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러스트와 스토리로 그림책을 출간해보자 (1편)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습니다.
그림책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꼭 그림을 잘 그려야만 그림책 작가가 되는 걸까요?
저는 2017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을 낸 그림책 작가입니다. 기획, 글, 그림 모두 포함한 창작 그림책을 말이죠.
제가 평소에 아이디어가 많거나 그림을 특출 나게 잘 그리냐고요? 아니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사람입니다. 다만, 끝까지 했을 뿐이죠.
그림책은 호흡이 긴 작업입니다.
달리 말해 빨리 성과를 볼 수 없는 장르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내 이야기는 언젠간 꼭 세상에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독립출판을 통해서라도 말이죠.
지금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을 토대로 그림책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아낌없이 소개하겠습니다.
이 글이 부디 신인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림책은 맨땅에 헤딩하기 어려운 장르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공유되지만 혼자서 시작하기엔 진입 장벽이 높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께 망설이지 마시고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길 추천해 드립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기관을 소개해드릴 테니 각자 필요에 맞춰 수강하시길 바랍니다.
1) 아카데미 과정
교육과정이 꽤 깁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수강하는 커리큘럼으로 되어있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① 꼭두 일러스트
② SI그림책 학교
③ 한겨레 그림책 아카데미
④ 상상마당 그림책 워크숍(단기로 되어있으나 연계 과정으로 길게 수강 가능)
2) 출판사 연계 과정
출판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교육을 마치고 선정된 우수 창작물은 해당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① 보림: 그림책부트캠프
② 북극곰: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
이 외에도 도서관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워크숍과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르니 내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상세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경험자 Tip
① 강사 한 명보다는 여러 명의 강사가 있는 곳을 고르세요.
강사가 한 명이면 자신도 모르게 강사 스타일에 휩쓸릴 수 있답니다.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세요.
② 강사 중 기획과 전체적인 스토리를 봐줄 수 있는 편집자가 있는지 보세요.
보통 <그림책=그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 스킬 올리기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림책은 어떤 그림을 보여주느냐가 아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가 관건입니다. 기획과 구성을 탄탄하게 잡아줄 편집자(기획자)가 있는 곳으로 가세요.
③ 나는 다른 것보다 출간하는 게 중요하다! 하시는 분들은 출판사 연계 과정을 들으세요.
다른 아카데미보다 출간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단, 해당 출판사가 요구하는 스타일에 맞춰야 하는 제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사정상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른 선택지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도서)
⦁보통의 그림책 작가로 살아가기
⦁그림책 만들기 매뉴얼 A to Z
⦁일주일 그림책 수업
브런치)
⦁Let’s Go! 그림책 작가
(https://brunch.co.kr/brunchbook/books-illust)
그림책을 만드는 큰 틀을 최초 기획부터 내 그림책을 서점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출간까지 알려 드릴게요.
좋은 기획은 곧 좋은 그림책을 만듭니다.
너무나 중요하고 꼭 필요한 단계이지만 텍스트로 설명하기엔 모호한 글들만 떠오릅니다.
누구나 다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는 제 경험을 토대로 각각의 책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① 다돼지
<다돼지>는 ‘다 되지’라는 말장난 속에서 태어난 그림책입니다.
긍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당시 저는 아이디어 고갈과 조악한 그림 실력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를 시기한 실리에리처럼 빛나는 재능을 가진 동료를 그저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때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종이 한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이던 기억이 납니다.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되겠지? 잘 되어야 할 텐데… 다 될 거야, 암. 바라는 건 다 되지. 다 되지! 다돼지!
다 잘 될 거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스스로를 위로한 끝에 다돼지가 탄생하였습니다.
저는 저에게도, 아이들에게 뭐든 다 된다고 말해주는 히어로가 나타나길 바랐습니다.
누군가 “안돼!”라고 했을 때, 내 손을 잡고 “네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어!”라고 해주는 다돼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책 다돼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위로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 어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다돼지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다돼지와 함께하면 뭐든 다 되지!’라는 슬로건을 만드니 그다음부터는 쉬웠습니다. 그냥 다 되는 세상으로 독자를 안내하면 되니까요.
② 일어나기 싫어
<일어나기 싫어>야 말로 정말 평범한 일상 속에서 탄생한 그림책입니다.
