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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

사건 이후 25년간 650통 편지로 진실 추적한 고상만 인권운동가의 기록

by 고상만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3급 장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9,069일동안 수감되었던 김신혜 씨가(당시 23세) 2025년 1월 6일 해남지방법원에서 재심 1심 결과,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수감 이후 석방까지 2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사건 이후 2000년 12월 29일, 김신혜 씨 가족으로부터 억울하다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녀와 650 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책을 쓰고, 방송을 내며, 사회적 이슈로 알리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5년 만에 재심 1심 결과, 무죄가 내려진 겁니다.


지난 25년동안 김신혜씨 사건과 함께했던 이유와 소회에 대해 <오마이뉴스> 김성수 시민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와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때 기자에게 써 준 인터뷰 원문을 일부 수정하여 공개합니다.


김신혜씨 사건에 대해 '진실을 오해하는 분들을 위해' 공개합니다. 진실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무죄입니다. 25년 전 그때도, 지금도!


저는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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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복역하던 김신혜씨가 무죄선고를 받고 지난 6일 석방되었다. 지난 25년간 김씨의 무죄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입장에서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 지난 6일 낮 2시 30분경 해남법원에서 무죄선고가 내려진 후 4시 30분경 장흥교도소에서 신혜씨가 석방되었습니다.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지난 25년간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신혜씨가 오늘 무죄를 받은 것을 누가 가장 기뻐할까? 저는 25년 전 세상을 떠난 신혜씨 아버지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혐의로 억울하게 갇힌 딸이 비로소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 신혜씨와 세상 밖에서 첫 악수를 하며 말했습니다. “이런 날이 정말 오는군요” 말 그대로 감회가 새롭더군요. 모두 함께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2. 왜 김씨의 무죄를 증명하는데 무려 25년이 세월이 걸렸다고 생각하는지?

= 2024년 8월에 신혜씨 재심사건 증인으로 해남법원에 출석해서 2시간 넘도록 증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2003년 ‘니가 뭔데’라는 책을 냈는데 사실 그 책은 이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당시만해도 재심이 불가능한 시대였기에 너무 암울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저도 기억이 혼미해 질 수 있겠다 싶어서 그간 조사했던 이 사건 진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한번 법정에서 증언을 한 것인데 증언 말미에 판사님이 저에게 묻더라구요.

신혜씨가 무죄라면 왜 그때는 유죄가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제가 한 답변은 “가난해서”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여성이 지방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그때 엄마라도 있었고, 적어도 대학 나온 오빠만 있었어도 이렇게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억지로 유죄 선고하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억지가 아니라 증거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죄를 내려준 박현수 판사님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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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자들을 위해 김신혜 사건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 2000년 3월 7일 서울에서 살던 당시 23살의 신혜씨가 아버지가 살던 전남 완도의 고향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가 의문의 사인으로 숨진채 거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같이 생활하지 않던 큰딸이 내려온 날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신혜씨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날 신혜씨의 알리바이가 새벽 4시간동안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더욱 결정적인 불리함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3월 8일 새벽 경찰은 신혜씨를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본인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며 스스로 자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실은 따로 있었습니다.


신혜씨는 이후 내내 자신이 자수한 적이 없다고 부인합니다. 자신에게 친척들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여 혼돈에 빠졌는데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며 ‘동생을 위해 네가 자수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남동생과 대화를 하려 했으나 이를 친척이 방해한 상태에서 갑자기 경찰서로 끌려왔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날 신혜씨가 고향집을 내려온 것은 갑자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전부터 내려온다는 말을 주변에 다 한 상황이었습니다. 남동생과 일주일 전에 함께 내려왔는데 고향집에 더 있고 싶다는 동생의 뜻에 혼자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일주일 후에 데리려 오겠다며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3월 7일 내려오는 날 친구들과도 약속해서 함께 놀기로 했는데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신혜씨는 ‘혼자 있던 것이 죄가 될 줄은 몰랐다’며 많이 울며 항변했습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억울한 의심을 하는데 이 사건을 25년간 조사했고 관계자를 만나온 저는 확신합니다. 김신혜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없습니다.



4. 처음에 언제, 어떻게 해서 이 사건에 개인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인지?

= 2000년 12월 24일로 기억됩니다.


