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 인싸놀이
2020년 1월 18일_여행 셋째 날
뉴질랜드의 하루는 길다. 낮이 길어서 아무리 놀아도 해가 중천이다. 순간순간이 소중한 여행이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는 통영에서 핫한 루지의 원조, 뉴질랜드 루지를 타보기로 했다. 통영 갔을 때 도전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실패한 전력이 있었다. 과연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까?
평소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이상하게 루지는 한번 타보고 싶었다. 구불구불한 커브 길과 매끈한 내리막길, 주변에 펼쳐진 풍경 때문에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지를 타기 위해 작고 재빠른 곤돌라에 몸을 싣고 전망대로 향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는 데, 체력 좋고 시간 많은 사람에게만 권하고 싶다. 경사가 어마 무시하다. 덜덜덜.
퀸스타운 시내와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총 세 번 루지 탑승권을 사용했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짝꿍은 루지도 잘 탔다. 역시 만능 재주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는 이윽고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며 무서워했다. 그는 달팽이같이 느린 나의 속도에 맞춰 핸들을 조절했다. 연신 뒤돌아보며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게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안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질까 봐 겁이 나서 속도를 못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세 번의 루지 탑승권을 다 소진한 후, 사실 처음엔 다섯 번 타고 싶었다고 소심한 고백을 늘어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약간의 두통이 몰려오니 세 번만 타길 잘했다 싶었다. 에휴, 이렇게 놀지 못해서야 원. 역시 집순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루지의 공포에서 해방되니 루지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랑 같이 타는 엄마, 불꽃 튀게 경주하는 커플, 나보다 더 느리게 가는 청년, 생기 넘치는 꼬마들까지. 각자 다른 삶의 크기와 모양만큼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그렇다. 빠르든 느리든 속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누가 앞서간다고 초조해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천천히 달려가는 나의 보폭을 맞춰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아아, 정말 꿀이 뚝뚝 떨어지는 허니문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퀸스타운 비치로 향했다. 여행 첫날밤 충동적으로 밤 산책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길이였다. 불타는 토요일 밤이었기에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흥분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람에게 자주 에너지를 뺏기는 타입이지만, 가끔 이렇게 활기찬 기운을 얻을 때면 나도 모르게 덩실덩실 신이 난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피시 앤 칩스를 덜렁덜렁 들고 호숫가로 향했다. 9시가 지나서야 하늘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구름이 많은 하늘이 선물해준 신비로운 노을이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해 주었다. 길고 긴 하루가 끝이 나는구나, 이제 자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