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할 겨를 없는 당신과 나를 위한 글입니다.”
이천십칠년 시월 오일 목요일
여행 중에 아이유의 새 리메이크 앨범이 발매됐다. 수록곡 중 양희은 님의 노래 ⟪가을 아침⟫을 듣다 보면, 가사 중간에 「한가함」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득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겨를이 생겨 여유가 있다’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겨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모르는 영단어를 찾기 위해 영영사전을 펼쳤는데 설명에 또 하나의 모르는 영단어가 등장한 기분이다. 찾아보니 ‘어떤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이나 생각으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고 적혀있다.
「겨를」이라는 명사를 보통 「없다」라는 동사와 함께 관용적으로 쓰다 보니 정작 그 단어의 의미는 모른 채 무심코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니 'Leisure, Free time'이라는 뜻이더라.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맘에 쏙 든다.
가만히 앉아 지난날을 돌아보니, 「한가하게」라는 표현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가볍게 예를 들자면,
“한가하게 연애질이나 하고 말이야.”
“한가하게 여행 다닐 새가 어딨어?”
“인터넷 하는 거 보니 좀 한가한가 보다?”
“내가 뭐 한가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저 오늘 밤에 한가해요(?).”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야.”
“한가하면 이리 와서 이것 좀 해봐.”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니, 주로 가정에서 부모님께 혹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들었던 말들이다. 한가하다는 표현이 담긴 문장들은 왜 하나같이 무언가를 부정하거나 지적하거나 아니면 따질 때 쓰는 표현들 뿐일 걸까? 이렇게 예쁘게 쓸 수도 있는데 말이다.
“간만에 한가하니 참 좋다.”
“오늘은 한가하니까 좀 쉬어.”
“사람은 한가한 시간이 꼭 필요해.”
“한가할 틈이 없어서 어쩌면 좋아요?”
낯선 표현투성이다. 저런 말을 평소에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더욱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한가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적과 유재석이 그러던데, 사람은 ‘말하는 대로’ 되는 법이니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라고 하던데, 정작 한가하게 살고 싶은 나는 살면서 「한가함」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대신 내가 주로 썼던 말은 ‘노력’해서,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야무지게’, ‘성실’하게, ‘완벽’하게, ‘꼼꼼’하게 등등. 한가함과는 정 반대편에 있는 단어들뿐이었다.
가정에서 부모님께 나의 한가함을 이야기하면 되돌아올 말이 무엇일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들어가서 숙제하라고, 청소 좀 하라고, 정리 좀 하라고, 취업 준비는 안 하냐고 등등. 직장은 가정보다 훨씬 심하다. 어떻게 감히 직장에서 한가함을 논한단 말인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다 했다 한들 한가함을 드러내서는 절대 결코 안 된다. 오죽하면 일하는 척하면서 카톡을 하는 이들을 위해 엑셀을 닮은 카톡 테마와 투명도 조절 기능이 생겼을까. 업무 중 딴짓을 하는 동안 우리의 왼손이 언제나 alt+tab 위에 올려져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가하면 안 되나? ⟪가을 아침⟫에 등장하는 아들 녀석 처럼 나도 집에서 한가하게 기타 좀 치면 안 되나? 직장에서 한가할 때 잠깐 인터넷 좀 하면 안 되나? 이렇게 말하면 직장에서 높으신 분들이 그러겠지. 놀면서 돈 버는 게 정당한 거냐고, 업무 시간에는 업무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거기에 나도 한마디 던진다. 그럼 똥 싸면서 돈 버는 건 정당하냐고, 흡연자가 업무시간에 흡연하면 정당한 거고 내가 사무실에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보는 건 부당한 거냐고. 니 담배는 고결하고 나의 인터넷은 불결하단 말인가. 어떻게 된 건지 이 사회는 ‘한가함’을 지나칠 정도로 ‘정죄’하는 것 같다.
