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저는 양극성 장애인가요?"
"네. 지금은 여러 종류의 삽화가 혼재된 상황이라 힘들 겁니다.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은 기분 안정과 일상 루틴을 찾는 거에 집중하죠."
아이를 보내고 한 달쯤 된 시점.
이젠엔 잔잔한 호수 같았던 자살 충동이
드넓은 바다를 뒤집듯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밀려왔을 때.
나는 심리 상담과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약물을 적용한 지 2개월 만에,
내 정확한 신경정신과적 병명이 내려졌다.
초반에 복용했던 약물이 양극성 장애 1형 치료제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감정 기복이 심한 상태로 보냈고.
주변에서도 '일희일비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30대 중후반에 접어들고
인간 불신이라 부를 만큼 인간관계에 지쳐갔을 무렵,
요동치던 감정 기복은 점자 잔잔해졌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흥미를 갖지 못하자
세상을 탐구하고 인간을 연구해야 하는 방송작가의 삶이 버거웠다.
보여주기식 어거지 이야기를 손 끝에서 뿜어내는 것에 회의감이 생겼다.
항상 내 의지와 의욕과는 반대되는 상황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에도 지쳐갔다.
그래서 더더욱 곁을 지켜주던 리엘이에게 매달렸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의 냄새, 아이의 온기, 아이의 움직임만이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고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내가 유별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수많은 자기 개발서들에서 말하는
"나를 사랑하세요." "나를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같은 이야기에도 코웃음이 쳐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내가 꽤 오랜 시간 병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걸.......
나는 아이를 보낸 후, 삶이 무너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양극성 장애 2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 그래서 내가 <널 보낼 용기>를 보며 아이의 입장에 깊게 공감이 됐구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리엘이에게, 또 송지영 작가님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만나 나는 성장했고, 또 새로운 직업을 시작할 정도로 발전했다.
마음 아프지만 아이가 떠난 후, 나는 나에 대해 직면할 수 있었고 내 오랜 병을 알게 됐다.
<널 보낼 용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나에게 '정신병자'라는 깊은 낙인을 찍었으리라.
반복되는 우울감과 무기력.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판을 크게 벌리다가도
다시 또 무의미함에 짓눌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의욕적으로 약을 먹다가도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단약을 하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이 모든 것들이 지속되고 반복될 것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왜 살아가야 하는가.
왜 마음을 고쳐야 하는가.
그냥 살다 가면 안 되나?
산 목숨, 스스로 끊을 용기는 없으니 누군가 끊어주면 좋겠다.
아이를 보낸 지 고작 6개월인데 이렇게 편해져도 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날이 많으면.......
리엘이가 날 너무 오래 기다리다 잊진 않을까?
두서없이 손 끝에서 쏟아지는 이 글 또한
이곳을 누군가가 불편해지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많은 감정이 스쳐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