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에서의 뜨거운 첫날밤
2020년 1월 18일_여행 셋째 날
와, 끝난 줄 알았는데 하루가 엄청 기네? 캠핑카에서의 어마어마한 첫날밤에 대한 짧고 화끈한 에피소드.
캠핑카에서는 잠도 자고 밥도 해 먹을 수 있지만 지정된 캠프 사이트에 주차해야 한다. 무료 캠프 사이트는 주차 장소만 제공할 뿐 이렇다 할 부대시설이 없는 반면 유료 캠프 사이트는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주방, 화장실, 샤워실, 식수대에 와이파이까지. 그렇게 우리는 <퀸스타운 홀리데이 파크>에서 첫 캠핑 밤을 보내기로 했다.
퀸스타운은 뉴질랜드에서도 꽤 도심에 속하는 곳으로, 어딜 가든 예약이 필요하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만큼 핫한 곳이자 시기상 성수기! 그래서인지 <퀸스타운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의 복작거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데스크에 들어가 예약 현황을 확인하고 우리 자리를 배정받았다. 이미 많은 캠핑카가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번화한 도시구나 싶었다.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는 캠핑카와 캠핑카 간격이 무척 좁았고 여러 곳에 화장실과 주방이 있어서 가까운 곳을 이용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캠핑카 첫날밤이라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퀸스타운 번화가에서 재밌게 놀다 온 후 캠핑카 첫날밤을 준비했다. 불을 켜고 매트를 내리고 이불을 깔고 주섬주섬 세면도구를 챙겼다. 세면도구를 함께 쓰기로 해서 한 사람씩 씻고 와야 했다. 먼저 세면을 마친 나는 자리를 잡고 누워서 S593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캠핑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응?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귀에 들리는 건 내가 아는 바로 그 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크고 우렁찬. 혼자 있는데도 얼굴이 새빨개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니, 저기요. 지금 엄청 늦은 시간도 아닌데요. 그리고 여기 앞에 옆에 캠핑카가 무지막지하게 많은데요. 다들 자고 있지 않을 텐데요. 이보세요들. 저희는 신혼여행 왔거든요. 그런데도 그냥 얌전하게 잘 거거든요. 딱 손만 잡고 잘 거거든요. 으아아아아아! 혼자 ‘이게 무슨 일이야!’를 연발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그저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그때서야 문득, 내가 아주 먼 곳으로 여행 왔다는 게 실감 났다.
다행히 열정적이었던 소리는 S593이 오기 전에 끝이 났다. 아쉽게도 그 뜨거움을 나만 들은 것이다.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워서 그에게 속삭였다. 있잖아요, 아까 옆 캠핑카에서,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듣던 그가 깜짝 놀라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옆집 주시놈들 안 되겠네! ‘주시(Jucy)’라는 회사의 캠핑카를 타고 온 커플에게 자연스럽게 붙은 별칭이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주시놈들 얼굴 좀 봐야겠어!
서양인들의 솔직하고 개방적인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던 시간. 문득 S593과 처음 떠났던 페루 여행이 생각났다. 역시 남미는 남미인가 보다, 생각하게 만든 거리의 커플들. 손과 입술과 눈빛과 미소가 대한민국과는 사뭇 달라 갈 곳을 잃고 헤맸던 나의 동공.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두 손 꼭 잡은 우리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렇게 캠핑카에서의 뜨거운 첫날밤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