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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Sep 14. 2023

죽기 살기로 해봐

노력의 이면

하루 대부분을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잠시 쉴 때는 책이 아닌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가장 손쉽게 뻗는 건 아무래도 휴대전화 속 유튜브 앱.


주로 가벼운 가십거리를 본다.


미연시에 빠졌다는 사람의 사연도 그렇게 가볍게 보게 된 것이었다.


예능 물어보살에 나온 서른 살의 여자는 2D 남자에게 빠져있다고 했다.

특히 미연시(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게임 속에서 현질을 할 정도라고 했다.

왕년에 나도 미연시에 돈을 좀 써본 터라 웃으면서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내 미간에 주름이 잡히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MC들은 그녀의 감정을 1도 이해하지 못했다. 공감을 하지 못하니 그곳에 빠지게 된 이유에 집중해 묻게 된다. 그들의 진단은 빤했다.

현실도피.

모델로 활동하던 그녀가 일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에 시작했던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는 것.


서장훈은 묻는다.

"얘들이 밥을 먹여주니? 월세를 내주니?"

"밥 먹을 힘을 줘요!"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그럼 얘들하고 살아."라는 말을 뱉더라.

그리고 한참 동안 쓰디쓴 훈계가 이어졌다.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는 사람이 되었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노력하지 않고 흘리는 네 눈물에 위로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어찌어찌 분위기는 다시 훈훈하게 흘러가고, 마무리로 말한다.

"죽기 살기로 해봐."


다행히도 고민의 주인은 웃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찝찝한 마음을 가진 게 나뿐이었다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노력을 강요하는 조언은 너무도 쉽다.

어떤 고민을 가진 누구에게 한다 해도 대부분 먹혀들 수 있다.


"죽을 만큼 노력해 봤어?"

라는 질문에 자신있 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죽음을 각오하고 무언가에 매달려야 하는 걸까?


사는 데 필요한 돈이나 밥을 주진 않지만,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를 주는 가치는 쓸모없는 것일까?

일없이 타국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게임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지 제대로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제대로 된 조언을 건넬 수 있을까?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미연시에 빠진 적이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따뜻한 주인공의 말에 위로받기도 했다. (눈물까지 글썽인 적이 있다고 말하면- 좀 볼썽사나우려나.)

시, 소설, 영화, 음악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닐까?

살아갈 돈을 주진 않지만... 그녀의 말대로 밥 먹을 힘을 주는 것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쓸모없지 않다.



노력.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날카로운 날을 품고 있다.

결과와 함께 묶여 해석하기 쉽고, 비교해서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노력을 말하는 순간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구구절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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