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아닌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무겁다.
오늘도 그랬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권태기인가?’
처음엔 일이 버거운 줄 알았다. 일이 많긴 하다. 솔직히 말하면 일이 많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넓다는 게 더 문제다. 전략기획 조직이 흔히들 이래야만 한다 저래야만 한다 미래만 외쳐댈 것 같지만 사실 그 일은 전체의 30% 내외다. 조직을 개선하는 것도 하기도 하고 사업을 개발하는 일도 있다. 그밖에 회사마다 그 역할과 범위는 차이는 있다.
근데 예전에도 일이 많았는데, 그땐 견딜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이 나를 덮쳐오는 것 같다. 자꾸만 이건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그걸 해내야 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그렇게 또 스스로를 탓한다.
‘왜 이렇게 무능해졌지?’
예전의 나는 더 단단했던 것 같은데. 더 잘 버티고, 더 열정적이었고, 더 자신 있었는데. 요즘 나는 매일 자신감을 조금씩 흘리고 있는 느낌이다. 구멍 난 주머니처럼. 아무리 담아도, 결국은 바닥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 바닥에는 지금 내가 있는 이 현실이 놓여 있다.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을, 구조를, 가능성을. 실행할 사람도 없고, 채용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고. 조직은 바뀌지 않고, 부서장들은 관심이 없어 보이고, 변화를 말하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또 혼자 서 있게 된다. 계획도, 실행도, 결과도 다 내 몫이 된다. 정말 이걸 내가 다 해야 하는 걸까. 정말 이 구조 속에서 나 혼자 버텨야만 하는 걸까.
이걸 잘 해낸다면 나는 분명 인정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포기해버리진 않을까. 혼자 모든 걸 감당하며 얻는 성취는 왜 이렇게 허전할까.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나만 잘 되면 뭐 하나. 조직은 그대로일 텐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없는데. 그 안에서 나 하나만 성장한다고 해서 정말 모든 게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자꾸 이런 생각 속을 맴돈다. 해야만 한다. 해내야만 한다. 포기하면 안 된다. 그 말들로 하루를 버틴다. 그러면서도 끝내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럴 때면 또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라는 자책만 남는다.
하지만, 정말 내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이 구조가, 이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끌고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그저 사람답게 일하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조금은 같이 짊어져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다. 그랬다면 덜 외로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덜 지쳤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버티고 있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를 지키고 싶어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 그래도 언젠가 이 무게를 함께 들어줄 누군가가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세상도, 회사도, 누구의 기대도 내려두고 내 마음 하나만 안아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 버텼어. 그러니까 잠깐,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쉬어도 괜찮아.’
나는 지금... 땡땡이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