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History 25
금주부터는 서구 디자인사로 방향을 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루어 볼 사조는 아르데코입니다.
아르데코는 아르 데코라티프(art dé coratif:장식미술)의 약칭으로 ‘1925년 양식’이며 1910년대부터 1930년까지 이어졌던 피카소로 대표되는 큐비즘에서 영향을 받은 디자인 운동을 말합니다.
흐르는 듯한 곡선을 즐겨 썼던 아르 누보(art nouveau)와는 대조적이며 기본 형태의 반복, 동심원, 지그재그 등 기하학적인 것을 선호하는 취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습니다.
아르누보가 수공예적인 것에 의해 나타나는 연속적인 곡선의 선율을 강조하여 공업과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반면에 아르데코는 공업적 생산 방식을 미술과 결합해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하였습니다.
의자를 예로 들어보면 왼쪽이 아르데코 양식이며 우측이 아르누보 양식입니다.
아르데코 양식은 직선을 우아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아르누보 양식은 직선을 아예 배제합니다.
아르데코 양식의 색상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아르데코는 1890 ~ 1900년대까지 아르누보 시대의 엷은 색조를 지나 마티스로 대표되는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조로 변화합니다.
아르데코 디자인은 국가별, 작가별로 다양한 특성이 나타나지만 그 대표적인 배색은 검정, 회색, 녹색의 조합이며 여기에 갈색, 크림색, 주황의 조합도 일반적입니다.
금주는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포스터 디자이너인 아돌프 무롱 카상드르(Adolphe Mouron Cassandre)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상드르는 러시아에서 출생하였고 근대 상업 디자인에 크게 공헌한 바 있습니다.
참신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1920~30년대에 프랑스의 포스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수법은 입체파풍 또는 순수주의풍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오히려 포스터에서의 회화성을 배제하고, 포스터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카상드르의 포스터는 단지 구성적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위의 양주회사의 포스터에서처럼 기발한 착상으로 유명합니다.
1936∼38년에는 미국에서 활동하였으며, 귀국 후 포스터 작가의 길을 버리고 회화와 무대장치에 전념하였습니다.
카상드르의 부모는 우크라이나와 프랑스인이며 어릴 때 카상드르는 파리로 가서 수학했습니다.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 자극을 받고 그는 포스터를 만들어 1925년 국제장식미술 / 산업박람회 에서 수상을 하게 됩니다.
카상드르는 알리안스 그래픽(Alliance Graphique)이라는 간판을 걸고 1930년대 다양한 것을 주문받으며 활동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뷰보네 와인의 디자인들은 지금 세대까지도 영향을 끼칠 만큼 기념비적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카상드르가 포스터 디자인을 할 당시만 해도 포스터는 회화적인 입장을 고수 했었는데 그는 포스터 디자인에서 회화적 관점을 과감히 탈피해 기하학적인 유려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지 구성적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독자적인 형식미를 갖추게 됐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그는 타이포그래퍼로도 명성을 쌓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bifur, Peignot은 카상드르의 작품입니다. 위의 서체는 bifur입니다.
그러한 디자이너로써의 눈부신 활약도 잠시, 세계 2차 대전의 발발로 프랑스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카상드르는 말년에 군 복무를 마친 후 1940년 휴전하기까지 포스터 디자인부터 무대미술과 의상까지 여러 일을 전전합니다.
역시나 그의 작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3년에 제작한 아름다운 이브 생 로랑의 로고입니다.
이브 생 로랑의 로고야 말로 아르데코의 기하학적 측면과 우아한 유선형의 조화를 단적으로 잘나타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말년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그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 이윽고 1968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책상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든 서체를 거절하는 독일회사로부터 온 서신한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서신의 내용은 디자인이 너무 혁신적이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독일 회사로부터 퇴짜 맞은 디자인은 서체 디자인으로써 그 서체는 그가 죽은 후 카상드르체(Cassandre)로 명명되었습니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사용된 메토체(Metop)가 바로 카상드르의 서체를 변형한 것입니다.
언제나 혁신이라는 것은 다수의 동의를 기반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새로움을 향해 달려갔을 카상드르의 이면에 얼마만큼의 창작에 대한 외로움과 고통이 많았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고 클 것 같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이 반감된 시대. 지금 카상드르의 디자인을 다시금 꺼내 들어야 할 명분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나 창작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무모하리만큼 거친 자신감과 자기희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카상드르가 남긴 혁신적인 작품들을 보며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