그때 저는 반부패국민연대(현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 민원국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단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누나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이 되어 1,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혐의는 아버지가 누나와 여동생을 성추행하여 이에 아버지 보험을 8개 가입한 누나가 보험금을 타려고 아버지를 살해한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연락처도 없이 남긴 민원에 제가 전화번호를 남기고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는데 이후 제가 서울에서 전남 완도로 내려가 신혜씨 할아버지, 할머니와 동생 등을 만나 조사한 결과 억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혜씨와 이후 65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면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인데 이때 정말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4-1 그 분이 누구인가요?

바로 이 당시 반부패국민연대 사무총장으로 계셨던 김거성 총장님입니다.


훗날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사회수석으로 일하신 분인데 제가 전남 완도로 이 사건 조사차 내려갈 때였습니다. 사실 우리 위원회는 이런 류의 사건을 조사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인 휴가를 내고 자비로 조사를 하고자 했는데 그때 김거성 총장님이 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방으로 가 보니 왜 저에게 출장이 아닌 개인 휴가를 내고 가려고 하냐며 정식 출장으로 바꿔서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때 위원회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때였는데 김거성 총장님이 적극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신혜씨가 석방된 날, 제가 신혜씨와 저녁식사를 하며 처음으로 이 사연을 전했더니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차후 안정되면 뵙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거성 총장님의 배려 덕분에 저도 초기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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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사건을 처음 접하고 우리 사회에 공론화 시키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를 했는데 사건을 처음 공론화시키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 누구나 억울한 일은 당하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경찰, 검찰, 그리고 당시 원심 재판부의 판단은 말도 안되는 억지를 가지고 유죄 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억울함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이라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살펴주고 싶었습니다. 이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는데 초기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려준 2001년 SBS 뉴스추적 정명원 기자님, 그리고 2003년 MBC 피디수첩 김진만 피디님, 그리고 2014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주시평 기자님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분들 덕분에 김신혜씨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6. 지난 25년간 무죄이면서도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되어있는 김신혜를 철창을 가운데 두고 만나면서 가장 답답하고 가슴 아팠던 일은?

=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재심 청구는 문헌상으로 있는 실체였습니다.


신혜씨 기록을 들고 정말 많은 변호사님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재심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그대로 신혜씨에게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편지 말미에 썼던 글이 있습니다. 아직 새벽은 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아침이 온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그러니 부디 절망하지 말고 또 좌절하지 말고 죽지 말자고. 이런 말을 할 때가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7. 이 사건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문제를 절감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

= 2025년 1월 6일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질 때 저는 검사측을 내내 봤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제 느낌이지만 그야말로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검사가 인권보호자로서의 사실상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검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왜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고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된다는 법 격언을 외면하는지 답답합니다.


검사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아마도 예상컨대, 검찰은 이 사건을 항소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재심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억지가 아니라 증거를 가지고 재판을 해달라고.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검사들의 억지로 범인을 만들지 말라고 말입니다. 반성을 촉구합니다.



8. 향후 이 사건과 유사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기위해 정부, 특별히 사법제도의 어떤 면의 보완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나?

= 가난한 사람도 법률적 보호를 철저하게 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특히 국선변호사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신혜씨도 원심에서 국선 변호인 도움을 받았는데 그야말로 너무나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는데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받은 사건인데 변호인이 아무 기록도 복사하지 않은 채 재판때마다 기록을 그냥 보고 왔다는 말이었습니다. 국선변호인 보수가 너무 적으니 복사비도 아쉬운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재판 끝에 23살에 구속된 사람이 47살이 되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이런 억울한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9. 석방된 후 김신혜씨를 만났을 텐데 현재 김씨는 어떤지? 신혜씨의 향후 계획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 본인처럼 억울한 사람이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재심 절차도 있어서 고통은 여전한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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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사건 재심 무죄판결을 받아낸 박준영 변호사와 처음 어떤 인연으로 만나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인지?

= 2014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주시평 기자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으로 이 사건을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제가 완곡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때 신혜씨도 방송을 더 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고요.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에서 방송에서 그저 재미로 소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런 말을 하며 양해를 구하는데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 기자님이 이번엔 재심을 지원할 수 있는 변호사님도 도와드리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혜씨에게 그런 말을 전했고 그래서 방송이 나간 후 만난 분이 박준영 변호사였습니다.

박준영 변호사가 그후 10년이 넘도록 애를 써 온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단한 분이고 존경스러운 변호사입니다. 그 분의 노고가 오늘의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신혜씨가 이 말을 들으면 미안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신혜씨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수감중인 무기수가 재심 무죄로 세상에 나오는 최초의 기적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박준영 변호사님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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