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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May 22. 2023

괜찮다, 괜찮다.

너와 내게 건내는 말

종종 함께 백수인 친구와 만난다. 하얀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평일 낮, 직장인은 꿈도 꾸지 못할 시간에 거리를 거닌다. 그럴 때면 회사에 얽매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앉을 자리 없이 복잡한 지하철, 한산할 것 같던 번화가도 의외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카페의 좋은 자리엔 대부분 주인이 있다. 모두가 나처럼 정해진 일터를 꽉꽉 채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다르다. 괜스레 나라에 백수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해본다. 그래도 주말과 다르게 시간만 잘 맞추면, 웨이팅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아 서로의 일을 한다. 나는 에세이나 소설을 쓰고, 친구도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구상한다. 우연히 백수가 된 우리는 우연히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혼자인 것처럼 노트에 꼬물거리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슬쩍 곁눈질로 친구를 바라보곤 한다. 고개를 숙여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모습에 나도 다시 집중해 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떠오르지 않는 상상을 같이 나누기도 하고, 친구를 위해 손동작을 취해보기도 한다. 오가는 말속에 잡담이 섞이지 않을 리가 없다. 특히나 하루가 비슷한 모양인 친구를 보면 자꾸 이런저런 속마음도 터놓게 된다. 삼십 대에 직업 없이 살아간다는 것도, 당장에 알아줄 리 없는 무언가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도 닮았다. 한껏 희망을 이야기하다가도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불안에 대해 눈치챌 수밖에 없다. 잔잔한 일상에서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에 대해 나누며 공감했다.


친구에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지금의 작업이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고, 몇몇 회사에 지원할 예정이다.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그곳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꽤 상세히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내겐 그런 목표가 없다. 소설을 쓰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에 대해 정하지 않았다. 한 가지 정해진 것이 있다면,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을 거란 것. 직장을 구하기 전에 소설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러프한 초고를 완성해 두고, 일을 하면서 틈틈이 새로 써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하지만 완성한 글을 어떻게 할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몇 년 뒤, 몇 개월 뒤, 무언가가 끝난 뒤, 회사를 그만둔 뒤와 같은 바를 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의 일을 결정하는 것에 급급했다.


학창 시절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로 고민이 많았다. 중학교 2학년부터 해보고 싶은 직종이 있었지만, 대학을 선택하는 그 순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순간의 결정에 내게 남은 가능성이 몽땅 사라져 버릴까 봐, 그저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택한 대학에서 무엇도 찾지 못하고 시간만 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남들의 조언처럼 몇 년 뒤, 몇십 년 뒤를 생각해 봤지만, 오히려 어떤 것도 택할 수 없었다. 훗날을 떠올려 볼수록 책임만이 무겁게 불어났다. 선택으로 후회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고, 미래라는 말 앞에서 작아졌다. 몇 년에 걸쳐 이어진 고민은 우습게도 몇 년에 걸쳐 고민해 왔기에 끝이 났다. 이토록 오랜 기간 해볼까 말까를 정하지 못했던 일을 해보지 않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에 닿았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알게 되었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점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후 나는 전공을 살려 취직했고,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어떤 곳은 두 달 만에 그만두기도 했고, 4년 넘게 일을 하고 쉬다가 다시 돌아간 적도 있었다. 한 회사에서 3년은 견뎌야 한다는 말은 내게 맞지 않았고, 굳이 지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대부분 계획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질 정도로 제멋대로 흘러갔다. 내 마음조차 그랬다. 고심 끝에 원하는 직업을 얻었지만, 현재는 그 직업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희망하고 있다. 예측불허의 상황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선택 하나하나에 머나먼 미래를 그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그러니 솔직하게 현재의 마음을 따르는 게 훨씬 명확하다.


난생처음 기나긴 시간을 백수로 보내고 있다. 운이 좋다고 말하고 있지만,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만다. 차라리 형편없는 회사에서 일을 할 때가 활기찼던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다. 가만히 듣다가 한 마디씩 붙여본다.  네가 계획하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지금은 의미 없어 보이는 그림이 중요한 걸음이라고 말해본다. 실은 알고 있다. 변치 않는 것이 없는 이 세상에 순간의 의미를 알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네게 말하는 척 내게 말한다. 괜찮다고. 뾰족한 계획도 없이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도,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마음만 따라가며 살아봐도 뭐 어떠냐고 말해본다. 어차피 제멋대로인 세상, 나도 좀 제멋대로 산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테니까. 불안에 떠는 너와 나를 붙잡고 되새겨 본다.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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