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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표는 최대리 Jan 31. 2018

옮긴다는 것의 의미

'이직'과 '버팀'의 갈림길에서

요즘 내 또래 일부가 '존버', '떡상 가즈아!' 등의 은어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러낸 용어라고 하지만 주식판에서는 10년 전부터 쭉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존버', 존나게 버틴다는 말. 이 말이 유쾌하다. '존나 버릴 수도 없고'라고도 쓰인다 버티면 주식, 혹은 코인 값이 올라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긴, 최근 유행하는 블루홀의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도 처음부터 싸우는 것보다 파밍(Farming)을 통해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이니. '존버가 승리한다'는 말이 어찌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지, 맞는 말이라고도 안했습니다 ^^


크게 봤을 때 우리 직장 생활도 다른 건 없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남아 부장, 이사 등으로 승승장구한다던지, 적당히 과장, 차장에서 '존버'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과거에는 '존버'를 하는 게 진정한 승리자라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가 급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주요 회사는 급성장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은 사원의 성장과 동일시되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지는 연봉만큼이나 더더욱 상승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얻는 안정감도 그들이 한 회사에서 '존버'를 할 수 있게 하는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 때 최고의 연봉과 복지를 자랑했던 기업들이 이를 매년 유지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한 때 '하락닉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졌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3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고연봉 직장으로 1,2위를 다투었던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4조 원대로 추락하며 영업이익률이 5년 전의 반 토막 수준인 4.7%에 그쳐 성과급 잔치 행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그래도 아직 현차는 많이 준다). 물론 작년 매출 239조·영업이익 53조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여전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사하고 싶은 최고의 기업 목록 최상위권에 남아있지만 이 역시도 끊임없이 변해서 만들어낸 성과일 것이다. 무조건 한 회사에 오래 다닌다고 해서 내 커리어와 경제력을 평생 책임져주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입사 후 동기들과 함께 회사생활을 상상했던 모습


그리고 곧바로 마주하는 현실..


언론사라고 다를 것은 없다. 조선일보가 언제 적 조선일보인가. 한 때 동종업계뿐만 아니라, 타 업종의 톱클래스 기업들과 비교해서도 국내 최고의 연봉과 복지를 자랑했던 신문사 '조선일보'. 조선일보도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조선일보에만 알려주는 건데..' 식의 정보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디지털 시장에서 신문사 편집국의 정보력과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이는 곧바로 판매와 광고 매출로 직결된다. 신문 판매 지국을 담당하는 지국장들에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장님'으로 대우받았던 영업·관리 담당들은 신문 부수 감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신문지국의 인력 결손을 막기 위해 이제는 나이 드신 지국장들에게 나가지 말아달라며 지속적인 술자리를 통해 읍소한다. "우리 땐 말이야, 신문 광고하려고 회사 앞에서 광고주들이 줄을 섰었다"라는 선배의 말을 곱씹으며, 효과는 거의 없지만 여러 요인에 의해 강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신문 광고를 부탁하러 광고주에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광고 담당은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해 이 곳 저 곳 쥐어짤 수 있는 데까지 쥐어짜 영업이익 수치를 메꾼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위태위태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종이신문의 몰락은 불현듯 찾아왔다.
 불과 몇 년만에 상황은 이렇게 혹독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옮긴다잖아 이 새끼야..'


임직원의 80% 이상이 SKY 대학 출신, 500여 명도 채 되지 않는 초엘리트 집단이었던 이곳에서도 엑소더스는 진행 중이다. 5년 차 이하 주니어 급의 이탈이 높아진 것은 비단 우리 회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18년 새해 첫 달, 유독 친했던 후배들의 이직과 퇴사 소식이 잦았다. 남은 사람들도, 떠난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선후배들과 함께 성장하며 내가 가진 모든 역량과 열정을 이곳에서 쏟아낼 수 있기를. 하지만 그들은 결국 어딘가로 떠났다. 그들에게 이 곳을 더 이상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동'이 답이냐, 아니면 '존버'가 답이냐는 물음에 현재로써 아직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경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먼저 떠난 이들이 그들의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곳으로 무사히 안착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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