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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주 Feb 06. 2020

언어 진화의 시작

우리는 어쩌다 혹성탈출을 꿈꾸는 ‘말하는’ 유인원이 되었나?

언어에는 뼈가 없다


어릴 적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타워즈 같은 영화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 바로 ‘우주에는 끝이 있을까?’라는 질문. 궁금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주에 끝이 있다면 우주의 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 우주 밖에 있는 그 무엇인가의 밖에는? 그렇다면 이 우주는 언제 생겨났지? 


놀랍게도 현대 물리학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의 점이었고 우리 모두는 그 점 안에 꾸깃꾸깃 뭉쳐 있었다. 너무 비좁아 터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점은 갑자기 폭발했고, 그 과정에서 우주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우주는 아직도 팽창 중이다. 다른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해서도 현대 과학은 답을 내놓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구가 언제 탄생했는지, 공룡이 언제 출현하고 언제 멸종했는지도 말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언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세기 말까지 인간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언어학개론 책을 펼쳐 보면 언어의 기원을 ‘멍멍설’(bow-wow theory), ‘어기영차설’(yo-he-ho theory) 등 ‘학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이름으로 언어의 기원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설명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언어의 기원을 제대로 밝혀 놓지 못한 것은 언어학자들이 물리학자들이나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게을러 빠졌기 때문이 아니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기원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었다.(역시 게으른 건가?) 이유는? 언어에는 뼈가 없기 때문이다. 


공룡의 탄생과 멸종은 화석이라는 단서를 바탕으로 연구할 수 있다. 우주의 기원 문제는 별을 관측하는 과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에는 화석이 없다.(혹시 ‘뼈 있는 농담’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신 분?) 언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수 백 만 년 전에 언어 비슷한 것이 존재했는지, 그 형태는 어땠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의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아니, 뭐가 있어야 연구를 하지?


그래도 너무 너무 궁금해


그래도 인류 최초의 언어의 모습이 어땠는지 너무 너무 궁금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원 전 600년 경 이집트를 지배했던 파라오 프삼티크가 대표적인 이다. 프삼티크가 한 일은 역사에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아동 학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최초의 언어를 찾고자 두 명의 갓난아이를 가두어 놓고 어떤 말도 시키지 않게 했다. 이 아이들은 프리기아어로 빵을 의미하는 베코스(bekos)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는데, 이를 근거로 이 아동 학대범은 인류 최초의 언어가 프리기아어라고 단정지었다. 이후의 역사에서도 이런 아동 학대범들이 몇 차례 더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언어 기원 연구의 초창기 역사는 아동 학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프삼티크와 같은 아동 학대범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잃어버린 고대의 완벽한 언어를 말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기대는 인류의 언어가 단 하나의 완벽한 언어, 하지만 지금 잃어버린 언어에서 뻗어 나왔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이는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먼 옛날에는 좋았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즉 아득한 과거에 황금시대가 있었는데 그때 사용하던 말을 잃어버렸다고 여긴 것이다. 그 말을 찾으면 과거의 영광이 다시 재현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한 고대의 언어를 찾지 못했고, 역사적인 아동학대범으로서의 명성만 얻게 되었다.


이후에도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사고 실험’들이 있었다. 말이 사고 실험이지 실상은 머릿속으로 증명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막 펼쳐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제라고 주장하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 언어학회가 언어의 기원이나 보편 언어를 다루는 논의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으니. 이후 20세기 말까지 언어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언어학계의 ‘금기’가 되었다. 언어의 기원은 영원한 미제 사건이 되는 것일까?


황제는 어떻게 생각했는가?


이러한 금기는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겨우 풀렸다. 그러니까,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마음 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왜 20세기가 다 가도록 언어 기원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한 언어학자가 만든 학문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학자는 언어학계의 황제인 MIT대 교수 노암 촘스키다. 일관된 학문적 변덕(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론을 갱신해 왔다.)으로 유명한 촘스키는 1960년대 황제로 즉위한 이래로 지금까지 학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촘스키가 한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는 풍토가 있다. 문제는 프삼티크 등 다른 황제들과는 달리 촘스키는 언어의 기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일관된 학문적 변덕 때문인지 21세기에 들어서 언어의 기원에 대한 황제의 의견은 달라졌다.)


