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엘이 없는 175일째 밤.

2025년 12월 26일

by 리엘맘

"개가 무슨 네 자식이야! 그딴 소리 하지 마."



엄마는 내가 리엘이를 '딸'이라 지칭하는 걸 많이 싫어하셨다.

아이에게 몰두하는 것도 걱정하셨다.




"아픈 애 억지로 붙잡지 말고 그만 보내라."



리엘이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내게 안락사를 권하셨다.

무슨 의도로 한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했었다.

당시 나는 긴 시간 버텨왔던 방송작가라는 직업과 헤어지는 중이었기에

마땅한 수입 없이 마이너스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병원 문 열고 들어가면 100만 원 이상은 우습게 깨지는 것이 동물 항암.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약 없는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취지의 말씀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말이 참 야속하게 가슴에 박혔다.



"산 목숨을 그럼 죽여? 애가 살려고 하는데, 아직 살아있는데 그럼 그걸 죽이냐고!"



삶과 죽음에 대해 논할 때면 우리 모녀는 서로에게 칼날 같은 말을 겨눴다.

막상 그 기로에 놓여 사투를 벌이는 리엘이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정답 없는 싸움을, 우리는 계속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리엘이의 존재를 부정한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누구 덕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지, 엄만 모른다고 단정했다.


그랬는데.......






"리엘이 49제, 엄마가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 속에서 버둥거리느라 아이의 49제를 손 놓고 보냈던 게 마음에 걸려

엄마가 다니는 절에 아이 이름으로 등이라도 켜달라 말씀드렸던 며칠 전.


엄마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딸 대신, 강아지 손녀의 명복을 비셨다.



이래서 어떤 존재도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일까.


아이를 보낸 후, 나는 엄마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다.

내가 리엘이 때문에 슬프다는 사실을,

또 긴 시간 잘 외면했던 것이 처참하게 무너져 쓰러져버렸다는 사실을

엄마에게는 차마 내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계셨다.

내가 얼마나 긴 어둠 속에 홀로 서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당신께 숨기고자 했는지까지 말이다.



엄마는 리엘이의 존재를 부정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당신 딸이 그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지 않길 바라셨던 것이다.



아이를 만나 '엄마'가 되어

나는 내가 부모를 이해하고 그만큼 철이 들어 성장했다 생각했다.

아니, 자부했다.


이 또한 자만이었으리라.







나는 이렇게 늘 당신보다 한 발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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