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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Jul 20. 2022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따뜻한 집

[리뷰] 라이온의 간식



예쁜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은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다. 라이온의 집 대표 '마돈나'가 주인공인 '시즈쿠'에게 보내는 글이다. 안부를 전하며 마돈나가 있는 라이온의 집까지 오는 방법에 대해 쓰여있는 편지의 문체는 너무나 따뜻해서 어딘지도 모르는 라이온의 집에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사한 풍경의 바다 위에 떠있는 이름조차 상큼한 '레몬 섬'에 라이온의 집이 있다.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시즈쿠는 암에 걸렸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집,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향하고 있는 라이온의 집은 호스피스이다.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즈쿠는 감정적인 정리가 다된 것 같이 보인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선한 공기를 음미하고 마시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나는 양로원과 호스피스를 혼동했는지도 모른다.
규칙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와서까지 '착한 아이'를 연기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라이온의 간식, 29p


호스피스에 대해 어렴풋한 개념만 있었던 나는 시즈쿠의 시선을 따라 라이온의 집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리고 양로원과 호스피스의 차이를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큰 병에 걸려 아픈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해 '착한 아이' 연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곁을 지켜주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의료 행위를 열심히 하는 간호사와 의사를 위해서 말이다. 호스피스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치료를 위해 먹지 못하던 음식, 하지 못하던 행동을 할 수 있는 곳...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 걸까?



눈앞의 팥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나무 수저로 떠서 한 입 먹으니 지금까지의 죽에 대한 개념이 뿌리째 바뀌었다.
"행복해라."
내게는 맛있음의 최상급 표현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먹으면 먹을수록 배 속이 따뜻해지고 마른 대지에 물이 스며들었다.

라이온의 간식, 51p


제목이 라이온의 간식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입맛을 다시게 하는 부분은 죽에 대한 묘사였다. 라이온의 집에서는 매일 아침 다른 죽이 나오는데, 신선한 음식으로 끓인 죽에 대한 묘사가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따스한 환경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들과 생겨나는 에피소드에 자꾸만 시즈쿠가 호스피스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삶이 멈추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 생겨난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듯이- 시즈쿠 또한 레몬 섬에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모모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아직 인생이 계속되고 있는데 죽음만 생각했다.
그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모가 가르쳐 주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살고 싶다, 더 더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거라고.

라이온의 간식, 176p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을 놓듯 책을 읽는 나를 깨우듯 시즈쿠의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진다. 이제 겨우 책의 삼분의 일정도 읽었을 뿐인데, 가끔은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 나빠진다. 그리고 함께 하던 게스트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죽음을 받아들였다.'라는 말로 폭풍처럼 몰려오는 감정을 시즈쿠는 몰아내지 못한다. 어느 날은 괜찮았다가 어떤 날은 더 살고 싶다고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사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조차 내게는 너무 생소하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맛보고 싶은 음식이,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아 감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다 마주한 위의 문장을 곱씹어 봤다. 살고 싶다는 마음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죽음을 경험하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그 순간이 어떠했는지, 그 뒤가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오는 순간이고 피할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단순히 지금의 내 삶을 아끼고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게 다가올 죽음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해보게 된 것 같다. 간결하고 따뜻한 문체 덕분에 조금은 덜 무섭게 그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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