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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Sep 17. 2022

'만약에'라는 악마의 속삭임

[리뷰] 클로버

가난한 삶 속에서 고분군투하는 중학생 '정인'이 악마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재미난 상상력이 펼쳐질 것 같은 소개 문구 중에서도 '흔들림 끝에서 용기를 주는 성장소설'이라는 문구가 가장 와닿았다. 중학교 2학년, 정말 중2병의 중심에 있을 소년의 모습에 왠지 내가 그 나이쯤의 모습도 함께 겹칠 것 같아서 기대하게 만들었다.



알록달록 하늘에 올려 찍어도 예쁜 표지의 책~

한가운데 눈길을 끄는 고양이가 악마인 듯 보였다. 악마라는 표현을 붙이기엔 귀여운 모습으로 보인다.


읽기 전에는 내 어린 시절을 많이 떠올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자꾸 떠올리 게 만들었다. 그랬던 이유는 주인공인 중2, 정인이가 어른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난한 생활에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는 정인이는 수학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 3회 햄버거집 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폐지를 주워 돈을 모으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정인의 생각에 놀라곤 했다.


사람들은 우릴 싫어해. 자기들도 우리처럼 될까 봐 무서운 건지. 근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야. 귀신이나 뭐 그런 거라면 그냥 상상이겠거니 하고 무시해 버리면 그만인데, 여기 진짜로 서 있으니까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화를 내. 눈에 띈다는 이유로.
그건 우리의 문제일까, 사람들의 문제일까, 아니면 세상의 문제일까?
클로버_나혜림, 20p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옆에서 괴롭히는 친구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 괴롭힘에 못 이겨 점심시간 학교 뒤편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넋두리에 하는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괴롭힘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처럼 될까 무서운 마음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를 무시할 수 없어서 화를 낸다는 그 말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문제인가? 아님 괴롭히는 사람들의 문제? 아님 세상의 문제인지..? 제 마음도 추스르기 힘들었던 내 청소년기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모습에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짙어졌다.


그리고 그 넋두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검은 고양이..! 바로 악마였다.


악마는 내 생각보다는 귀여웠다. 정말 표지처럼. 아니면 사냥감인 정인이 앞서 말한 것처럼 호락호락한 청소년은 아니어서 그랬는지- 고전을 하게 된다.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클로버_나혜림, 52p


라면을 먹고 있는 정인에게 악마는 '만약에'라는 한 마디면,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라면 당장에라도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라고 달려들 것 같은데, 라면을 이미 절반이나 먹은 정인은 아까워서 라면을 다 먹겠다고 한다. 어쩐지 힘겨워 보이는 싸움에 책을 읽는 가끔은 악마의 편이 되어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 정인에게 악마의 유혹은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도 맛보지 않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당장 눈앞의 끼니, 알바로 조금 더 돈을 벌고, 할머니가 폐지 줍는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그런 일들이 훨씬 중요했다. 현실감 없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감 있는 주인공의 성격이었다. 나도 주인공과 같은 가난은 겪어본 적이 없으니, 모두 그런 성품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계속 곁을 맴도는 악마의 말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된다. 속으로 '만약에'를 되뇌어 보며 상상해보게 된다. 그러다 결국 잠자리에서 할머니에게 말하게 된다.

"만약에 말이야-"라고 꺼낸 말에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거 인생 망치는 주문이야." 단박에 말하는 할머니


상상도 지나치면 병이다. 코끼리 뼈를 보고 짐승을 그리는 게 상상이라는 건데, 사람들 상상력이 지나쳐서 만들라는 코끼리는 안 만들고 애먼 귀신을 만들고 요괴도 만들고 그랬지. 그러다 자기가 만든 귀신에 쫓기고 요괴에 잡아먹히고 그러는 거야.
클로버_나혜림, 61p


상상에 관한 현명한 할머니의 말에 무릎을 탁 쳤다. '만약에'라는 말을 원했던 악마의 속셈이 보이는 듯했다. 가벼운 상상 같은 그 말은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문 같았다.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손에 없는 최상의 무언가 아님 타인이 가진 무언가를 끊임없이 쫓게 만드는 주문 같이 느껴졌다. 가정법으로 이야기하는 순간이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는 것이라니... 작가님의 발상에 놀랐다.


그럼에도 휴가를 나왔다고 말하는 악마는 여유로웠고, 정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정인의 삶을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고 참견하기도 한다. 불편하면서도 평상시에 겪을 수 없었던 경험에 정인의 마음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신은 명령 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우와, 악마는 민주적이구나."
그게 악의 무서운 점이란다, 꼬마야. 악마는 이번에도 말을 아꼈다.
클로버_나혜림, 111p


민주적인 악마. 끊임없이 선택지를 주고,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되뇌게 만든다. 과연 이 대결의 승자는?!




책에 인용된 문구들이 꽤나 있었다. 파우스트라던지, 성경의 내용이라던지, 악마와 천국이라는 배경 때문이라고 느끼기엔 문장들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도 많았고, 그로 인해 철학이나 좀 어려운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자극도 동시에 받았다.


뭣보다 그냥 가벼운 성장소설에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읽겠거니 했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악마의 존재가 내 마음에 있는 소리처럼 여겨졌다. 완전 동떨어진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말이나 생각이... 악마일 수 있는 것이다. 잠깐의 스치는 생각에도 악마가 깃들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가진 정인의 자세는, 중학생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2병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청소년을 낮춰보는 사회적 시각이 담겨있다. 분명히 그 나이에 깃들 수 있는 완성된 생각이 있음에도 무시하는 자세가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갖고 악마와 당당히 자신의 생각으로 마주하는 정인은, 그 자체로 온전해 보였다.


정인이처럼 온전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마음에 대해 고민을 하며 서평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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