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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표는 최대리 Feb 21. 2018

성골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직장에서도 계급이 있다?

"이따위로 일할 거면 디지털 쪽으로 가!"


 2015년 어느 여름날, 3층 편집국에서 울려 퍼진 한 마디. 당시 편집국장의 일갈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정확히 들었다. 하지만 이내 소란은 잦아들었고 다들 각자 업무로 돌아갔다. 당시 본부장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들었더라도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디지털 퍼스트'라고 수도 없이 외쳤던 대형 언론사에서조차도 당시 디지털 직군에 대한 인식은 그 정도였다.


아조씨.. 기자 관두시고 당으로 가셔서 이젠 말 함부러 못하시죠?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 담당으로 일하는 것의 현실에 대한 아웃스탠딩의 분석글이 재밌다('ㅇㅇ일보' 디지털 팀에서 일하지 마세요). 이 기사가 언급한 것처럼, 실제 레거시 미디어에서 디지털 관련 직무에서 일하는 기자, 사원, 개발자 등은 상대적으로 언론사 본연의 업무, 그러니까 '글을 쓰고 취재를 하는 것'과 비교당하며 평가절하 당하곤 한다. 더 나아가 일부 펜 기자는 방송 기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보이지 않는 자부심까지 있다. 이것뿐이랴. 편집국장이 되려면 '공채 기자' 중, '서울대' 출신만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아닌 실화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모든 회사, 크게 보면 모든 집단과 개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남자와 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본사 직원과 하청업체의 직원, 인턴과 아르바이트, 강사 등 한 회사에도 너무나 많은 구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글에선 이 같은 경계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대체 우리의 '출신' 성분이 한 조직과 내 일생에 언제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나


응, 안 바뀌어~ 화내도 소용없어 ^^


우리가 스무 살에 들어간 대학과, 수없이 쓴 기업들 중 첫 입사한 회사와 부서.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커리어가 내 일생을 줄기차게 쫓아온다. "그 사람은 ㅇㅇ출신이라며?", "왜 그쪽 사람이 여기 왔대?" 등의 뒷말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심지어 "그쪽 대학 모임 또 했다며? 자주 모이네"라는 대학 간 보이지 않는 기싸움도 여전히 존재한다. '입사할 때 블라인드 전형을 통해 학벌은 안 보는 추세거든욧? 빼애애액!' 그 말도 물론 맞다. 하지만 입사 후의 '대학 간판'은 보이지 않게 자신을 타자로부터 규정짓는, 여전히 주요 지표 중에 하나로 자리한다. 

 

물론 첫 직장은 이 사람이 어느 조직에서, 어떤 직군으로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는지,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이나 성향을 일부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써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가.
20살, 30살에 정해진 라벨이 평생의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이 비정상적인 문화는 언제쯤 사라질까?

언론사도 다르지 않다. 언론사의 꽃은 단연 기자와 PD이다. 하지만 언론사는 기자나 PD만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언론사도 회사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사들도 매번 공채를 통해 기자나 PD 이외 회계, 광고, 판매, 경영기획, 문화사업 등 실제 회사로써 비즈니스를 꾸려가는 인력을 채용한다. 하지만 기자 출신이 아닌, 경영직이나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들의 95% 이상은 임원으로 승진하기 힘들다. 이 룰은 서울대도, 하버드도 무용지물이다. 타 사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도를 담당하는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이나, 편집국장은 기자출신이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광고나 판매국장은 어떠한가? 기타 사업단이나 실장들까지 '기자 프리미엄'으로 대물림 시키는 이 기묘한 유리 천장.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그 회사의 임원이 될 확률은 약 1%라고 하지만, 그것이 직군과 연관이 되는 언론사 조직의 기이한 현상은 마치 신라 시대 골품제도를 연상케 한다.


AI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미개한 인간놈들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스스로를, 내가 속한 조직을 구분 짓는 삶을 살고 있다. 인종, 성별, 민족 등 타인과 나를 구분시키기 위한 수많은 차별을 둔다. 그렇게 구분을 짓는 순간, 내가 어떤 이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보다는 우월하다는 것을 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계급이 또 다른 계급을 낳고, 또 다른 유리 천장을 만들고, 우리의 삶과 미래에 한계점을 만들어버린다. 우리 사회가, 세상이 완전히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쯤은 대부분의 사회인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살아온 삶이, 미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당신의 조직은 어떤가?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한가?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경험을 하고 있다면,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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