 더 예쁜가 봐요.”


포장을 하면서 꽃잎이 구겨지지 않게

손끝에 조금 더 힘을 뺐다.

라넌큘러스는 다정하게 다뤄야 한다.

급하면 안 되고, 성급하면 망가진다.


“이거 들고 오늘은 좀 천천히 다니세요.”


“네, 오늘은 꼭 그럴게요.”


그녀는 꽃을 품에 안고 문을 나섰다.

딸랑—

종소리가 다시 가게 안에 퍼졌다.

문이 닫히고, 가게엔 향만 남았다.

아까보다 창밖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 보였다.


겹겹이 쌓인 하루 속에서

오늘은 그녀가,

그리고 나는

잠시 한 겹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꽃을 사는 날이 올까.

꽃을 파는 사람이 아닌

그냥 나로서.


자기 자신에게 꽃을 선물한다면

다들 어떤 꽃을 고를까.

아무 역할도 이름도 붙이지 않고

오롯이 나로만 하루를 보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의 감정을 기록한 글입니다.


꽃을 고르는 짧은 순간만큼은

당신도 당신에게 다정했기를 바랍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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