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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Jun 21. 2024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

나와 자녀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와 자식 간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40주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세상에 태어난 아이. 

꼬물꼬물 하는 짓마다 어쩜 그리 사랑스럽고 예쁠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말이 늘어가고 표현도 다양해지며, 얼기설기 어설프게 만들어온 어버이날 카드 한 장에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랑 결혼할래, 아빠랑 결혼할래라며 백발노인이 되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고, 그래주기를 기대한다. 

그랬던 아이들의 입에서 '몰라...'라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한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다. 대화의 수도 줄어들고 게임이나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가고 시간도 많이 쓴다. 학교 공부도 양이 많아지고 어려워지니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가르쳐 주기도 힘들다. 가뜩이나 중년이라는 시기에 접어들며 직장을 과감하게 옮겨보는 것도 쉽지 않으니 눈치껏 버텨내야만 하는 시기가 됐다. 말이 좋아 경험이지 맷집으로 버틴다. 거기에 우리의 부모님은 이제는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바뀐 상태로 병원 모시고 다니랴 행여나 다른 문제는 없는지 신경이 쓰인다.  오롯이 버텨내야만 하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저 내 자식만큼은 내 속을 썩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내 아이는 가졌으면 하는 마음...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 자식은 영 내 맘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꾸 잔소리도 늘고 아이도 온갖 짜증을 내며 대들기 일쑤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뇌과학자 한 분이 한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뇌에는 타인을 인식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를 인식하는 부분과 타인을 인식하는 부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게 된단다. 어떤 사람은 멀고 어떤 사람은 지극히 가깝다. 그 가까운 사람이 바로 엄마다. 아이의 뇌 속에서 나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엄마가 도무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자꾸 충돌이 발생한다. 가뜩이나 신체의 성장발달보다 정신적인 그것이 늦기 때문에 오는 것이 사춘기인데, 뇌 속에서 그런 일들이 발생하니 어찌 다툼이 없을까.


부모라 할지라도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본인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세상은 아니기에, 부모로서 내 자녀만큼은 풍족하고 여유롭고 존경받는 삶을 살아주길 바라며 이것저것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부모의 마음은 지극히 존중한다. 그러나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선을 돌려보면 좋겠다.  부모의 역할이란 자녀 스스로 세상에 두 발을 굳게 디딜 수 있게끔 응원하고 지지하는 역할이다. 자녀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르치고 보호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를 인간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도 부모를 똑같이 바라본다. 서로 나와 동일시하니 충돌이 생기고 관계가 멀어진다. 다른 존재이며 엄연한 인격 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 존재 그 자체다. 그래서 때로는 크게 한숨 들이쉬고 지켜봐 줘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사회적인 잣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가이드만 해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자녀들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의 노력과 올바른 인성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단지 그들은 지금 성숙해져 가는 중이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너무 멀리 가지만 않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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