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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Dec 22. 2023

뭐 어때

객관화는 합리화로.

오랜만에 펜을 잡고 글자를 쓴다.

시간은 폭풍같이 흘러 벌써 북페어가 끝난 지 2주가 되어가고 있다. 제대로 된 후기를 쓰지 못한 탓일까? 지나치게 단조로워진 일상에 지난 일이 꿈처럼 느껴진다. 새벽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작은 방에는 싸늘함만이 남아있다. 자유로워진 나는 그야말로 방탕하게 지낸다. 알람도 꺼버렸고, 야심 차게 하겠다고 등록한 수영을 당당히 빠지고 있다.


-수영하러 안 가?


라는 남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꼼지락거리며 손가락만 움직여 보고 있던 웹툰을 읽는다. 눈뜨자마자 도파민 샤워를 제대로 한다. 생활반경이 워낙 좁다 보니, 배도 고프지 않다. 가스비가 아까워 거실에 전기장판을 깔았더니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코끝을 시린 바람이 스쳐도 따뜻한 바닥에 엎드리면 생각을 멈추게 된다. 마치 뭔가 한이 맺힌 것처럼 바닥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봤다. 눈이 따갑도록 애니 ‘주술 회전’을 보다 뉴스를 보다 잠들고, 다시 눈을 떠 ‘텐트 밖은 유럽, 노르웨이 편’을 봤다. 가끔은 추위와 싸워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어른 김장하’를 봤다. ‘소설 만세’라는 에세이를 다시 읽고, ‘유미의 세포들’이란 드라마를 봤다. 그 밖에도 나는 솔로, 맛있는 녀석들, 셀 수도 없이 지나친 웹툰들까지.


무기력하고 방탕한 생활에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가슴 아파하는 나. 뭐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에 한심한 일들을 끄집어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그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하고 납득하게 된다. 객관화하려다 합리화를 해버린 꼴이랄까.


‘뭐 어때?’


그래. 뭐 어때!


한참을 뒹굴거렸지만, 이야기를 한가득 주워 담다 보니 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1년의 끝자락에 있지만, 아직 새해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오늘은 그 하고 싶은 몇 가지를 붙잡아, 무려 영하의 추위를 뚫고 도서관까지 온 나를 칭찬해 본다.


굿잡-


(근데… 밀양에서 캠핑도 했고, 기장 달음산 정상도 밟았다. 그 정도면 부지런했던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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