황제가 언어의 기원에 대해 추적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의 핵심적인 사상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머릿속에 선천적으로 보편 문법이라는 것을 내재하고 있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인간은 생산 공장에서 운용 프로그램이 미리 깔린 채 판매되는 컴퓨터인 것이다. 이 주장은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실 이 주장은  증명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강력한 칙령으로 받아들여졌고, 언어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하는 것은 이 칙령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이 왜 황제 촘스키의 칙령을 위반하는 것이 될까? 언어 화석이 없는 상태에서 화석을 대체하여 추적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동물’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이후, 현대 과학은 수많은 동물들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와 친척 관계에 있는 침팬지나 보노보의 공동 조상이 언제 살았는지도 밝혀졌다. 이러한 친척 관계의 동물들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인간 언어와의 차이를 밝혀낸다면 최소한 어느 시점에서 인간의 언어가 생겨났는지를 규명할 수 있다. 


그러나 촘스키에게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 때문에 동물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무시당하거나 심지어는 사기꾼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황제에 저항하는 반란군이었다.


사실 우리도 다르지 않다추적의 발판


우리 인간은 언어를 가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인류의 문명 자체가 언어를 바탕으로 건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촘스키의 말대로 언어는 과연 인간 고유의 능력인가? 다른 말로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언어 또는 언어와 비슷한 것으로 의사소통할 수 없는가? 


정답은? ‘아니오’이다. 동물들도 인간만큼 복잡한 언어체계를 사용하지 않지만 의사소통을 한다.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가장 충격적인 예를 들어 보자. 유인원 언어 연구(ALR: Ape Language Research)를 하는 수 새비지 럼버는 칸지라는 보노보에게 성공적으로 언어를 가르쳤다. 물론 칸지가 입으로 인간의 말소리를 내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아니다.(여러 연구자들이 이를 시도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유인원들의 발성 기관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칸지는 상징 기호를 통해 언어를 배웠다. 칸지는 수 백 개의 단어를 이해하며,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이해하고, 이미 아는 단어들을 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줄 안다. 이는 촘스키가 인간 언어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던 언어 사용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칸지의 사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칸지는 보노보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은 침팬지와 보노보라고 할 수 있다. 이 친척들은 진화의 나무에서 600만 년 전 쯤에 분리되었다. 즉 600만 년 전에는 침팬지, 보노보와 우리의 공동 조상이 살았었다. 


칸지의 능력을 보면 600만 년 전 우리의 공동 조상도 칸지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인간과 달리 보노보와 침팬지는 600만 년 동안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소한 우리가 쓰는 언어의 출발점이 600만 년 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 600만 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무수한 관문을 통과해 현재의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동물에 대한 연구는 언어 화석이 없는 상태에서 언어 기원 추적의 발판이 된다. 


뼈는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말은 잘못된 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뼈를 남기고, 사람도 죽어서 뼈를 남긴다. 뼈는 말이 없다. 그러나 뼈는 많은 말을 한다. 아니 수다스럽다. 그 이유는 뼈를 통해 우리는 뼈의 주인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뼈가 녹아 없어지는 성질을 가졌더라면 많은 학자들이 직업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뼈는 인간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는가? 잠깐 여기서 야구의 캐치볼 이야기를 해보자. 캐치볼의 원리는 단순하다. 공을 던지고 받는 것.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손과 팔을 정교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을 받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손을 뻗어 공을 잡아야 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언어 사용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매커니즘이 동원된다. 하나는 말하는 것. 다른 하나는 듣는 것. 


