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장 중
파충류와 포유류 사이에는 셀 수도 없이 다른 점이 많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차이는 뭘까?
도마뱀과 함께 한지 100일이 조금 넘은 나라면, 주저 없이 '탈피'라고 답할 것이다.
피부를 벗겨내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왜 그런 방식을 택했을까?
허물을 벗어내면서 성장한다니- 상상조차 어렵다.
레미도 탈피를 한다.
어린 개체일수록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더 자주 한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아무리 봐도 탈피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밥을 너무 게 먹어서 성장이 더딘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모두 무지한 포유류의 기우였다.
얇고 하얀 막이 머리 위에 남아 있었다.
발견 시각은 새벽 6시 13분.
아무래도 내향형 도마뱀은 모두가 잠든 밤마다 열심히 허물을 벗었나 보다.
레미는 탈피 껍질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더 목격하기 어려웠던 걸지도.
얼마 전에도 탈피를 했다.
이번에는 뭐가 급했는지, 흔적을 고스란히 달고 있었다.
바로 오른쪽 눈 위에 실 같은 하얀 막이 떡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레미의 귀여운 외모 중에 단연 귀여운 부분은 눈이다.
특히나 속눈썹처럼 하늘로 뻗은 돌기 아래 땡그란 눈알이 차밍 포인트인데...
껍질에 말려 속눈썹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물을 적신 면봉으로 살살 문질러 봤지만 소용없었다.
레미는 구석에 구석까지 도망치면서 면봉을 피했다.
딱 제대로 붙잡고 5초만 시간을 준다면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레미는 허락하지 않았다.
며칠동안 볼 때마다 젖은 면봉을 들이대며 시도했다.
언젠가부터는 근처에만 가도 부리나케 도망치는 녀석.
내향형인 주제에 고집은 세고... 놔두기로 했다. 놔둘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겼다. 대신 다음 탈피 때는 말끔한 얼굴로 보자, 응?"
그제 밥을 먹이려다 레미가 탈피 중인 걸 발견했다.
다행히도 오른쪽 눈 위에 있던 하얀 막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래, 탈피도 연습이 필요한 거겠지?
레미는 이제 4개월이 됐을 뿐이니까.
내 괜한 걱정 때문에 레미를 괴롭힌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레미는 성장 중이다.
포유류 상식에 갇힌 나도 탈피가 필요하다.
좀 더 여유롭게 성장을 바라볼 수 있기를,
더불어 나도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D+109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무게 측정 불가를 인증해 본다...ㅎ
작성자 : 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