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키기에 대하여

by 백승주

상하이는 아직 더운 여름이었다. 여자는 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마 나의 눈빛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불안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이 말을 준비해왔다. 아, 실수하면 안 된다.

그래, 나는 바로 여기, 이 순간을 위해 이 말을 준비해 왔다.


“워 야오 이베이 삥더 메이쉬 카페이.”


나는 내 방 안에서 한 50번 쯤 연습해 온 이 말을 조심스레 뱉어 본다. 인터넷에서 서바이벌 중국어 동영상을 뒤져 힘들게 찾아낸 말이다. 니하우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연습하는 중국어. 입은 더 크게. 성조는 정확하게. 명색이 나는 언어 교사가 아니었던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잠시 침묵.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연습했던 말을 조용해 읊조려 본다. 아직 내 스마트폰으로는 집 밖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이 말을 잊어버리면 낭패일 터.


“워 야오...이베...워 야오...어...아이씨”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 컴퓨터의 동영상을 재생한다. 다시 반복해본다. 워 야오 이베이 삥더 메이쉬 카페이. 걸어가는 내내 가게에서 엄마가 뭐 사오라고 했는지 잊어버릴까봐 입으로 중얼거리는 아이마냥, 머릿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인다. 그리고 드디어 그 말을 내뱉는다.


“워 야오 이베이~삥더 메이쉬 카페이.”


여기는 씽바커(星巴克). 또는, 스타벅스. 때는 9월 초, 상하이 도착 이틀째. 한국은 이미 선선한 바람이 돌기 시작했지만 상하이의 대기는 듣던 대로 습한 열기로 차 있었다. 마실 물이 떨어졌지만 물 이전에 정작 내 몸이 갈급했던 것은 차가운 카페인이었다.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자 점원이 뭐라고 내게 묻는다. 들리지 않는 중국어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점원이 말이 끝나자 나는 준비했던 손님 역할을 수행한다. 이래 뵈도 10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롤플레이를 시켰던 몸 아닌가. 워 야오 이베이 삥더 메이쉬 카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말을 끝내고 점원의 눈을 바라본다. 자, 내 역할은 잘 끝냈지? 자 이렇게 미지와의 조우는 성공이다. 그러나 평화가 그렇게 쉽게 오던가. 100위안짜리 지폐를 꺼내 건내려는 순간, 점원이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 이건 약속에 없던 건데..라고 생각해 봤지만 점원은 나하고 약속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내게 점원은 계산대 옆 나란히 서 있는 컵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 순간의 깨달음. 톨(tall), 그란데(grande), 벤티(venti). 아메리카노라는 말도 안 통하는데 컵 사이즈를 가리키는 말이 통하겠는가. 나는 손가락으로 그란데 사이즈의 컵을 가리킨다. 아무 말 없이. 알겠다(아마도)는 직원의 대답이 이어지고, 나는 계산을 한다. 원두를 가는 모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토마셀로(Tomasello)란 학자가 기획한 실험의 동영상을 떠올린다. 이 동영상 속에는 14개월짜리 어린 아기와 엄마가 앉아 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이 아기의 이름을 (내 마음대로) 원더라고 하자. 원더는 오늘 기분이 좋다. 배도 부르고 엄마도 원더와 잘 놀아주고 있다. 그런데 원더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나 스테이플러를 사용한다. 그 여자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한 남자가 들어와 여자가 사용하던 스테이플러를 책상 뒤의 선반에 올려놓고 나간다. 원더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잠시 후 처음 들어왔던 여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스테이플러를 찾기 시작한다. 이 모습을 본 원더는 스테이플러가 있는 선반을 가리킨다. 말을 모르는 아기가 가리키기를 하는 것이다. 아, 왓 어 원더...

가리키기가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와 DNA가 98% 일치한다는 우리의 사촌 침팬지는 원더와 같은 삼척동자도 아는 가리키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먹이가 담겨 있는 통을 인간이 가리켜도 침팬지는 그저 인간의 시선을 따라갈 뿐, 먹이가 든 통이 아닌 다른 통을 무작위로 뒤집어서 먹이를 찾는 식이다. 그러니까 침팬지에게 ‘가리키기’는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이다. 그 이유는 가리키기가 가능하려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말로 풀어내자면 꽤나 현기증이 나는 작업이 된다. 이를 그나마 간단히 풀어보자면 마음을 읽는 것이란 ‘나와 상대방이 모두 공동으로 한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동시에 ‘다른 이의 관점에서 그 사물을 보는’ 과정이다.(그렇다. 간단하게 쓴 게 이 정도이다.) 그리고 인간은 가리키기를 하면서 이 복잡한 무한 루프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주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가리키기란 일종의 초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초능력은 더욱 발전하여 급기야는 언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인류와 침팬지의 공동 조상이 살던 시절, 그 조상 중에서 가리키기라는 초능력을 가진 뮤턴트가 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뮤턴트들은 동료 유인원들과는 다른 길- 인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가리키기는 인간과 인간 언어의 시원인 셈이다.

뮤턴트 조상님들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기다리던 내 눈에 문득 치즈 케이크가 들어온다. 진열장 안의 조명이 은은하고도 ‘아름답게’ 치즈 케이크 위를 비추고 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나는 다시 점원한테로 다가가서 가리키기라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워 야오 쩌거.”(이거 주세요)


여기는 상하이의 씽바커.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는 인류의 초능력으로 얻은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크림을 올린 치즈 케이크가 놓여 있다.


이렇게 초능력은 나의 몸을 나날이 살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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