먼저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매우 정교한 호흡 및 발성 기관을 갖추고 있다. 만약 원시인들의 뼈가 호흡 및 발성에 있어서 적절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더 나아가 현재의 인류와 비슷한 뼈 구조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 원시인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리버만은 이러한 추정을 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연구하여 네안데르탈인은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인간의 언어를 발성할 수 있는 뼈의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에 이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시도는 뼈를 통해 언어의 기원을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학자들이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등뼈이다. 등뼈 곧 척수에는 호흡을 조절하는 신경관이 있다. 호흡은 발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침팬지는 호흡을 제대로 조절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180만 년 전 살았던 호모에르가스테르의 등뼈를 조사한 결과 인간의 신경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밝혀졌다. 목뿔뼈 또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목뿔뼈로 구강 구조가 어떠했을지를 추측할 수 있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목뿔뼈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유사한 반면 호모에르가스테르의 목뿔뼈는 인간과 유사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최소 180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은 현재의 인간과 유사한 발성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소리가 현재 인간의 언어와 어느 정도 닮아있는지는 규명할 수 없지만 말이다. 


공을 던졌으면 받아야 한다. 누군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들을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침팬지가 그러하다. 침팬지는 2,000~4,000헤르츠 범위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반면, 인간은 이 주파수 영역을 잘 듣는다. 이 영역을 잘 듣는다는 것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 영역의 주파수를 들을 수 있어야 인간의 ‘자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역의 주파수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무엇이 좌우할까? 그것은 귀뼈의 구조이다. 침팬지는 귀뼈의 구조 때문에 인간이 내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다. 이 주파수 영역의 소리가 말 그대로 귀마개를 한 것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반면 60만 년 전 살았던 하이델베르크인은 인간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훨씬 전인 60만 년 전 원시인이 언어라는 공을 가지고 캐치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소리다. 던지고(말하고) 받고(듣고). 나이스 캐치.


반전의 반전


여기서 잠깐 촘스키의 주장을 다시 돌아보자. 황제의 칙령은 이렇다. 언어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것이며 선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 속에는 언어를 전담하는 부분이 있다. 촘스키가 이 내용을 얘기하기 위해 인간의 뇌를 열어 보거나 관찰한 것은 아니다. 확인할 수 없었지만 촘스키는 이런 주장을 했고, 그의 주장은 곧 믿음이 되었다. 


정황상 이 믿음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뇌의 브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을 손상당한 이들이 언어 장애를 일으키는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이 영역이 언어를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더 결정적인 증거도 나타났다. 1990년대 대대로 언어 장애를 겪는 브라운 가문의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FOXP2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브라보! FOXP2에는 인간 언어가 암호화되어 있을 거야.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언어 장애가 온다는 게 그 증거지.’ 인간 언어의 고유성을 증명할 수 있는 소위 ‘언어 유전자’의 발견이었다.


내가 뭐랬어. 언어 유전자의 발견 소식을 접한 촘스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반전이 숨어 있다. FOXP2는 인간만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아니다. 카나리아나 쥐와 같이 많은 동물들도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유전자는 의사소통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쥐는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이 의사소통과 관련된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촘스키의 바람과는 달리) 인간의 의사소통이 동물의 의사소통과 동일한 유전적인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FOXP2라고 해도 인간과 동물은 다른 FOXP2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들은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간의 FOXP2는 침팬지와의 공동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이후 두 번의 돌연변이를 일으켰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째 돌연변이가 일어난 시점은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시점인 10만 년 전이었다. 인간의 고유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학자들은 두 번째 돌연변이야말로 언어의 질적인 도약을 이루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두 번째 돌연변이를 통해 동물들과는 차별되는 인간만의 진정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지만 이 시점에 인간은 언어라는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후로는 팔자가 폈고. 그러나 이런 주장 또한 기각된다. 연구 결과 앞서 소개한 180만 년 전 호모에르가스테르를 조사한 결과 두 번째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FOXP2는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전자이기는 하지만 ‘언어 유전자’ 자체는 아니다.(이 유전자는 심장이나 폐와 같은 기관에도 작용한다)


뇌와 관련된 연구에서도 촘스키가 안 좋아할 소식이 들려왔다. 뇌에 언어만을 담당하는 특정 영역이 있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속속 쌓여간 것이다. 물론 브로카 영역과 베로니카 영역이 언어에 있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영역들만 언어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뇌 전체의 다양한 영역에서 관장한다. 더 안 좋은 소식? 브로카 영역에 속하는 브로드만 영역 44가 인간만이 아닌 침팬지와 고릴라에게도 존재하며(감히!) 그 구조도 비슷함이 밝혀진 것이다.