일어나기는 너무 싫은데 등교나 출근을 하긴 해야 하니까 나도 모르게 꿈속에서 준비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꿈속에서는 이미 다 씻고 옷도 입었는데 깨보니 그냥 지각인 거죠.
저는 잠을 너무 좋아하고 천성이 게을러 누울 기회만 있으면 벌러덩 눕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죠.
그날도 여전히 머리를 다 감고 가방도 잘 챙긴 거 같은데 깨어보니 아직 이불 속이었습니다.
불현듯 이걸 스토리로 엮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림책의 세상에선 안 되는 게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돼지>와 마찬가지로 일어나기 싫어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꿈속에서 평소보다 훨씬 일이 더 잘 풀리는 걸
느끼며 최고의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이것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그다음은 쉬웠습니다.
아이가 평소에 어려워하거나 쑥스러워하던 일을 너끈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③ 똑똑똑
<똑똑똑>은 캐릭터부터 만들어진 케이스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오일파스텔로 의미 없는
낙서를 하다가 소녀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 소녀가 묘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소녀를 어떻게 세상 밖으로 꺼낼지 고민하다 일단 소녀의 친구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쓱쓱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그리다 보니 모양과 얼굴이 제각각인 캐릭터가 여럿 만들어졌습니다.
그림을 모아보니 제법 판타스틱합니다. 판타지, 하면 모험이죠.
이들이 모험을 하면 어떨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험을 할까?
앞선 책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나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것에 초점을 뒀습니다.
저도 그림책을 만들면서 성장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과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마침 저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읽고 있었는데 극 중에서 스핑크스가(그리스 신화에서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괴물) 해리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해리는 스핑크스가 낸 힌트를 생각하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지요.
저는 이 부분을 제 스토리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무언가를 찾는다는 가정 하에 스무고개 하듯 하나씩 힌트를 더해주자.
퍼즐을 맞추듯 단서를 좇아 아이들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자.
이렇게 풀어나가다 보니 어느덧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어떠세요? 제 경험을 듣다 보니 생각보다 일상적인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냈죠?
영감은 갑자기 벼락처럼 오는 것도 아니고 신의 계시를 받아 반짝하고 떠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늘 그렇듯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어떤 한 가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이야기가 확장되는 씨앗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하게 느끼는 경험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머리는 쥐어뜯으시는 분이 있다면 너무 새로운 이야기보다는 평범하고 보편적이라고 느껴지는 자신의 일상, 과거 경험을 들여다보시는 게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 소재와 주제를 탐구해 나만의 것에 접목시키기도 하고요.
노인과 바다, 데미안 등 저작권이 소멸된 고전을 리메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부터 내 머릿속 작가 모드를 on으로 켜고 예민하게 주변을 관찰하세요.
*경험자 Tip
그림책은 0~100세까지 볼 수 있는 책이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유희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타깃을
설정한다면 더 친절한 그림책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첫 책인 <다돼지>를 구상할 때 너무 제 위주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다 보니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인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미국의 대표적인 로큰롤 가수)가 등장한다든지, 옛날 오락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가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해당 장면들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현세대에 맞춰 수정되었습니다.
그림책의 기본 기준은 16장입니다. 스토리 구조를 짜는 방법은 각기 다르겠지만 흔히 알다시피 '기-승-전-결' 혹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잘 분배해서 16장을 꾸민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예요.
예시로 발단 3장, 전개 2장, 위기 4장, 절정 5장, 결말 2장, 총 16장 이런 식으로 말이죠.
물론 이야기에 따라 16장이 넘어갈 수도, 16장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극의 흐름이니 이야기에 맞게 페이지 수를 구성하시면 됩니다. 다른 책을 참고하여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분석해보시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흐름이 어느 정도 짜이면 그때부터 스토리보드를 만들게 됩니다. 스토리보드는 섬네일 스케치를 통해서 만들게 되는데 섬네일 스케치란 말 그대로 엄지손톱 만한 스케치라는 뜻입니다. 작고 심플하게 스케치해서 흐름에 맞게 늘어놓으면 그것이 바로 스토리보드입니다. 여기서는 극의 흐름에 맞게 장면이 잘 연출되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인물이나 배경, 텍스트는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고 자리만 잡아주면 됩니다. 또한 스토리보드를 만들면서 어떤 판형이 어울릴지 염두에 둡니다. 판형은 그림책의 비례와 사이즈를 말하는 것이며 사이즈를 말할 때는 책이 덮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내지 1p 사이즈를 지칭하는 겁니다.
