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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May 09. 2022

가차없는 희망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들어가며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의 독서 에세이를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책을 훑던는 중 가장 눈에 밟히는 건 이상하게도 ‘들어가며’였다. 김소영 작가님은 어린이 독서교실의 선생님이다. 결과적으로 어린이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어린이에 대해 글을 쓰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말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나와있다.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해왔음에도 양육자가 아니고 교육 전문가가 아니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하게 될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 책이 듣자마자 낯설게 느껴졌던 건 책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어린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나 또한 양육자도 아니고 일상 그 어느 곳에서도 어린이를 만나는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드물다. 그래서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내가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님은 시인한다. 그런 말의 그늘에 피해 있었던 것이라고. ‘어린이 전문가’가 아니니까 빠져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어린이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직접 기르고 가르치는 분들의 몫으로만 떠넘긴 것이었다고 말이다.

 생각할수록 부정할 길이 없는 말이었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약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면 분명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좋은 사회일 것이다. 이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왜 어린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늘에 피해있었다는 말이 자꾸 맴돈다.

책을 읽다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도 있었다. 피해있던 그늘에서 나와 좋지 않은 기억 속 문제를 다뤄보려 한다.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글이 되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이해되길 바라며 용기를 내본다.





내 안의 은규


은규는 이 에세이의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라는 소제목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은규는 사회 여러 가지 이슈에 관심이 많고 질문도 많은 아이다. 어린이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에게 은규의 질문은 상당히 수준이 높게 느껴졌다. 체육대회는 왜 해야 하는지, 어디선가 시위를 할 때면 경찰이 말하는 추산 인원수와 시위한 사람들이 말한 인원수가 왜 다른지, 노동절에 왜 학교는 안 쉬는지(선생님들이 노동자인데)등의 질문을 한다.

특히 통일에 관한 질문을 할 때가 인상적이었는데, 왜 학교에서는 ‘통일의 좋은 점’만 가르쳐 주는지, 공교육을 하는 학교가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말을 했다. 그리고 혹여 통일이 된다면 그 미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시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통일은 지금의 어린이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고 보이는데 왜 어린이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옮겨 쓰면서도 느끼지만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지혜로운 김소영 선생님은 은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차분히 설명을 해주셨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선생님의 설명에도 납득되기는커녕 자꾸 은규의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됐다. 왜 장단점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왜 어린이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는 걸까?

책의 다른 부분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그것은 그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 구성원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말은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어린이들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의견을 나누는 대상에서 배제시킨다.  심지어 어린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룰 때조차도. 그 점에서는 은규의 말처럼 공교육도 예외는 없어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때 쓴 일기장 한 장이 떠올랐다. 당시의 나는 커서 뭐가 돼야 하는지가 너무나도 고민인 어린이었다. 물론 그때그때 멋있어보이는 직업은 다 되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었지만 그 모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당장의 선택이 미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희망 직업란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야 할 때마다 다가오는 막연함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날의 일기에는 내 고민을 담아 아버지께 여쭤봤다고 적혀있다. 커서 뭐가 되는 게 좋을지, 그런 건 어떻게 정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아버지는 “공부를 열심히 해두면 뭐가 되고 싶은지는 나중에 정해도 괜찮아.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돌아섰다. 일기의 마지막은 대답을 들었음에도 나는 뭐가 될지 너무나 궁금하다고 끝나있다.

내겐 김소영 선생님 같은 분이 없어서였을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 같은 내 질문은 그렇게 일기장 마지막에 남겨져 있었다.

같은 고민을 하던 어린이들에게도 비슷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 ‘일단 공부해라. 그러면 저절로 해결된다.’라고 말이다. 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들이 획일적인 공부만 하게 될 때의 단점은 아무도 말해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걸까? 왜 어린이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걸까? 왜….

자꾸 은규처럼 묻게 된다.





해결되지 못한 질문


고등학생 때 종종 가슴이 답답해서 참기 힘들 때가 많았다.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도 책상 앞에 앉을 때면 다시 답답해졌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9년이 더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쌓여있는 공부를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을 나만의 무언가를 찾고 발휘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학생에서 벗어날 용기는 더욱 없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실망을 견딜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현실은 너무도 부당하게 보였다. 어른들은 스무 살이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 같은 그 말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같은 경험을 10대에 하는 것과 20대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하나의 가치를 위해 10대에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포기하고 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 같아서 허무했다. 내가 선택한적 없는 가치와 다시 오지 못할 10대의 시간이 맞바꿔져 있음에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게는 당연한 이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부하기 싫은 핑계가 되었고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약한 아이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졌고,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능이 다가왔다. 이성적으로는 수능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벽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래를 가늠할 수도 없이 높은 절벽 위에서 자칫 잘못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이 불안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중에 갑자기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랬던 적이 처음이라 무서운 마음까지 들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을 벗어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뒤편에는 테니스장과 소나무들이 빼곡히 있는 작은 숲이 있었다. 그 숲 벤치에 누워 천천히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 말만 되뇌었다. 다행히 가슴을 옥죄던 답답함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찬 공기가 뺨에 닿는 게 느껴지고 소나무 사이로 까만 밤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찬 공기가 코를 지나 가슴까지 들어왔다. 그때 종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일어나서 건물안으로 걸어갔고 교실의 내 자리에 앉았다. 30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그 일은 아직 내 마음속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농담으로도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절대.