이처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토대는 침팬지나 인간이나 비슷하게 갖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분명해진 사실은 이것이다. 인간과 우리 친척의 의사소통 방식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침팬지의 의사소통 방식과 우리의 언어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마지막 퍼즐언어는 몸짓에서 출발했다


이제 마지막 퍼즐을 맞춰 보자. 약 600백 만 년 전 인간의 조상은 침팬지와 갈라섰다. 그리고 그 시절 이미 언어를 진화시키기 위한 기본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현생 인류에 이르는 시간 동안 우리의 뇌는 다른 친척들보다 4배 가까이 커졌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180만 년 전의 조상님들이 현재의 인류와 비슷한 발성을 낼 수 있었으며, 60만 년 전 조상님들이 인간처럼 말하고 듣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을까? 그리고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브로드만 영역 44는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영역이 언어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브로카 영역의 일부라는 점을 먼저 상기해 보자. 인간은 이 영역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제어한다. 그렇다면 말을 못하는 유인원들에게 이 영역은 왜 필요한 것일까? 칸탈루포와 홉킨스에 따르면 브로카 영역의 일부인 브로드만 영역 44는 유인원의 ‘몸짓’을 제어한다. 


이 사실은 인간의 언어가 몸짓에서 출발했음을 암시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몸짓과 언어가 뇌의 같은 영역에서 발달한다는 사실도 이 추론을 뒷받침한다. 마이클 토마셀로는 가리키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토마셀로는 여러 실험을 통해 유인원들이 가리키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인간은 어린 아이도 가리키기를 할 수 있다. 


가리키기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는 매우 복잡한 매커니즘을 가진다. 우선 가리키기가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을 지시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손이 묶인 채 언어가 아닌 끙끙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끙끙 소리로는 자기 외부의 것을 지시하지 못한다. 고작해야 자신의 감정이나 신체적 상태만을 나타낼 뿐이다. 또한 가리킨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리키는 대상을 주시해야만 가능하다. 손가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지시하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이다. 


좀 복잡하겠지만 정리해 보자. 가리키기가 가능하려면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대상에 다른 사람도 주의를 기울이고,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공동 주의라고 한다. 공동 주의란 결국 서로 같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관심을 공유하지 않으면 언어는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관심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관심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서로의 행동을 조율해야 할까? 이는 인간 또는 인간의 조상들이 다른 친척들에 비해 더 복잡한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덜 복잡한 침팬지 사회 구조에서는 이러한 행동의 조율이 그다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복잡한 사회 구조에서는 침팬지의 그것보다는 더 정교하고 복잡한 의사소통 체계가 필요했으며, 그 의사소통 체계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언어는 진화했다. 처음에는 몸짓이 있었다. 이는 상대방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울 뉴런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 다음은? 소리가 몸짓과 결합되어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은 다시 인간의 뇌를 강화하고 강화된 뇌는 다시 언어를 진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진화는 한 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우리와 우리의 언어가 만들어졌다. 


마무리 해보자.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연구는 종합 예술, 아니 종합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뿐만 아니라, 고고학, 해부학, 신경과학, 유전학, 심리학, 컴퓨터 모델링, 물리학(그렇다! 물리학!)까지 동원되어야 한다. 관련 학문들을 대충 정리해도 이 정도다. 이 과학자 집단을 모아 놓으면 달에 우주선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그렇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혹성 탈출을 꿈꾸고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아무렴 어떤가?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언어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왜?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연구는 우리 인간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연구, 즉 우리가 어쩌다 혹성 탈출을 꿈꾸는 ‘말하는’ 유인원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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