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가 아닌 맥락으로...
많은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답답함이 있다. 겉으로는 조직의 성과나 비전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조직이 제 마음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요?"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을 끓이는데, 하물며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성인들이 모인 조직이 내 생각과 똑같이 움직이길 바라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경영학 서적을 뒤적이고 HR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세요.",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리세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가 파란색 우산을 가져오라고 아무리 명확하게 외쳐도, 어떤 이는 노란색 우산을 들고 오고, 또 누군가는 빈손으로 서 있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상대방의 능력을 탓하거나 소통의 부재를 원망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지식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리더인 당신이 말하는 '파란색'과 구성원이 떠올리는 '파란색'의 채도와 명도가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목소리를 높여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섬 사이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TBWA Korea 박웅현 소장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기반은 바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경험이 리더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성원들과 공유되었을 때 비로소 일을 되게 하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리더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맥락을 전할 때, 우리 사이에는 비로소 '공감'이라는 튼튼한 다리가 놓이는 것이다.
공감대를 만든다는 것은 리더가 혼자 앞서나가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았던 풍경, 내가 느꼈던 문제의식, 그리고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에 대한 그림을 구성원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는 과정이다. 이것을 우리는 '맥락(Context)'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 일을 언제까지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앙상한 뼈대만 던져주는 것과 같다.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전체 그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해 주는 스토리텔링, 즉 맥락의 전달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온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이 처리하고, 우리는 AI에게 지혜를 구하기도 한다. 업무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맥락 이해력'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라는 도구조차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할 때, '왜 이것이 필요한지', '어떤 배경에서 나온 질문인지'를 꼼꼼하게 프롬프트에 입력해야만 비로소 쓸모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하물며 감정을 지닌 사람인 구성원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단순히 '무엇(What)'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넘어, '왜(Why)'와 '어떻게(How)'가 담긴 맥락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리더인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지시봉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잠시 지시봉을 내려놓고, 구성원들을 당신의 머릿속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초대해 보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이라며 배경을 설명해 주자. 당신이 보고 있는 큰 그림의 지도를 펼쳐 보여주자. 구성원들이 당신의 지시를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미션'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이해의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
맥락을 설명하는 일은 얼핏 보면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쌓일 때, 비로소 조직은 당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내 손발처럼 부리는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생각의 길을 열어주는 따뜻한 친절함에서 시작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