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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Aug 29. 2023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

살아낼 수 있는 기반

함께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더 크게 들으시고, 더 빨리 들어주실 거란다




초등학교 3학년의 첫날.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2학년 친구들 모두가 또다시 같은 반이라니! 


담임선생님만 바뀌었을 뿐 모두가 1년을 더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런 마음으로 들떠있을 시각. 사각 금테 안경, 희끗희끗 흰머리에 네이비색 투피스 정장을 주로 걸치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선생님에 대한 첫날의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절실한 기독교 신자, 자상한 어머니처럼, 인자한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제자들을 품어주셨던 담임선생님. 지금까지도 외로움과 지친 하루를 보내며 이 분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함께하는 기도’를 강조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기도를 해보자. 기도는 하나님과 하는 대화인데, 중요한 건 간절하게, 정말 원하는 걸 이야기해야 해. 하나님은 언제나 듣고 계시고 정말 원하는 거라면 꼭 들어주실 거란다.” 


기도라는 것이 낯설지는 않다. 모태신앙인 나는 매주 주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녔고 기도가 무엇 인지쯤은 이미 알고 있다. 선생님은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신다.


“그런데, 지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지.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를 하면 그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더 빨리 들어주실 거야.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내용으로 60명이 이야기하는데 안 들어주실까?” (지금이야 한 반의 60명이 놀랄만한 숫자지만 당시 나의 학창 시절은 그랬다)


새로웠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함께한다는 것이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것 밖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어느 날부터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요즘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걱정거리는 없는지를 물으신다. 그리고 그날 종례시간에는 기도 제목을 말씀하시며 함께 기도하자고 하신다.


“우리 친구들 중에 엄마가 몸이 편찮으셔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구나. 하루빨리 건강 회복하시라고 같이 기도하자. 우리가 같이 기도하면 어떤 일이 있을지 알고 있지?”


기도 제목을 이야기한 친구가 누구인지는 절대 말씀하지 않으셨다. 개인 프라이버시도 있을 테니 말이다.


종교적인 것을 공교육 현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요즘은 힘들겠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에겐 부모님 말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또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당시 부모님과 나 사이의 문제는 없었지만, 가끔씩 밤늦은 시간 부모님 간의 다투는 소리는 어린 마음에 굉장히 불안했고 무서웠다. 그런데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니 이보다 더 맘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더 있었을까 싶다.


유추해 보건대,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건 제자들이 서로 간에 마음을 터놓고 심리적인 안정 속에서 즐겁게 생활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1년은 내 학창 시절 중 가장 즐겁게 생활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 중 어느 한 명의 집에 모여 그날의 숙제를 마치고 밖에 나가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며 즐겁게 야구를 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이걸 아신 선생님은 야구를 얼마나 즐겁게 했는지, 누가 안타를 치고 삼진을 당했으며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으시고 환하게 웃으셨다. 물론 다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언제나 기도해 주시겠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진정 추운 겨울에 엄마가 건네준 군고구마처럼 따뜻했고 행복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당시 아버지는 일시적인 실직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쿠션이나 베개 등을 판매하는 수예점 가맹점을 차려 운영하셨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불러 여느 때처럼 무슨 고민이 있는지를 물으셨다.


“엄마가 가게를 하시는데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밤에 엄마랑 아빠랑 다투시는데 가게에 문제가 있나 봐요.” 


역시나 선생님은 가게 위치가 어디인지, 어떤 물건을 파시는지 등등 많은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은 여지없이 그날도 내 이름은 말씀하지 않으신 채 함께 기도하자며 기도 제목을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그 효과가 정말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며칠 뒤. 학교를 다녀온 후 저녁 식사를 함께 먹기 위해 가게에 갔는데 어머니가 대뜸 이러신다.


“너 선생님께 엄마 가게 하는 거 말씀드렸니? 조금 전 선생님 다녀가셨다. 그냥 왔다 가신 게 아니라 물건을 10만 원 넘게 사 가셨어. 네 칭찬도 많이 하시더라. 너무 감사한 일이야.”


선생님이 다녀가셨다는 말에 놀랐고, 자그마치 10만 원이 넘게 물건을 사 가셨다니 또 놀랐다. 10만 원이라는 돈이 지금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1983년도의 아이스크림 가격이 대략 50원~100원이었던걸 생각하면 지금의 가치로 대략 100만 원 이상이다. 단순하게는 많은 물건을 사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제자가 힘들게 이야기한 그 마음을 이해하시고 직접 도움을 주고 싶으셨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날 저녁은 다툼이 없었다. 웃음과 감사함이 가득한 저녁이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체험한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누군가 내 마음을 알고 응원해 주는구나’ 하는 기쁨과 안도감이 가득했다.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건들도 겪었다. 창업에 실패도 했고, 온갖 다툼과 때로는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큼 든든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었다.


두 아들들에게 가끔씩 질문을 한다.


“요즘 힘든 거 있어? 뭐 도와줄 거 없을까?”


질문을 한들 대답은 한결같다. “ 없는데…?” 학교 잘 다니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는데 그런 걸 물어보냐는 말투다. 그래도 때로는 아직 아빠의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감사하다. 어렵고 힘들 때 아빠라는 존재가 함께 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맙다.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그 맘속엔 늘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엄마와 아빠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른이 되고 이젠 사회적으로 중년이라는 시절을 살아간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 여전히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연세가 늘어가긴 하지만 양가 부모님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 친구들과도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고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도 오래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이던 친구이던 분명 외로움을 느끼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속이 상해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나 역시 때로는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말해봐야 좋은 대답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라고 욕만 먹을 것 같다. "나도 힘들어. 알아서 잘해봐!"라며 무시당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믿고 싶다. 당장은 죽을 것처럼 아프고 힘들지만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하고 더 큰 기도로 응원해 줄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야 세상은 버틸 만한 곳이 된다.


사진출처: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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