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보호자처럼 잘 이겨내고 견뎌낼 수 있을까
설 연휴의 끝자락, 부모님 댁을 방문해 세배도 드리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부모님 댁을 나서려던 찰나, 아버지가 나를 붙잡고 무심한 듯 묵직한 말을 던지셨다.
"얼마 전에 변을 보는데 피가 주욱 나오더라.
먼저 대장암으로 떠난 친구들이 말하던 증상과 똑같아."
병원은 예약해 두었고 곧 내시경을 받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 그리고 어제,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전해 들은 결과는 내 주변에서만 맴돌 줄 알았던 '암'이라는 단어가 마침내 우리 가족의 현실로 뚫고 들어온 순간이었다. 용종 4개, 그중 모양이 좋지 않은 하나. 대장암 초기 같다는 의사의 소견. 곧 나올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놀랍게도 내 첫 감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나 오열이 아니었다. 오히려 묘할 만큼 담담했다. '초기라니 수술만 잘하면 괜찮으시겠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거대한 현실 앞에서 멍해진 것일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형태조차 잡히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시커먼 먹구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연차를 내고 병원을 모시고 다녀야 할까?', '만약 초기가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쩌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을 상상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내 모습에, 불효자가 된 것 같은 짙은 죄책감이 들었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님인지 아니면 다른 분의 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글의 내용이 떠올랐다. 40~50대가 마주하는 가족 간의 거리에 관한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가까웠다가 독립과 함께 멀어지고, 부모가 늙고 병들면 다시 가까워진다. 하지만 다시 가까워진 그 거리는 예전과 다르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자리가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늙고 연약해진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과거 부모에게 가졌던 기대와 원망의 마음을 비워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 거대한 산처럼 나와 두 누나들과 어머니를 보호해 주신. 험난한 세월을 맨몸으로 이겨내며 우리 삼 남매를 길러낸 든든한 기둥. 그 아버지가 이제는 노쇠하여 피보호자가 되어 내게 기대려 하는, 바로 그 '역전의 시간'이 내게 도래한 것이다.
이 시간이 유독 버거운 이유는 단순히 병간호의 힘듦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아픈 역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분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옛날 분이셨고, 아들인 나만을 유독 대우하셨다. 그 가부장적인 그늘 아래서 두 누나는 많은 상처를 받았고,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누나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여전히 서먹하고 때론 날이 서 있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 앞에, 나는 누나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회사 일이라는 핑계로 돌봄의 무게가 또다시 누나들에게 전가될까 봐 두렵다. 과거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누나들에게, '그래도 아버지니까'라는 이유로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족의 화목을 지키면서 아버지의 건강도 챙기고 싶지만, 누나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치료비에 대한 걱정부터 직장 내의 스트레스 등등 삶 전체가 걱정투성이인데 삶은 부모님이 아프다고 해서 잠시 멈춰주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모든 엉킨 실타래를 단번에 풀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일지 모른다. 과거의 아버지로 인해 누나들이 받은 상처를 내가 대신 없던 일로 만들 수 없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돈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도 없다. 최악을 상상하는 것 역시, 나쁜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려는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일 뿐이다. 스스로를 향한 비난을 거두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완벽한 아들이나 완벽한 동생이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누나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물리적, 경제적 책임을 담담히 짊어지는 것. 가족 간의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보호자의 자리가 바뀌는 이 어렵고 낯선 시기를 통과하는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것.
보호자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부모의 아픔뿐만 아니라 내 삶의 무게까지 함께 견뎌내야 하는 외롭고 고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폭풍우의 한가운데서도,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고 나침반을 꽉 쥐고 서 있는 것. 그것이 지금 혼란스러운 내게 필요한 유일한 다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