굳이 연구결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잘 쉬고 잘 놀아야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루 8시간 꼬박 일만 한다고 해서 업무 능률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적당히 쉬고 무리하지 않아야 장기적인 업무 능률이 유지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근로기준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구성원들에게 워커홀릭 생활을 강요하는 이유는 뭘까? 나도 정답은 모르지만, 예전 직장 상사가 나에게 했던 말 속에서 작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이 조직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구나’ 감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일 끝나고 집에 가봐야 뭐하냐. 심심하고 짜증만 나지. 그냥 회사에서 일하다 저녁 먹고 가는 게 돈도 아끼고 속 편해. 너도 저녁 먹고 갈래?”
흔히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논할 때 고려하는 것이 ‘출퇴근 시간’, ‘주말 근무 여부’, ‘야근 빈도’ 등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워라밸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 ‘삶’을 사는가.
아니면
‘삶’을 잘 살기 위해 ‘일’을 하는가.
이렇게 쓸 수도 있다.
‘일’을 위해 ‘휴식’을 하는가.
아니면
‘한가함’을 위해 ‘일’을 하는가.
이십 대 후반, 서너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후자가 아닌 전자의 삶을 몸소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평범한 가장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그들은 워커홀릭이 되기를 기꺼이 선택했고, 그들의 업무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부하직원에게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럼없이 강요했다. 그들에게 일터는 휴식공간이었고 삶의 터전은 가정이 아닌 일터였다. 뭐가 잘못돼도 심하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이들로부터 워라밸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노동의 의미’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일하기 위해 사는’, 더 나아가 ‘일을 아주 잘 하기 위해 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대한민국 월급쟁이>라는 큰 배에서 이미 탈출한 나에게 그것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땅의 목격자이자 공범자인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미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등병 시절 나를 괴롭히던 선임을 보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내가, 병장이 되어 그때 그 선임과 똑같이 행동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그 소름. 느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나아질 세상, 나아지고 있는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 한가함을 허락해 줄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겨를’이라 불리는 그것이야말로 누군가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야 함과 동시에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지같은 회사에 입사해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건 다른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나의 결정이다. 최악의 근무환경과 배울 것 없는 상사들 틈에서 사표를 내고 다른 길을 걷는 것 또한 나의 결정이다.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지켜내는 것 역시 나의 결정이다.
이 모든 결정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서? 혹은 대한민국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 지금은 비록 힘들고 괴롭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결정은 결국 ‘나의 한가함’을 위한 것이다. 내가 한가해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아닌가. 내가 한가해야 나의 행복함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가져볼 것 아닌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알기 위해 일단 뭐라도 해봐야 하는데, 한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은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포기한다 한들 그 누구도 나의 행복을 대신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만약 당신의 행복을 다른 이에게서 대신 찾으려 한다면, 당신은 머지않아 가족을 위해 기꺼이 한가함을 포기한 우리네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오로지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랑하는 가족을 어깨에 짊어지고 스스로 외로운 길을 선택한, 그것이 자신들의 사랑법이자 행복이라 믿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버지 사이에서 당신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마냥 한가하게만 시간을 보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지금의 내가 아닌 중년의 당신이 대신해줄 것이다. 충분한 돈은 있으나 시간은 부족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어서 막상 시간이 생겨도 어떻게 한가함을 누려야 할지 모르는, 당신의 아버지를 쏙 빼닮은 당신의 중년이 아주 명쾌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태국 빠이에서의 한 달,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을 보내면서 생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가함을 누리고 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나는 왜 돈을 버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삶의 목적과 즐거움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나의 일상은 견고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일상이 좌우되지는 않는가?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최소한의 답이자 힌트이다. 지금의 이 한가한 여행은 곧 끝나겠지만, 적어도 잊지 않기 위해, 오래오래 되새기기 위해 적어두는 나만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나는 ‘일’을 위해 ‘휴식’을 하는가
아니면
‘한가함’을 위해 ‘일’을 하는가.
by S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