스케치는 실물 크기로 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구상한 판형에 맞춰 작업하라는 거죠. 섬네일 스케치에서는 구도와 구성에 집중했다면 스케치에서는 디테일한 표현과 캐릭터의 다양한 표정, 동작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기획상 그림이 자유롭고 어긋나는 스타일이라면 스케치는 생략해도 좋습니다. 실제로 흰 종이에 바로 채색 들어가는 작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다돼지>와 <일어나기 싫어>는 스케치 작업이 있었고 <똑똑똑>은 바로 채색 들어갔습니다.
또한 텍스트 자리도 이때 제대로 잡아주시는 게 좋습니다.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이미 어느 정도 구상한 내용이 있을 텐데 이를 좀 더 구체화하여 그림과 같이 세부 내용을 적어줍니다. 텍스트 수정은 그림에 비해 자유도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조금씩 수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합니다. 글과 그림의 역할을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말이죠. 이때 그림과 글은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그림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글로, 글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채색 방법(건식, 습식, 디지털 등)을 선택합니다. 잘 알려진 수채, 아크릴뿐만 아니라 모형으로 만들어도 되고 콜라주 작업해도 되고 수작업과 디지털 작업을 병행해도 됩니다. 전통적인 방법과 실험적인 방법 모두 괜찮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몇 번이고 그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미술의 기초를 다질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집중해 보세요. 예를 들어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에 수채화가 가장 잘 어울린다면 물 쓰는 방법, 수채물감 농도 조절, 붓 터치 등 관련 내용만 배우시면 됩니다. 한 장면을 완성할 때까지 오기를 가지고 그려보세요. 완성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과정들이 지지부진하게 느껴져 더 이상 그림이 그리기 싫어진다면 계획을 똑똑하게 수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드로잉이 자신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드로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책을 기획하거나 자유로운 선과 혼합 재료로 차라리 개성 있게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너무 많이 배우면 오히려 그것이 족쇄가 되어 내 그림의 개성을 해칠 수도 있답니다. 투시도 깨보고 명암도 깨 보세요. 인체 비율도 제각각 잡아보세요. 맞고 틀리고는 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하면 그게 바로 잘 그린 그림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내 그림을 맞추지 마세요.
채색된 원화를 스캔합니다. 스캔한 이미지에 텍스트를 얹힙니다. 이미 이것으로 투고용 원고는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공모전이나 출판사에서 실물 더미를 받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 가제본을 만듭니다. 텍스트까지 얹혀 완성된 파일을 프린트하여 판형에 맞게 오립니다. 이때 집에 있는 프린트 기가 A4 사이즈라고 작게 출력해서 자르는 경우가 있는데 되도록 실물 크기로 프린트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실물 크기로 된 책을 넘기다 보면 구도나 크기, 흐름에 대한 감이 확실히 잡힙니다. 이는 나중에 출간할 책을 수정할 때 도움이 됩니다. 집이나 문방구에서 프린트한 경우라면 판형에 맞게 잘라서 각 페이지를 풀로 붙여 연결시켜야 합니다. 일반적인 책과 같이 넘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가제본 완성도에 좀 더 욕심나는 분들은 표지를 하드커버로 만들어 붙여주게 되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하면 작업이 너무 복잡해집니다. 가장 쉽고 완성도 있게 더미북을 만드는 방법은 소량 인쇄소에 의뢰해서 제본된 책을 받아보는 것입니다. 요즘은 단 1권이라도 깔끔하게 제본해서 보내주는 곳이 많으니 그 방법을 이용해 보세요. 내지 종이와 표지 종이도 고를 수 있고 내 손으로 만들었을 때의 허접한 느낌이 사라집니다. 가격도 내가 만들 때와 비슷하니(종이구입+보드구입+인쇄비용 등)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인쇄소에 맡기세요.
*성원애드피아 : www.swadpia.co.kr
2편에 이어서 준비된 원고와 그림책 더미 가제본으로 공모전과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 및 이후 계약과 편집, 출간에 이어지는 내용과 주의해야 할점 등을 알려 드릴께요.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 이경은
2편 이어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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