잊고 있던 마음


소제목 ‘착한 어린이’에 등장하는 하윤이를 보면 어린이들이 김소영 작가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잘 보인다. 하윤이와 친구는 심부름을 하다가 문득 돈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고 그때 하윤이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내일 독서교실 가거든. 우리 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어서 아마 알 거야. 그리고 만약에 몰라도 선생님이 책 보고 공부해서 가르쳐 줄 거야”라고 말이다. 하윤이의 그 대답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작은 질문에도 열심히 답해주고 모르는 문제는 솔직히 인정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가르쳐주는 그런 따뜻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 모습이 쌓여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은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내게도… 잠시였지만 어린이들을 매일 만나고 가르치던 순간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때였다. 마침 집 근처 학원에서 수학 선생님을 구하고 있었고, 나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다. 면접을 보고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학원의 사정상 초등학생들과의 수업이 불가피했다.

당시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건 4학년 반에 있는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었다. 그 세 명을 자리에 앉히는 것부터가 일처럼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웃긴 순간이 포착되면 흥분지수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리에서 일어서곤 했었다. 학원 교실에서 그들의 웃긴 순간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 어른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던 내가 어느 순간 폭발하며 큰소리를 내버린 순간도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큰소리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당황했다. 참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조용하고도 어색한 수업을 진행하던 시간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화를 내는 건 아이들과 관계만 망가뜨릴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걸 똑똑히 배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풀이 죽을 일 없는 아이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달라졌다. 고등학생 수업을 들어가는 길이었다. 한 교실에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한자리씩 띄워진 좌석에 내가 맡은 4학년 반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반쯤은 엎드린 자세로 왼손은 이마를 받친 채 오른손에 겨우 연필을 잡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수업 시간 나를 곤란하게 만들던 명랑함은 오간데 없이 종이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 후 알게 되었지만,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무서운 벌은 혼나거나 손바닥 맞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벌이었다.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또 다른 초등학생 반은 8명으로 구성된 6학년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4학년 아이들과 다르게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가능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수업 중 웃긴 순간을 참지 못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정에 맞춰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 숙제를 내주는 일이 꽤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숙제를 곧잘 해왔고, 유독 한 남자 아이만 해오지 않았다. 몇 번 반복이 되자 좀 타일러 보이기 위해 그 아이를 불렀다. 또래보다 작은 키에 장난기 가득한 눈을 가진 아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내가 몇 마디 하기도 전이라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운 감추며 왜 우는지 물었다. 아이는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닭똥 같은 뚝뚝 흘렸다. 학교를 마치면 태권도, 태권도가 끝나면 학원, 학원이 끝나면 또 영어 과외 등을 하느라 수학 숙제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이다. 영악한 아이의 거짓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예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우는 아이를 달랬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학원 수업을 임했던 적은 없었다. 나에겐 일하는 곳이었고, 아마추어인 나는 수학이란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기에도 벅찼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다 문득 당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즐거운 모습보다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말이다. 학원 교실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명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곳,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곳, 그리고 개개인의 사정보다 숙제라는 결과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하윤이처럼 궁금한 점이 없었을까? 다른 어떤 곳에서는 심부름을 가다 우연히 떠오른 질문을 작가님처럼 받아줬을까? 왠지 질문 하나를 마음 편하게 털어놓을 곳이 없었을 거라는 안좋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모습에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마음이 자꾸 겹쳐져 얽힌다.





가차없는 희망


대한민국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행복으로 가는 커다란 길이 하나 있다. 부모님, 선생님, 주변 어른들, 사회 거의 모두가 응원하는 단 하나의 길은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 그 압도적인 응원은 마치 다른 길로 접어들면 실패자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의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을 정해져 버린다고 말이다. 적응을 하고 응원을 받으며 나아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속에서 길을 잃는 아이들도 있다. 길을 잃는 이유는 그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그 아이가 속한 가족만의 문제일까?

‘한 명은 작아도 한 명’이라는 소제목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어린이를 거쳐왔고 어린이를 만나는 일을 잠시 하다가 지금은 아예 어린이와 관련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와 관련 없는 곳에는 어린이들은 늘 존재하고, 내가 힘들게 겪었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어린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내 삶에서 없어진 듯 보이는 이 문제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에 대한 기사를 봤었다.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었고, 초등학생들까지 기본 2~3개 이상의 학원을 다녔으며,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다는 이야기의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씁쓸한 기사 밑 댓글을 읽다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은 영화관에서 모두 서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는 말이었다. 다 함께 앉아서 볼 수 있는 영화관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앉아서 보고 싶은 개인이 자리에 앉으면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영화를 볼 수가 없고 불안해진다. 그래서 결국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는 그 비유가 내가 느낀 현실과 닮아 너무도 와닿는다.

지식만을 추구하는 교육 방식은 몇몇의 노력으로는 절대 바뀔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자녀를 너무도 사랑하는 부모와 현재 교육 방식에 묶여있는 교육자들이 바꾸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모두가 서 있는 영화관에서 혼자 앉아서 뒤떨어진다는 느낌의 공포는 개개인이 견디기 힘들다. 그렇기에 영화관 밖에 서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모두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다고, 그리고 다른 장르의 영화도 재미있다고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언가를 한다 해도 과연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이 커다란 문제가 바뀐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 절망의 말을 내뱉기 전에 어린이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생각하고 작은 것부터 해볼까 한다.

내가 ‘가차없는 희망’을 가지고 맨 먼저 하는 작은 일은 이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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