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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Apr 20. 2023

버려도 좋을 편지

수전증으로 괴로워하는 싱어송라이터에게 보내는 위로

안녕하세요. 인연이 닿아 이렇게 편지를 쓰게 었네요.


편지를 어떻게 쓸지 한참을 고민했답니다. 어렸을 땐 타인의 고민을 듣고 곧잘 무슨 말이든 해줬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네요. 누군가의 사정이란 말로 전해지기엔 훨씬 깊고 복잡하다는 걸, 그래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 그런 것 같네요. 이해도 못 한 내가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무서워지더군요. 더불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재능도 없는 게 분명하거든요. 한 마디로 저는 위로를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편지를 읽다가 불쾌해지면,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심지어 싱어송라이터와 수전증에 관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니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찢어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현명한 당신이 벌써 이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시작해야만 하는 저를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읽기를 결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제부터 시작될 글은 어쩌면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탈출,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나는 항상'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특히 고등학생 때 그 갈증은 절정에 달했었죠.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정해야만 하는 그 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선택으로 다른 가능성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까 봐, 그러다 아주 망해버린 인생을 살까 봐 두려웠습니다. 매일 스스로를 괴롭히며 그때의 나는 하고 싶은 한 가지 단어를 찾아냈습니다. 반문에 반문을 거쳐 아주 힘겹게 그 단어를 택했고, 여전히 그 단어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는다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가 그 당시에 선택한 단어는 충격적이었어요. 무려 6년을 곁에서 지켜봤는데, 내가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는 단어였죠. 그 때문에 아주 먼 곳으로 떠나 공부했고, 그와 관련된 일을 몇 년간 했습니다. 몸이 고된 일이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타지역에서 향수에 젖은 친구가 많이 힘들어했었죠. 당시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잦은 야근에 지친 일상. 그런데도 손에 잡히는 보상은 터무니없이 작게만 보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짬을 내어 만났고, 서로의 불평을 털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서로 만나 잠시 쉬어가던 어느 날 밤, 함께 길을 걷고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친구의 상사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고요. 친구는 답을 내놓지 못했고, 상사는 갑자기 친구도 알고 있는 이 일의 단점을 주르륵 늘어놓았습니다. 워라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 체력 소모가 심함, 박봉 등. 수많은 단점 뒤이어 붙였다는 장점 한 가지.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처음 그 말을 듣고는 정말 배꼽이 빠지게 웃었습니다. 너무 초라하게 보여서요. 결국 내게 적용될 수 있는 것도 그것뿐이지 않겠냐는 생각에 우리는 자조적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현재의 나는 당시 선택한 단어를 조금씩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전혀 다른 단어에 이미 도전하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둘의 선택은 망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은 아마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을까?'라고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믿고 있는 건 당시의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도 하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행해봤던 그 경험이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수많은 가치 중에 하고 싶은 마음이 결코 작은 게 아니라는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 수도 없는 어려움을 겪으며 하고 싶은 마음을 지키려는 그대.

결과를 떠나서 두려움에 맞서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 나는 믿습니다.


온 마음 다해 그대를 응원합니다.

버려도 좋을 편지를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덧: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으로 인한 수전증으로 괴로워하는 싱어송라이터에게 글을 보내주세요.'라는 미션을 받고 상상해서 쓴 글이었어요. 무엇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워서 한참을 고민하며 썼는데, 결국 내 이야기가 가득한 편지가 탄생하고 말핬네요. 위로... 는 어렵지만, 그래도 저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하고 싶은 마음'을 응원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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